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뷰카 시대 시간에 대한 정의
물리적 시간의 종말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은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다. 크로노스는 시계로 측정된 물리적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주체적으로 체험한 시간이다. 한 시간을 같은 교실에서 공부해도 관심이 있는 주제를 공부하는 학생에게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가나 관심이 없는 주제를 강제적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한 시간은 천 년처럼 느껴질 것이다.
시간은 크로노스로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처럼보이지만 이런 물리적 시간은 신기루에 가깝다, 100년의 시간이 주어져도 실제 크로노스를 이용해 체험한 시간은 각자가 다르다. 100년의 시간을 살았어도 1년 정도의 체험한 시간도 건지지 못한다면 몸은 늙었지만 시간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확실한 것처럼 보여도 체험으로 건져내지 못한다면 물리적 시간만큼 허망한 신기루는 없다. 삶의 번성을 결정하는 시간은 체험한 시간인 카이로스다.
인간의 인지 지능을 대체할 수 있는 AGI와 인간의 행동을 대체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일상화되는 초뷰카시대란 물리적 시간에 의해서 계산되는 노동의 근거가 사라지는 시대다. 물리적 시간에 의해 측정되는 모든 노동은 모두 AI나 로봇에 의해서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초뷰카 시대에는 물리적 시간에 의해 정의되고 가치가 계산되던 노동 개념의 의미가 사라진다.
로봇이나 AI는 반복적 작업에 몰입해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피곤하면 실수하는 인간과 달리 실수도 하지 않는다. 야근을 하면 다음 날은 반드시 쉬어야 하는 인간과는 차원이 다르다. AI나 로봇은 피로를 느끼지 않고 반복적 작업을 할 뿐 아니라 매일 야근을 시켜도 불평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나서 워라벨을 주장한다는 것은 AI나 로봇의 뺨을 때리는 행동이다. 당연히 먼저 해고될 개연성이 높다.
초뷰카 시대는 로봇이 더 효율적으로 작업을 수행할 것이기 때문에 시간노동의 가치를 기반으로 정의해왔던 노동이 사라질 개연성이 크다. 시간 노동자를 기반으로 운영했던 노조도 존재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회사가 AI나 로봇이 일을 더 잘 할 수 있음에도 인간에게 일을 준다면 이 때의 노동은 노동이라기 보다는 복지라고 규정될 개연성이 높다. 드물게 시간 노동을 받는 경우라도 AI나 로봇이 정규직 입장에서 일할 것이고 인간은 비정규직으로 로봇이나 AI를 보조하는 일을 받게 될 개연성이 크다.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살만한 나라가 된 것은 노동이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에 의해서 계산되던 시절이 제공한 기회 때문이다. 기술이 뛰어나지 않은 대한민국 기업들이 선진 기업을 따라잡을 수 있었던 방법이 야근이었다. 야근해서라도 아침이 오기 전에 성과를 맞추면 같은 성공을 구가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에게 물리적 시간은 금이었다. 한정된 물리적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쓰는 지에 의해 성공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물리적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했기 때문에 빨리 빨리가 입에 붙었다.
90년대 시간 관리를 통해 성공의 기적을 일궈낸 전설적 회사가 있다. 초관리 운동으로 유명한 삼원정공이란 회사다. 이 회사는 종업원의 임금을 초단위로 환산해서 관리했다. 심지어 삼성도 이 회사를 벤치마킹해서 물리적 시간관리를 혁신의 한 방식으로 채용했었다.
물리적 시간관리는 성과를 내도 누가 시간을 절약해가며 초단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지로 성공을 측정했다. 기술적 수준이 전무하던 시절 대한민국의 승리를 이끌었던 물리적 시간관리 경영은 대한민국에 초단기성과주의와 빨리 빨리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지금과 같은 초뷰카 시대에 우리가 입에 달고 사는 빨리 빨리는 산업화 시대를 달구었던 대한민국의 주홍글씨다.
물리적 시간 개념은 학교에서는 선행 학습 열풍을 일으켰다. 학교에서도 초단기적으로 먼저 성과를 내면 더 큰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부모와 학생들에게 선행학습 열풍을 만들어냈다. 선행학습에 돈을 쓸 수 있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 자녀가 좋은 대학의 학벌을 얻어 중요한 사회적 지위를 독점했다. 배우는 내용은 똑 같은데 단지 먼저 배웠다고 이들에게 기회를 더 부여하는 것은 크로노스 시간개념이 만든 대한민국의 교육의 함정이다.
살만한 나라가 된 대한민국이 지금과 같은 초뷰카 시대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면 물리적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라 체험한 시간인 카이로스의 개념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대한민국은 국가가 나서서 크로노스에 의해서 정의되던 시간 개념에 종말을 고해야 할 시점이다.
체험된 시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혁신과 번성은 물 건너간 것이다. 주 4일제 근무의 성공도 체험된 시간의 개념에 의해서 설계되지 못한다면 실패가 담보된 것이다. 체험된 시간을 통해 혁신이 만들어지고 결국 5일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4일 만에 할 수 있는 더 나은 혁신과 생산성의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면 당연히 실패할 것이다. 카이로스의 시간개념으로 혁신과 생산성에 차이를 만들지 못했는데 크로노스 시간개념에 따라 시혜적으로 종업원을 더 많이 쉬게 만들기 위해 주 4일 근무를 시행한다는 것은 AI와 로봇에게 백기투항하는 상황을 만들 것이다.
인간에게 카이로스의 체험된 시간은 자신의 삶의 존재목적을 각성해서 의미의 스프링쿨러를 작동시키고 있는 사람들이 향유하는 특권이다. 죽음에 근접한 나이가 되어도 이들의 배에는 목적이 실현된 체험이 가득 차 시간이 서서히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가 너무 길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똑 같이 주어진 하루가 아주 긴 날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혁신과 차이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들은 얼굴에 새겨진 주름의 나이를 넘어 삶의 나이테를 남긴 사람이 된다.
결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수 있는 것은 이런 시간에 대한 혁신과 체험된 시간을 기반으로 한 세대 간 다양성을 실현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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