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은 그의 저서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서 과시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과시소비는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계급을 과시하는 소비 행태를 말한다.

베블런에 따르면, 과시소비는 주로 신흥 상류층에서 이루어지는 소비 행태이다. 몇 세대를 이어온 견고한 상류층은 그 사회의 누가 보아도 상류층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굳이 명품으로 자신을 알려야 할 필요가 없다. 이들이 쓰고 입는 제품이 경제적 가치로서는 허접해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명품 대접을 받는다. 견고한 상류층은 명품을 정의하는 계급이다. 최고의 상류층이 과시 소비에 나설 이유가 없다.

대한민국은 다양한 사회적 가치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최고의 상류층인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있던 명문가의 씨앗도 일제에 의해 괴멸당한 흑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무주공산인 최상류층을 열망하는 신흥부자와 중산층이 사회적 지위를 위해 경쟁하는 방식은 경제적 가치로 표준화된 명품을 통해서다. 이들을 중심으로 과도한 명품경쟁이 촉발되고 하위계층까지 명품을 통한 지위 경쟁에 뛰어든다. 다양한 사회적 가치의 원천인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존재하지 않는 한국과 같은 신흥국가에서 벌어지는 과도한 지위경쟁이 국민을 명품의 노예로 만든다.

대한민국에서 사회적 지위는 견고하게 확립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이 입고, 쓰고, 사는 것으로 자신의 부를 과시함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으려 경쟁한다.

사람들이 경쟁에 뛰어드는 이유는 지위가 인정되면 과도하게 자기 주장을 없이도 자신의 생각과 태도와 가치로 다른 사람들에게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으면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거래 비용이 들지 않는다. 인정받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으면 삶이 수월해진다. 소위 사는데 거래비용이 들지 않는다. 명품 과시소비 경쟁은 타인으로부터 존경과 인정을 받으면 삶이 쉬워지게 만드는 거래비용을 줄이려는 욕망 때문에 생긴다. 지위가 확고하지 않은 신흥 계층은 가격이 비싸고 희소성이 높은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부를 과시한다.

대한민국은 세계를 대표하는 명품 과소비 국가다. 대한민국은 명품 소비와 고급 자동차 소비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보이고 있다. 2021년 기준 대한민국의 명품 소비 규모는 세계 2위이며, 1인당 명품 소비 지출액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의 고급 자동차 보유 비율은 세계 10위권에 들고 있다. 2022년도 다르지 않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인 명품 소비액은 168억 달러(약 20조 9,000억 원)이다. 1인당으로 따져보면 325달러(약 40만 4,000원)를 명품을 사는데 소비한다. 미국은 280달러(약 34만8000 원)이고 중국은 55달러(약 6만8000원) 수준이다.

심지어는 일반 시민대상의 민생정책 토론회에서 대통령도 나서 영국 국빈 방문 중 최고가의 벤틀리를 시승해봤다고 자랑할 정도다. 평균 차 가격이 3억이 넘는 밴틀리의 2022년 국내 판매량은 775대로 동아시아 태평양 국가 중 부동의 1위다. 명품이라면 뇌물도 마다하지 않는 명품 매니아인 부인이 전염시킨 것으로 보이지만 심지어 대통령 조차도 무의식적으로 나서서 외제 명품차에 대한 존경과 과시 소비 열망을 노출한 것이다. 다른 대한민국 대통령에 비해 자신이 받고 있는 대통령으로서의 존경과 지위에 대한 불안을 은연중에 노출한 것이다.

최근 들어 대한민국을 명품 과소비 공화국으로 만든 것에 크게 기여한 것은 SNS지만 한국인들의 미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불안과 사회적 지위를 평가하는 기준이 경제적 부로 획일화 된 것도 크게 기여했다.

본인은 실제 명품에 대한 과소비는 부풀려진 사회적 지위와 지위를 부풀리기 위한 과도한 경쟁 때문이라는 논문을 1996년에 발표한 적이 있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의 명품 사랑은 SNS의 보편화와 모든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날개를 달았다. 과시소비에 관한 일거수 일투족이 사진과 동영상으로 비교 평가된다. SNS는 대한민국을 세계 제일의 과시 소비공화국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남들과 비교하는 것으로 자신의 행복도를 추정하는 방식은 모든 불행의 원천이다. 남들과 비교하는 것이 불행의 원천이라는 점은 오래 전에 버틀란트 러셀 경이 『행복에 대하여 On Happiness』를 통해서도 경고했다. 남들과의 비교 우위로 행복을 정하면 마음은 가출한다. 가출한 마음 때문에 조바심에 놓이게 되고 결국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행복이 사라진다.

대한민국은 글로벌 명품 시장의 가장 확실한 봉이다. 명품 시장의 봉으로 전락한 이유는 대한민국이 내실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허례를 중시하는 경향, 미래 사회적 지위의 불확실성, 금전만능의 신자유주의, SNS의 등이 상승효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미래가 불안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지위의 안전을 확인하는 방법은 자신도 상류층과 같은 제품을 쓰고 입고 먹고 한다는 것에 대한 과시다. 자신이 아직 살아 있고 영향력과 존재감이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돈을 차입해서라도 사들인 명품 말고는 없는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미래의 상실은 다양한 가치를 창출하는 것에 대한 관점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모든 것을 오직 경제적 가치라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방식으로 확인하게 만들었다. 명품은 경제적 가치를 제외한 어떤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마지막 승부처다. 불운하게도 이들의 맞이해야 할 운명은 쌓이는 빚과 점점 사그러드는 존재감이다.

공자의 논어에 회사후소(繪事後素)란 말이 나온다. 하얀 바탕이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의역하면 본질이 있은 연후에 꾸밈이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어울려 살 수 밖에 없는 사회에서 개인의 본질이 텅 비어 있으면 누구나 꾸밈에 치중할 수 밖에 없다. 명품 과시소비는 자신에 대한 철학과 사명과 가치가 텅 비어 있을 때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과도하게 포장한 것이다. 회사후소는 우리의 고유하고 고매한 지위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명품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과 존재목적을 실현한 품성이라는 것을 놓치고 사는 것에 대한 경고다.

미래에 어떤 노력도 자신의 삶의 본질과 가치와 존재목적에 대한 진정성을 실현한 자신만의 품격을 만들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이 대한민국을 명품 과시 소비 공화국으로 만든 주범이다. 명품으로 포장하기에 바쁜 사람들에게서 삶과 사회에 대한 진정한 가치와 고매한 목적에 대한 신실한 주장을 들을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은 사회적 지위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과 부인조차도 스스로의 존재목적에 기반한 품격있는 사회적 지위를 설정하지 못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앞장서 진정성 상실 국가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