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Winter Sleep 겨울잠]을 보다.
터키 전설적 영화감독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이 만든 영화로 67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받은 영화다. 먼저 놀란 것은 장장 3시간에 육박하는 상영시간이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본 영화 중 가장 긴 영화다. 하지만 3시간내내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참나를 찾아가는 지식인의 이야기이다.
스토리 라인은 전직 배우이자 칼럼리스트인 주인공 아이딘은 터기 카파도키아에서 호텔 오셀로를 운영한다. 남부럽지 않은 부를 누리고 있는 그는 양심과 도덕을 운운하며 자신이 얼마나 공정하고 자비로운 사람인지 알아주길 바란다. 지성과 언변을 앞세워 주변 사람들을 판단하고 통제하려 하지만 정작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한다. 하지만 오빠를 잘 아는 여동생 네즐라는 번번히 그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독설을 던지고 젊고 아름다운 아내 니할은 그의 위선적인 모습을 경멸하며 권태를 느낀다. 서로에게 상처와 불신만을 안기고 살던 아이딘이 어느 날 세입자의 아들이 자신의 달리는 차에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트리고 도망가는 행동에 놀라면서 낮선 자신과 마주하게 하게 된다.
생각나는 귀절:
= 양심이며 도덕 이상과 원칙, 삶의 목적 당신 입에서 자주 나오는데 남의 자존심을 상하게 폄하할 때만 쓰더군요. 하지만 누군가가 그런 단어를 당신만큼 많이 쓴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의심스러워요 (부인 니할이 남편 아이딘에게 하는 대사).
지식인들은 자신은 철저히 실천하지 못하는 도덕과 고상한 용어를 무기로 종종 십자군 전쟁을 한다. 이 십자군전쟁은 남들이 공격하지 못하게 먼저 남들을 제압하는 지식인들의 핵심 전략이다. 진정한 도덕군자는 그렇게 살아가는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지 지식인처럼 말로 남들을 공격하는 십자군 전쟁을 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지식인들은 도덕적으로 허약한 사람들이란 것을 은유하는듯.
= 나는 오빠처럼 쉽게 자신을 속일 수 있다면 좋겠어. 오빠의 문제가 뭔지 알아? 고통받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속이는 거야. (아이딘의 동생 네즐라가 아이딘에게)
지식인들은 자신을 보호하고 정당화할 수 있는 이론을 만드는 천재적인 재능을 훈련한 사람들이다. 세상에 학자들 머릿수 만큼 많은 이론이 있는 것은 모든 학자들이 다 이론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이론을 만들어서 자신의 내면을 잘 포장하고 멋지게 정당화시킨다. 이들은 자신의 이론으로 삶을 연기하는 뛰어난 연기자들이다. 따지고 보면 이들이 만드는 이론은 자신 연기의 대사인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해서 실제 삶이 설계되면 대부분은 망한다. 실제로 경제학자들에 경제정책을 만들면 경제가 망하고 재무학자들이 증권을 투자하면 돈을 잃는다.
= 있는 그대로 안보고 신처럼 떠받들다가 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화를 내는 것이 타당한가?
학자들은 시시때때로 자신의 이론을 신처럼 떠받을어 맹신하다가 어느 순간 현실에 의해서 이 이론이 가짜로 판명되어 자신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오히려 방귀뀐 사람이 화낸다고 적반하장으로 자신이 신봉했던 이론에 자신도 속았다고 같이 공격한다. 상황이 잠잠해지면 학자들은 자신의 만든 이론을 다시 신격화하는 작업에 몰입한다.
= 젊고 자신감 넘쳤던 여자가 공허함과 권태로 시들어 가는데 당신은 가책도 느끼지 않나요? (부일 니할이 남편 아이딘에게).
실체가 없고 진정성이 없는 지식으로 무장한 지식인의 삶에 맞춰어 같이 살아가면 갈 수록 아무리 싱싱했던 사람의 삶도 시들어간다. 이런 지식인이 돈과 명예를 가지고 있다면 엄청난 파급효과를 갖는다. 그 주위에 포진한 사람들은 모두 시들어가는 삶을 사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비극이다.
= 오늘은 내안의 내가 도망가는 나를 자꾸 붙잡는다 (주인공 아이딘 대사).
우리의 아리랑 노래 가사를 생각하게 하는 대사이다. 아리랑에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라는 대목이 있다. 참나를 버리고 연기와 위선을 쫓아 나돌아다니는 나를 참나가 나가지 못하도록 잡는 것이다. 아이딘이 아이에게 돌을 맞고 참나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 모든 삶은 붕괴의 과정이다. 삶을 계속하자. 나를 용서해줘 (아이딘이 부인 니할에게).
아이딘은 부인 니할과 동생이 고통을 호소해오자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부인과 이혼하고 도시로 떠나려다 이 모든 문제가 자신이 자신의 참나에서 벗어나려는 위선에서 비롯되었음을 불연듯 깨달고 집으로 다시 돌아와 부인 니할에게 용서를 구한다. 사람들은 실수를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숙명적 삶을 살기 때문에 삶이 영속되기 위해서는 이 죄를 누군가가 용서하고 용서받아야 함을 깨달은 장면이다. 용서는 새 삶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이다.
결국 자신의 합리화 하기에 바빳던 아이든이 자신의 잘못을 깨달고 이 잘못을 용서받음을 통해 지식인을 탈을 벗어던지고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이 영화는 본인이 스스로를 지식인이라고 생각하거나 지식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거나 아니면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스마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꼭 한번 봤으면 하는 영화다. 아니면 지식인 남편과 살고 있는 부인들이나, 지적으로 고상한채하는 남친을 가진 여성분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