미국 공군은 유럽에도 기지가 있어 파견생활을 해야 한다. 파견생활 중 이들이 초강도로 훈련받는 것이 탈출시 훈련이다. 유럽비행기들은 탈출구가 밑에 달려 있어서 탈출시 비행기를 한 바퀴 돌린다음에 비상 스위치를 눌러야 제대로 탈출할 수 있다. 위급한 상황에서 비행기를 돌리지 않고 탈출해서 사망한 사고가 많이 있어서 집중적으로 비행기를 돌리는 훈련을 받는다.
문제는 조종사들이 미국으로 귀환해서 자국에서 조종사 생활을 할 때 발생한다. 미국 전투기는 탈출구가 위에 달려 있어서 비상시 돌리면 안되고 그대로 스위치를 눌러야 한다. 비행기를 돌리지 말라고 집중적으로 훈련을 받았음에도 위급한 상황이 되어 탈출을 시도할 때 유럽에서의 탈출 성공 경험에 압도되어 비행기를 돌려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들 추락하는 조종사들을 데려다가 시험을 다시 치룬다고 상상해도 인지적으로 이들은 돌려서는 안된다고 답한다.
성공의 역설이다. 상황이 반대임에도 위기상황이 되면 과거의 성공경험을 답이라고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성공경험에 더 집착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을 말한다.
지금 한국의 리더십 패러다임에서도 비슷한 전조가 보인다. 카리스마 혹은 변혁적 리더로 대별되는 리더십 스타일은 경제나 환경이 우호적이어서 리더를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단합만 하면 무궁무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을 때 리더십의 답으로 통했다. 지금은 장기적 불경기, 불황, 경기침체가 정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L자 경기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SNS의 발달로 소통도 민주화되고 수평화되었다. 카리스마나 변혁적 리더의 근본적 전제는 리더와 부하와의 수직적 거리를 전제하는 리더십이다. 문제는 상황이 어려워지자 수평적 민주화된 시대에 맞는 새 리더십 모형을 모색하기보다는 리더들은 시절 좋을 때 리더십의 답안이었던 카리스마나 변혁적 리더십으로 회귀하려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경기가 어려움에도 리더의 힘의 우위를 앞세워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구성원을 더 세게 밀어붙이는 리더들이 생겼다.
이런 과거의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리더가 카리스마를 발휘해서 몰아붙여가며 리더십에 복귀하려는 솔루션은 대한민국에 문제해결보다는 갑질이라는 리더십의 부작용를 초래했다. 위에서 시작한 갑질은 아래로 전염되어 대한민국을 갑질 공화국으로 만들었다.
이런 리더십의 위기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육각형의 얼음을 별표모양의 얼음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거쳐야 할 세가지 과정이 있다. 첫째는 육각형의 얼음을 녹이는 단계다. 둘째는 별표모양의 틀을 만들어서 녹인 물을 이 틀에 따르는 단계다. 마지막 단계는 별표 모양의 틀을 냉동실에 얼려서 별표 모양이 자연스런 상태가 되게 만드는 작업을 통해 변화는 완성된다.
대한민국의 리더십 위기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먼저 과거의 성공 리더십인 카리스마나 변혁적 리더십 등 수직적 리더십을 녹여서 성공적으로 폐기처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탈학습과정이 성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두 번째 단계부터 시작할 경우 변화는 실패한다. 둘째는 새로운 리더십의 틀과 패러다임을 찾아야 한다. 진성리더십(Authentic Leadership)이 21세기 초연결시대의 조류로 떠오른 이유도 우리의 상황과 맥락을 전제로 할 때 어떤 리더십이 진짜(Authentic) 리더십인지에 대한 리더십의 정체성을 던졌다는 것이다. 이 정체성 질문을 통해 리더의 상황과 맥락에 맞는 리더십을 스스로 디자인할 수 있는 권한을 리더에게 넘겨주어 모든 리더가 자신이 맞는 리더십 옷을 입게 만드는 것을 겨냥한다. 진성리더십을 리더십의 민주화 운동이라고 칭하는 이유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리더들은 자신에 맞는 리더십 옷을 한번도 스스로 디자인해서 입은 적이 없고 회사가 벤치마킹을 통해 만들어낸 삼인칭의 기성복을 입고 리더 역할을 수행했다. 삼인칭으로 회사가 써준 리더십 모형에 따라 리더십을 수행하는 것으로 리더십을 월급받고 연기해온 것이다. 연기해온 리더십이 리더들에게 진짜 리더십으로 받아들여질리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리더십이 작동이 안되는 문제가 불거지면 회사는 다른 더 좋은 회사의 유행을 베껴가며 리더십의 기성복을 다시 만들어 입혔다. 리더를 벌거숭이 임금님으로 반드는 잘못된 리더십에 대한 관행은 리더들에게 리더십교육하면 뜬 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냉소주의만을 키웠다. 리더십 완성의 마지막 단계는 자신이 디자인해서 만들어낸 리더십을 통해 변화를 완성하는 체험을 획득하는 것이다. 리더십은 변화를 위한 수단이지 그자체로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아무리 뛰어난 소통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을 보이는 리더도 이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실패한 리더일 뿐이다,
갑질근절 이전에 제대로된 대한민국의 기업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리더십 모형 마련과 제대로 된 리더십 훈련이 더 시급한 문제이다. 리더십이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리 법으로 금지해도 갑질은 더 교묘한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한국 리더십의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해볼 시점이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시점이 아마도 가장 빠른 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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