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3-12 11:23
[N.Learning] 양극단으로 분열된 간주간적 세계관 통찰력과 우상화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442  

양극단으로 분열된 간주간적 세계관
통찰력과 우상화
우리 아이가 중학생쯤 이었을 때 어떤 이슈를 가지고 심각하게 논쟁했던 기억이 있다. 논쟁의 주제가 내 전문영역에 해당되어서 이론적 근거와 경험적 검증을 동원해서 설득하려 했으나 아이는 설명에는 동의해도 내 주장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답변은 단순했다. 자신의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친구들은 그렇게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가 가진 잘못된 편견과 가정을 해체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나도 전략을 바꾸어 아이의 전략에 버금가는 급진거북이(잉걸북스, 2024년 12월) 전략을 동원했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알고 따르던 교수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아이와 우연히 만나는 것처럼 아들에게 근황을 물어가며 논쟁했던 주제를 다시 꺼내 아이에게 과학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번에 아이는 자신의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좀 더 심각하게 듣는 것처럼 보였다.
계몽주의 시대를 연 영국의 베이컨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인 정신모형이 오염되는 현상을 우상화에 비유해가며 설명한다. 우상화가 진행되어 시대적 통찰력을 잃어버리는 것을 베이컨은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종족의 우상, 극장의 우상으로 설명한다. 동굴, 시장, 극장, 종족은 우상화의 네 운동장이다. 아마도 우상화의 시작은 자신의 정신모형은 자신이 살아온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이것의 한계를 모르고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은 진실이라고 믿는 동굴의 우상이다. 다음이 시장의 우상일 것이다. 현 시장에서 통용되는 지식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활용하고 있어서 수요 공급 법칙에 따라 비싸게 팔리는 지식을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시장 우상화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돈 있는 사람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 제공하는 처세적 지식을 진실에 가장 가까운 지식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기반해 믿음을 형성한다. 셋째,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귀속적 생물학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인 혈연, 지연, 학연, 세대, 남성 여성이 비슷한 사람들의 말을 더 진실이라고 신봉하는 현상이 종족의 우상이다. 종족의 우상에 빠진 사람들은 유전자 복권을 가진 사람들의 말을 신봉하고 유전자 복권에 기반해 산출한 능력을 절대적으로 신봉한다.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절대적으로 숭배한 나치주의자들도 종족의 우상에 빠진 사람들이다. MZ세대가 X세대를 꼰대로 배격한다면 이들도 종족의 우상에 매몰된 사람들이다. 마지막이 극장의 우상이다. 극장에서 활동하는 가장 인기 있는 배우가 하는 말을 무조건 진실에 가장 가까운 말로 받아들이는 현상이다.
우리 아이도 자신이 운용하고 있는 정신모형이 완전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키려는 노력을 했다는 점에서 동굴의 우상에 빠졌을 것이다. 친구들이 하는 말을 더 믿고 있었기 때문에 시장의 우상의 문제를 극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친구 중 가장 인기 있는 친구의 말을 믿었기 때문에 극장의 우상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같은 나이 또래의 같은 학교를 다시는 친구들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종족의 우상을 극복하는 문제도 있었다. 아이 뿐 아니라 우상에 빠진 친구들이 자신들의 정신모형(세계관)이 맞다는 것을 확증하는 쪽으로 데이터를 가공하고 운용했을 개연성이 높다. 잘못된 정신모형이 더 잘못된 쪽으로 수렴하는 간주간성(Intersubjectivity)의 문제를 극복할 수 없었다.
이번에 서부지법을 초토화 시킨 행동에 돌입했던 젊은이(극보수에 의해 우리 젊은이들로 호칭되는 사람들)들도 결국 잘못된 간주간적 방향으로 수렴한 정신모형의 피해자였을 개연성이 높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신모형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동굴의 우상주의자들이다. 비슷한 사람들의 모이는 극우 유튜브 시장에서 가장 통용되는 각종 음모론을 택해 자신의 세계관을 만든 시장의 우상을 극복하지 못했고, 전광훈과 같은 사이비 목사의 말을 진실의 잣대로 받아들이는 극장의 우상을 극복하지 못했고, 비슷한 나이 또래의 젊은 남자 집단이라는 종족의 우상을 극복하지 못했을 개연성이 크다.
