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지 못하는 짜라투스라
실패로 끝난 구도 여정
니체의 짜라투스라는 초인의 원리를 깨닫고 어느 날 산에서 하산한다. 산에서 내려와 시장통에 모인 군중들에게 자신의 고귀한 깨달음을 설교하지만 이미 세속화될대로 세속화된 사람들은 아무도 짜라투스라의 고상한 깨달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대신 시장 사람들은 짜라투스라의 고귀한 이야기보다는 옆에서 벌어진 광대의 줄타기에 더 관심을 보이고 그쪽으로 몰려간다. 실망한 짜라투스라는 다시 산으로 돌아간다.
구도자는
고귀한 깨달음을 얻었다면 대중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전파해서 이들을 변화시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근원적 변화에 성공해야 구도자의 책무를 다한다. 모든 종교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자신과 가족을 구제하는 것으로는 달성되지 않는다. 어떤 레거시 종교든 구원이란 자신의 깨달음을 통해 자신과 가족을 넘어 깨달음과 변화를 체험하게 만든 사람들의 숫자가 구원을 위한 정산 대상이다.
세상에는 짜라투스라처럼 깨달음의 경지를 얻었지만 깨달음의 밀알을 중생에게 나눠주어 세상의 변화를 일으키는데 실패한 구도자들이 넘친다. 세상의 근원적 변화가 더디어진 이유는 이들 실패한 많은 구도자의 실패를 아무 반성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실패한 구도자들 주변에는 오랫동안 신실하게 신앙 생활과 자기개발을 위한 공부에 매진했어도 실상에서는 일말의 변화도 경험하지 못하는 신도와 학습 추종자들이 넘친다. 빈곤의 악순환이다.
(사)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회장 이창준)는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는 사회, 조직, 인간의 개발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사명을 수행한다. 학회의 중심모듈에는 <진성리더십 아카데미>와 <춤추는 짜라투스라>가 있다. 진성리더십 아카데미는 진성리더로의 깨달음을 배우는 과정이고 춤추는 짜라투스라는 진성리더로 자신의 깨달음을 자신과 가족을 넘어 전파하는 과정이다.
모듈 이름이 <춤추는 짜라투스라>인 이유는 짜라투스라가 산 정상에서 아무리 뛰어난 존재목적의 원리를 깨달았어도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시장의 청중들에게 소통하는 방식은 광대의 방식이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짜라투스라가 아무리 고귀한 사실을 깨달았어도 광대가 춤을 보여주기 위해 춤판을 벌렸을 때 관객을 모두 잃었다. 짜라투스라는 자신의 깨달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구도하기 위해서 먼저 광대의 언어인 춤추는 방식을 배웠어야 했다. 광대처럼 춤을 추어가며 자신의 깨달음을 랩하듯 전달했어야 했다. 학회의 춤추는 짜라투스라는 진성리더들의 짜라투스라 구하기 운동이다.
<춤추는 짜라투스라>는 진성리더 도반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공들여 개발한 진성리더의 깨달음이 담긴 프로그램을 춤추는 광대처럼 줄타기를 해가며 쉽고 재미있게 구성원들에게 마치 랩하듯 들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춤추는 짜라투스라>는 진성리더로서의 변화 여정이 춤추는 여정이 되어야 함을 상징한다.
변화가 상수인 초뷰카 시대에도 종교나 대학과 같은 상아탑에는 깨달음을 전달하는 교탁이나 설교하는 강대상을 높은 곳에 마련해 놓고 청중에게 일방적으로 깨달음을 전달하는 산업화 시대의 공장식 커리큘럼을 운용하고 있다. 이런 교조적 방식이 효과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격증과 학위를 위해 청중들이 줄을 서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소위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람들이 먼저 높은 교탁과 강대상에서 내려와 청중의 언어를 습득해 춤추는 짜라투스라로 변신하지 못한다면 조만간 지금 있는 청중도 모두 잃을 운명이다. 이 시대의 절, 교회, 성당, 대학은 춤을 배우지 못해 다시 산으로 숨어 들어간 실패한 짜라투스라의 은둔지로 전락했다.
세상에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넘치지만 자신의 깨달음을 씨줄로 구제해야할 청중의 삶을 날줄로 엮어서 고유한 태피스트리를 만들어 세상의 변화를 선도할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어린이처럼 춤추지 못하는 사람들은 관성의 중력에 억눌려 하루 하루 죽어가는 사람이다. 지금과 같은 어렵고 힘든 시기에도 중력의 육중함을 이기고 몸을 일으켜 어린이들처럼 춤추려는 의지가 자신의 몸, 마음, 정신을 잠에서 깨운다. 이들이 아이들처럼 춤을 출 수 있는 이유는 고통을 용기 있게 직면해 고통 늪에 빠진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야 하는 이유인 목적의 날개로 중력의 무게를 이기기 때문이다. 아이처럼 춤추는 사람들은 어느 날 주인으로 사는 자유체험 비행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