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3-14 15:03
[N.Learning] 초개인주의의 음모에 저항하라!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1,331  
초개인주의의 음모에 저항하라!
디지털 가스라이팅
AGI나 휴머노이드 로봇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AGI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결합되면 마치 초합리적 초효율성이 극대화되어 인간의 새로운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처럼 선전한다. 위험천만한 주장들이다. 초연결 디지털 혁명은 현실이어서 피할 방법이 없지만 제대로 알고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인간은 모두 디지털이 만든 초합리적이고 초효율적인 아바타에 종속된 노예 삶을 살게 예정되있다.
아바타로 살 것인가?
인간으로 살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우리 연구팀은 (Cornell University, Lawler교수, USC의 Thye 교수, Jeongkoo Yoon)은 20 여년 전부터 초연결 디지털 혁명시대가 도래하면 데이터에 대한 주권이 알고리즘을 운영하는 회사에게 넘어가고 인간은 결국 디지털 노예로 전락할 것임을 경고해왔다. 특히 이들이 사용하는 미끼가 개인화라는 점을 경고했다. 개인화를 향한 분절이 극대화되면 사회가 붕괴되는 수순을 경험할 것이라고도 경고해왔다.
디지털 데이터 플랫폼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지속적으로 분석되어 이들의 디지털 광고 용어인 초개인화된 인간(Hyper Individualized Humans)으로 쪼개진다. 데이터를 양도한 인간은 디지털 플랫폼 상의 알고리즘에 분석되어 결국 독립적 인간으로서의 개성을 잃는 상태인 탈개성화(Depersonalization)에 도달한다. 탈개성화된 상태는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재이유를 잃은 상태임에도 디지털 알고리즘은 마치 개인에 대한 개별형 맞춤이 완결된 이상향인 것처럼 광고한다. 디지털 알고리즘을 개발한 회사가 개인에 대한 완벽한 조정이 가능한 상태로 전환된 탈개성화된 개인을 광고주에게 팔아 먹기 위한 전략이다.
광고주와 알고리즘의 결합된 디지털 광고는 인간의 개인의 삶을 사막의 모래알로 만들어 해체시킨다. 초개인화된 인간은 자신이 광고주에 팔려서 광고주가 요구하는대로 제품과 서비스를 사는 것을 가스라이팅 당해도 이것을 가스라이팅이라고 인식하지도 못한다. 디지털 가스라이팅을 통해 디지털 노예로 전락한 개인은 광고주에게 헐값에 팔려나가 이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소비노예가 된다.
초연결사회 디지털 알고리즘이 개인을 분해하는 초개인화에 관련된 두 과정이 존재한다. 하나는 재범주화(Recategorization)이다. 재범주화란 개인들을 가진 외재적 속성(성별, 나아, 세대, 직업, 부, 교육, 등등)으로 최대한 겹치는 동질한 범주로 나누고 이들이 내재적 속성(가치, 선호, 취향 등등)의 공통점을 파악한다. 동질성이 파악된 이들에게 자신과 비슷한 범주의 사람들이 행동, 태도, 말에 맞는 맞춤형 소비를 제안한다. 이들을 동질성을 가지는 범주로 획일화된다. 다른 하나는 탈범주화(Decategorization)이다. 탈범주화란 재범주로 쪼갠 개인을 다시 개인의 살아왔던 역사를 파악해서 다시 내면적으로 분절시키는 과정이다. 개인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과거와 현재 데이터를 추적해 이 개인의 미래를 제안하는 과정이 초개인화를 향한 탈범주화의 과정이다.
초개인화를 추동하는 과정을 통계적으로 표현하면 재범주화는 Between Subject Variance를 파악해서 분류된 개인에 맞춤형 답안을 제시하는 방식이고 탈범주화는 개인의 내재적 역사를 추적해서 Within Subject Variance를 파악하여 개인의 맞춤형 미래를 제안하는 방식이다.