리더로 불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생존과 번성에 뛰어난 통찰력으로 기여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들의 공헌을 인정해서 답이 없는 문제가 생길 때에는 이들에게 찾아가서 이들이 생각하는 해결에 더 관심을 가져주고 이들의 결정에 이의를 달지 않고 따른다. 구성원들이 리더의 해결책과 의사결정에 이의를 달지 않고 따르는 현상을 자발적 영향력이라고 부른다. 직책은 있지만 이런 자발적 영향력을 획득하지 못한 리더는 가짜리더들이다.
사회가 가짜리더들에 의해 장악되면 베이컨 우상화는 잘못된 간주간적 방향으로 진행되어 결국은 쪼그라든 공유된 세계관을 만들어낸다. 사회가 다양한 진짜 리더들에 의해 포진되어 있을 경우는 각자 리더가 거인의 어깨에 올라가 파악한 세상이 다시 간주간적으로 수렴되어 일반 사람들이 보지 못한 세상의 본질과 원인을 파악하고 본질에 맞게 인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정신모형(세계관)을 만들어낸다.
최근에 연달아 이론 속에서만 존재하던 블랙홀을 찾아낸 성과는 세상 각지에 흩어져 있는 천체 망원경을 서로 버츄얼한 네트워크의 간주간성으로 연결해서 찾아낸 것이다. 우리가 진짜 리더라고 부를 수 있는 리더나 어른들이 있다면 이들은 자신의 세운 거인의 어깨에 올라가 세상을 보고 각자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 세상을 본 것을 간주간적으로 수렴해 일상적인 사람들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는 베이컨이 주장하는 우상론과 우상화에 빠진 리더의 연기에 농락되어 이들을 진짜 리더라고 믿고 이들이 본 가짜 세상을 진짜 세상이라고 받아들인데서 생긴 문제다. 유전자 복권만을 믿는 종족의 우상, 전광훈과 같은 가짜 목사를 진짜 목사보다 신봉하는 극장의 우상,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루머를 음모론으로 포장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시장의 우상, 자신이 보는 세상이 부분적인 세상임에도 자신이 봤다는 이유로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확증편향의 사람들이 모여 만든 동굴의 우상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우상론자들과 이들이 만들어낸 음모론이 진실을 대체하는 순간 우리는 세상을 정상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잃은 눈뜬 장님으로 전락한다.
이들 우상론자들이 가스라이팅을 시킨 대상이 세상에 불만을 품고 칭얼대고 있던 아이들(극보수 세력이 우리 청년으로 부른 사람들)이었다. 우상론자와 음모론자들이 이렇게 칭얼대던 아이들의 분노를 폭발시켜 서부지법의 재물로 삼았다. 우상주의자들이 주장하듯 이들 칭얼대던 아이들은 계몽이라는 이름으로 가스라이팅 대상이었고 계몽된 후에는 계엄을 뒤엎는 폭도로 이용되었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거인의 어깨에 서서 세상을 간주간적으로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진 어른다운 어른들이 사라진 것에서 생겼다. 대한민국에는 지금 공동체의 생존과 번성에 책무성을 가진 어른들이 사라졌다. 목적에 대한 믿음과 구성원의 아픔에 대해 긍휼의 눈으로 통찰할 수 있는 진성리더십의 부재가 문제를 키웠다.
세상을 보는 세계관(정신모형)은 간주간적으로 만들어진다. 진성리더와 진성 어른이 본 세상을 간주간적으로 엮어낼 수 있는 사회는 누구도 볼 수 없는 블랙홀을 봐가며 인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통찰력이 넘치는 세계관을 만들어낸다. 반대로 편견과 아집으로 뭉쳐진 권력자들이 내세우는 우상론자들과 음모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간주간적으로 만들어내는 세계관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무질서로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이들 우상론자와 음모론자들이 계몽되어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대한민국이 건강한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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