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영향력에 왜 미혹될까?
도둑질 당한 마음
짝사랑하는 사람들은 매일 다음과 같은 상황을 꿈꿀 것이다. 상대 마음 속에 몰래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태의 마음에 몰래들어가 마음 정중앙에 자리잡고 앉아 상대의 마음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고 싶어할 것이다. 상대가 본인을 보면 좋아할 수밖에 없도록 상대 마음을 막 흔들어대고 싶을 것이다.
리더가
된 사람들도 가끔 이런 상상한다. 부하의 마음 속에 몰래 숨어들어가 부하의 마음을 조종해가며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자신이 시키는대로 말을 잘듣게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하의 마음 속에 들어가 부하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꼭두각시로 만들 수 있다면 자신이 발휘하는 리더십이 얼마나 편해질까를 상상한다.
영향력이란 이런 상상이 실현된 상태를 의미한다. 영향력이란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든 밈이 되어 상대의 마음 속에 복제된 상태를 뜻한다. 리더가 밈이 되어 부하의 마음 속에 준거적 파워를 형성한 것이다. 준거적 파워를 형성하면 부하의 마음의 일부분이 리더의 마음과 똑 같이 동기화되어 움직인다. 리더의 영향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리더가 복제되어 부하의 마음 속에 준거적 파워를 형성하면 리더의 강요없이도 리더가 원하는 바를 실행할 수 있다. 어떤 의미로 부하가 리더의 아바타가 된 것이다. 리더가 부하 마음 속 정중앙에 자리잡는데 성공한 것이다. 리더가 자신을 복제시키는 일에 성공해 부하가 자발적으로 리더가 원하는 행동을 자연스럽게 한다면 이 상태를 리더십 영향력이라고 부른다.
물론 영향력에는 두가지 다른 종류가 있다. 부하의 마음을 훔친 리더가 좋은 사람이이어서 존재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상대의 마음을 훔쳤다면 선한 영향력이다. 어떤 꿍꿍이를 챙기려는 사심을 가지고 부하의 마음을 훔쳤다면 악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인간에게 마음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돈을 준 사람이 자신의 앞에 있는 한 상대가 돈을 지불한만큼 마음이 빼앗긴 것처럼 연기하겠지만 마음의 주인인 상태를 상실한 것은 아니다. 돈을 준 사람이 눈앞에 안보이면 마음은 자신의 주인인 상태를 회복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진정으로 빼앗긴 상태는 임재(Presence)가 실현된 상태를 의미한다. 임재란 상대가 자신의 눈앞에 없어도 상대는 마음 속에 있어서 상대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행동할 때이다. 따라서 돈으로 일시적으로 상대의 환심을 사는 것은 가능해도 완벽하게 상대의 마음을 훔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마음의 소유권은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만 제대로 인지한다면 돈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가스라이팅은 악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마음을 도둑질 당하는 대표적 사례다. 가스라이팅은 상대가 사심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훔쳐서 마음의 주인으로 자리잡는 것을 뜻한다. 가스라이팅은 상대가 마음을 훔치기 위해서 조작적 행동을 하는데 이 함정에 빠져 결국 마음을 빼앗긴 상태인 반면 우상화란 스스로가 상대에게 마음의 주인자리를 알아서 스스로 내어준 것이다. 누가 더 주체적 역할을 하는지의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마음의 주인자리를 사악한 의도를 가진 상대에게 내어준 것이다.
요즈음 <나는 신이다>에 나오는 사이비 종교는 교주가 집단적으로 자신의 추종자의 마음을 훔친상태다. 따지고 보면 히틀러는 독일 게르만 민족의 마음을 집단적으로 가스라이팅해서 성공적으로 훔쳐낸 사이비 교주였다. 일본의 사이비 교주급 정치가들은 천왕을 꼭두각시로 삼아 일본사람들 마음을 집단적으로 훔치게 조작했다. 훔쳐진 마음을 가스라이팅해가며 세계사에 역사적으로 씻을 수 없는 사이비국가의 만행을 저질렀다.
팬덤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개딸, 태극기 부대, 이름이 붙은 빠는 모두 자신의 마음의 주인됨을 도둑맞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모인 곳이다. 이들의 행태를 보면 사이비 교주에게 마음을 도둑질 당한 사례들과 비교해서 강도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선동가에게 마음을 도둑질 당한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모여서 집단사고에 빠져 레밍의 쥐가 되거나 악어 강물로 뛰어드는 누우떼가 되거나 설국열차를 타고 파국의 종착역을 향해 질주한다.
진성리더십과 일반리더십이 분기되는 지점이 여기다.
진성리더십에서도 누구를 역할모형으로 마음으로 복제하는 과정을 경험하지만 복제의 주체가 자신이다. 어떤 상황에도 대상이되는 사람에게 마음의 주인의 자리를 함부로 내주지는 않는다. 진성리더가 배우고자 하는 상대가 리더의 마음 속에 들어와 날줄을 제공하면 진성리더는 이 날줄을 이용해서 자신이 삶의 목적을 씨줄로 만들어 자신만의 고유한 태피스트리를 만들어낸다.
진성리더란 자신의 존재목적을 실현하는 일에 주인됨을 빼앗긴 적이 없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진성리더도 가끔은 마음의 한 구석을 상대에게 내주지만 절대로 주인의 자리를 내어주지는 않는다. 진성리더가 다른 특정한 사람을 우상화해가며 자신의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거나 가스라이팅 당해서 마음의 자리를 임의로 빼앗기는 일은 없다. 진성리더가 자신의 삶에 대해 누구보다 떳떳한 이유는 살아오는 동안 길을 잃고 남에게 미혹되어 마음을 빼앗긴 마음의 노예로 전락한 치욕스런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당나라 임재선사는 마음의 주인은 오직 자신이라는 원리를 설파해 당대의 현승으로 이름을 떨쳤다. 임재선사가 설파한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이란 어디에 서 있던 자신이 자신 마음의 주인이라는 점을 잃지 않는다면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은 결국 진실로 세워진다는 조언이다.
예수와 사도 바울이 기독교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이유도 유대인과 구약의 율법주의에 빼앗겼던 마음의 주임됨을 하나님과 자신에게 돌려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앉은뱅이, 나병환자, 고아, 과부의 아픔을 치유하는 기적을 행하며 이들에게 가르친다. "나(예수)를 우상화하는 삼인칭 믿음이 아니라 네 자신과 하나님에 대한 일인칭 믿음이 너를 일으켜 세웠다."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의 주인은 오직 환자 자신들임을 설파한 것이다.
사이비 교주에 미혹된다는 것은 마음의 주인자리를 빼앗겼다는 뜻이다. 마음의 주인됨을 빼앗긴 순간 자신은 이들의 유사노예로 전락한 삶을 살게 되어 있다. 유사노예로 산다는 것은 더 이상 자신 삶을 주체적 선택을 못하고 책임지지 못하는 것이다. 선택하고 책임지는 주체적 자신을 믿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삶이 더 이상 자신 것이 아님을 뜻한다.
자신도 모르게 이들에게 마음의 주인자리를 빼앗기고 살았다면 지금은 이들을 내몰고 마음의 주인된 권리를 찾아와야 할 시간이다. 자신의 존재이유가 아닌 돈, 권력, 명예에게 자신 마음의 주임됨을 빼앗겼어도 마찬가지 큰 사단이 난 것이다.
우리 마음의 주인이 신이 아니고 인간이라면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주인됨에 대한 오롯한 권리는 오직 자기자신만 행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