재범주화와 탈범주화가 끝난 개인들은 알고리즘에 의해 완전히 정체가 파악된 초개인이다. 이런 초개인은 알고리즘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재이유를 빼앗긴 탈개성화(Depersonalization)된 디지털 노예다. 초개인이란 이름으로 서비스되지만 알고리즘은 디지털 초동질성으로 관리되는 동질성 상태다. 초동질성이란 이름이 붙는 이유는 개인에게 들키지 않는 동질성이기 때문이다. 초동질성이든 동질성이든 동질성이란 정형화된 틀이 만들어져 관리되는 상태다. 데이터의 주권을 빼앗기기 시작했을 때부터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디지털 플랫폼 회사의 거대 알고리즘에 의해 만들어지고 조정되는 아바타는 조금씩 우리의 영혼을 털어가 우리를 영혼 없는 몰인간 de-person으로 전락시킨다. 예를 들어 나의 아바타가 나의 성향을 빅데이터 분석해서 아침에 일어나면 무슨 치약으로 이를 닦어야 하고 어떤 비누를 써야 내 몸에 맞고 어떤 비타민을 먹어야 하고 모든 시나리오를 다 짜준다. 삶에서 생각 자체가 필요 없게 만든다. 나의 치명적 약점은 인간이기 때문에 기억을 잃어버리지만 아바타는 나의 모든 과거를 기억하여 오히려 나에게 회상시켜준다. 결국 아바타가 나보다 더 완벽한 나로 변신하게 된다. 결국 이 아바타와 나에 대한 정체성 게임을 할 경우 내가 이 아바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결국 아바타가 나의 정체성을 주장하고 다녀도 내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가장 강력한 디지털 플랫폼인 유튜브에 중독되면 이런 알고리즘만 아는 디지털 동질화를 통해 생각하는 과정을 쉽게 거세당한다. 결국 정체성을 아바타에게 빼앗기는 탈 개성화(Depersonalized)라는 상태로 가스라이팅 당한 것이다. 마치 네비게이션에게 우리가 길을 기억해서 쓸 수 있는 능력을 다 양도해준 것과 같은 일이 우리의 정체성 영역에서도 발생한다. 이런 현상을 책에서 탈개성화 혹은 몰인간화라고 칭했다.
우리는 디지털의 노예로 전락하는 인간과 붕괴의 수순에 돌입한 사회의 운명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고했다. 디지털 알고리즘의 태양에 의해 초개인주의라는 사막화가 진행될 수록 인간들은 사명이나 목적과 같은 일에 헌신하고 서로에 대한 아픔을 해결해가며 공동체를 건설하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인간이 디지털 아바타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은 자신의 의도에 따라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다. 아바타의 치명적 약점은 어떤 인간이 부여한 의도 이외에는 자기 스스로 의도를 갖지 못한다. AI가 인간의 일반지능인 AGI 상태로 발전해도 인공지능에게는 자신이 주체적으로 설정한 의도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모든 자발적 행위에는 다 목적에서 산출된 의도가 있고 이 자신의 신성한 의도에 봉사하는 스스로의 행동만이 자발적이다. 모든 자발적 행동의 기반은 맥락을 반영한 일인칭 내러티브다.
우리는 유발 하라리처럼 마치 디지털 혁명이 인간에게 신의 지위인 호모데우스를 선물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작가들의 의도를 지극히 경계한다. 신을 갈망하는 인간에 디지털 가면을 씌어 교묘히 인간을 거짓 우상화시킨 것이다.
철학자들이 지금까지 인간다운 모습을 잃지 않는 원리로 주장해왔던 자신과의 아날로그 싸움은 자신을 물상화키셔 몰개성화시키는 아바타와의 디지털 싸움으로 전락했다. 디지털은 시대의 날줄이고 아날로그는 자신의 존재이유로 자신을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는 씨줄이다. 날줄과 씨줄을 직조해 자신만의 고유한 태피스트리로 알고리즘을 가진 사람들만 경쟁우위를 딛고 존재우위의 삶을 구가할 수 있다. 경쟁우위와 존재우위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를 다시 복원시키는 전사이자 리더로 일으켜 세워질 것이다.
초개인화라는 말을 퍼트리는 학자나 디지털 전문가를 조심하라. 이들은 데이터 알고리즘의 주인인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들이 고용한 하수인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재이유를 잃지 않기 위해 같이 저항하는 사람들의 헌신이 사회적 헌신(Social commitment)이다. 사회적 헌신에 대한 각성만이 사막의 모래알로 변해가는 인간의 공동체를 복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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