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7-03 14:55
[N.Learning] 온전한 기독교인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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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기독교인으로 되어감
자기순종과 자기훈련
나는 기독교인들이 남들을 향해 명령처럼 외치는 "순종하라" 말이 귀에 거슬렸다. 이들이 교회 밖에서도 과연 온전하게 순종하는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내막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과는 달리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정해전 범위 내에서 자신의 몸으로 실현할 수 있는 좋은 소식(good news)에 대해 신과 서약한다. 인간이 신처럼 전지전능하다면 굳이 서약이 필요없을 것이다. 순종은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과 맺은 서약을 실현하는 일에 순종하라는 뜻이다. 순종하라는 명령은 교회문을 나서면 자신이 작성한 서약문에 순종하지 않는 자신에게 대고 외쳐야 하는 말이다. 자신에게 외쳐야 할 말을 굳이 소리내가며 외칠 필요가 없다. 소리쳐 순종하라고 외치는 것은 대상을 잘못 알고 외치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세상을 규약하는 계약은 하나님과 나와의 보이지 않는 믿음의 서약과 세상을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법문화된 거래적 계약으로 나눠진다. 세상 사람들 사이의 계약이 유지되고 실현되는 이유는 자신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와도 하나님과의 서약을 위배하지 않고 사는 신의의 사람이라는 자신과 동료에 대한 믿음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서약을 지키는 것이 나무의 뿌리라면 다른 사람과의 계약은 이 뿌리에서 자라난 나무이자 열매다. 서약은 빙산의 밑둥이고 계약은 빙산의 드러난 부분이다. 빙산이 떠 있을 수 있는 것은 밑둥을 구성하고 있는 서약이 충분한 크기와 부력으로 사람들 사이의 계약을 떠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나와의 서약이 지켜지면 공의(Righteousness)가 실현되고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의 계약이 실현되면 정의(Justice)가 실현된다.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는 이유는 공의에 대한 잔고가 떨어져 사회가 부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쓴 구체적 서약 내용없이 하나님께 무조건 순종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성을 부정하고 신을 흉네내는 일이다. 순종이란 자신의 삶과 자신의 몸과 자신의 정신이라는 범위에서 할 수 있다고 약속한 하나님과의 계약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서약이 이행되면 죽는 순간까지 범위를 조금씩 확장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벗어나서 행동할 수 없는 인간에게 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한 제약없이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라는 주장하는 것은 인간에게 신이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조선시대에서 환생한 기독교인이 갓을 쓰고 21세기를 사는 기독교인을 훈계하는 것과 같다.
순종이라는 말은 자신이 쓴 서약에 대한 자기순종이라는 말로 고쳐써야 한다. 훈련도 자기훈련으로 고쳐져야 한다. 순종만 있고 훈련은 없거나 훈련은 없고 순종만 있는 기독교인의 삶도 분절된 삶이다. 분절된 몸과 마음으로 온전한 기독교인이 될 방법은 없다.
출애굽기 3장 13절에서 15절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을 애굽에서 도망쳐나온 자신의 민족 사람들에게 소개해야하는지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하나님은 노예라는 제약에서 자유로와졌지만 극심한 혼동을 경험하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진정한 자유인으로 사는 법을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나님께서 답한다.
나는 나다(I am that I am)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신(I am God)이라고 가르치지 않고 더 본질적인 존재인 "I am that I am"이라고 가르쳤다. 노예상태라는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와진 유대인에게 기독교의 본질은 이 "참나(True Me)에 대한 되어감(Becoming)을 통해 제약으로부터의 자유를 넘어서라고 가르친 것이다. 진정한 참나에 기반한 진리를 실현했을 때 만끽할 수 있는 자유를 체험하는 삶을 살라고 가르친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의 본질도 참나에 관한 것이다. 예수는 나병환자와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워가며 네가 가진 나에 대한 보편적 삼인칭 믿음이 아니라 삼인칭 믿음이 자신 대한 일인칭 참나의 믿음으로 전환되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웠을 때 너 자신을 일으켜 세워졌음을 명심하라라고 가르쳤다. 하나님은 세상에 누구의 편의를 봐줘가며 편파적으로 이적을 행하는 분이 아니라는 가르침을 준 것이다. 누군가 독실한 기독교인이 하나님에 대한 삼인칭 믿음을 자신의 몸과 마음에 성령으로 심어 참나를 향한 일인칭 믿음으로 전환시켰을 때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겨자 씨의 기적을 체험할 수있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우리가 온전한 참나로 거듭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정신, 몸, 마음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 절대순종을 맨트라로 따라하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갇힌 몸, 마음, 정신이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환란 속에서도 자신을 온전하게 일으켜 세우는 일인칭 참나의 본질이 절대순종이라는 맹목적 삼인칭 믿음에 의해 거세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과 달리 인간으로 정해진 시간과 공간의 경계 내에서 하나님과 온전한 참나에 대해 서약을 하고 이 서약을 이행해 되어감 Becoming을 실현한다. 이 되어감에 스스로 개입하여 죽는 순간까지 분절되지 않은 온전한 참나를 만드는 것이 기독교인의 책무다. 죽음과 동시 이런 개입이 마무리 되기 때문에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몸, 마음, 정신의 경계를 인지하고 이 경계 속에서 자기훈련을 통해 몸, 마음, 정신의 근력을 키워가는 책무를 수행한다. 이 근력을 통해 온전하게 통합된 참나를 만들어내고 자신의 경계를 확장해 더 큰 참나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세상을 하직하겠다는 약속을 실행하는 존재다.
이런 참나의 온전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어느 순간 참나를 향한 미진했던 행진은 가속도가 붙고 임계점을 넘어 후세들에게 더 온전한 세상을 향햔 근원적 변화를 선물할 것이다. 자신이 찾아낸 겨자 씨를 키워 후세들에게 살아 있는 천국을 선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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