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회사에서 팀장 리더십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들은 이야기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70년대 80년 대에 외국에 출장을 나가는 것이 흔한 기회가 아니어서 출장을 나갔다 오는 사람들은 볼펜 한 자루라도 선물을 사서 돌리는 것이 관례였다.

주인공 팀장이 관리하는 팀이 좀 큰 팀이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 선물을 사서 다 돌리려면 돈도 많이 들고 생색도 안 날 것 같아서 좀 괜찮은 선물을 사서 자신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몇 몇 직원을 불러서 몰래 주었다. 물론 다른 팀원들에게는 절대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해보니 회사 분위기가 왠지 냉냉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경과를 통해서 전파됐는지는 몰라도 고가의 선물 사서 누구 누구에게만 주었다는 이야기가 회사 전체에 이미 다 퍼져버린 것이다. 이 팀장님은 이 팀의 분위기를 예전으로 돌리기 위해서 밥도 사고 술도 사고 자신이 선물에 바친 돈보다 몇 십 배의 돈을 쓰고 팀을 간신히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 있었다.

이 팀장은 실험 정신이 강하신 분이었다. 또 출장을 가게 되었다. 이번에는 다른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본인 팀에서 다른 팀으로 자발적으로 전출해주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제일 눈엣 가시인 팀원에게 출장 후에 똑 같이 했다. 이번에도 너에게만 주는 선물이니까 절대로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다음 날 출근하니 놀랄만한 기적이 벌어졌다. 모든 팀원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한 등급 업그레이드 됐다는 것을 체험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신신당부한 이야기가 지켜지지 못했다. 하지만 팀에서 제일 못나가는 사람이 과분한 선물을 받았다는 소문이 퍼져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팀장이 평소에 잘 못 나가는 사람도 이 정도로 잘 돌봐준다면 자신은 앞으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훨씬 더 보살핌을 받을 것이라는 심리적 울타리에 대한 기대감이 모든 팀원들을 행복하게 한 것이다. 제한된 자원으로 할 수 있는 심리적 울타리의 경계가 이 사건을 계기로 확장된 것이다.

이 팀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면 자신의 팀에서 가장 힘들고 아픈 사람에게 써야 한다는 긍휼감의 원칙을 배웠다.

이 세미나 이후에 나에게도 하나의 원칙이 생겼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때는 가장 어렵고 아픈 사람을 사람 먼저 도와주어야 한다는 원칙과 어떤 논쟁에서 결론이 안 나는 사안이 생기면 가장 약자의 편에 서서 이 사람의 의견을 옹호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회사가 직원들을 회사에 헌신하기를 바란다면 마찬가지로 회사도 직원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일종의 심리적 계약이다. 직원들은 회사에 헌신하기를 기대하면서 회사는 월급으로 충분히 갚았다고 생각하고 돈을 넘어 직원들에게 헌신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심리적 계약이 위반된 것이고 심리적 계약이 위반된다고 생각하면 회사에 대한 신뢰를 거두어 들인다.

지금까지 조직연구에서는 직원들을 회사에 헌신하게 하는 방식만을 연구했지 회사가 직원에게 어떻게 제대로 헌신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다. 그냥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복지를 많이 해주면 헌신하는 것이라는 생각 수준에 머물러있다. 복지는 처음 시작할 때는 효과가 있지만 직원들이 당연시 여기기 시작하면 더 많은 복지를 해줄 때까지 직원들의 헌신을 일으키는데 효과가 없다.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은 순간적으로는 작동하는 것 같아도 관례화되면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조직연구에서 회사가 종업원에게 헌신하는 모습을 종업원이 느끼는 것을 POS(Perceived Organizational Support)라고 부른다. POS는 회사가 나의 존재를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하는지에 대한 종업원의 주관적 판단이다. 회사가 종업원을 큰 기계를 위해 돌아가는 남들과 똑같은 톱니바퀴라로 취급한다면 POS는 없다. 자신이 언제든지 고장나면 부품처럼 교체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자신을 위해서 헌신은 커녕 회사를 조심해야 할 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조용한 사직이 시작되고 직원들은 틈만 나면 다른 회사로 옮겨갈 생각을 한다.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이 칭찬이라면 종업원을 춤추게 하는 것은 회사에서 기계의 부품이 아닌 사람으로 인정(Recognition)받는 느낌이다. 요즈음 조직연구에는 POS를 실천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인정(Recognition)에 대한 연구가 급증하고 있다.

본인 랩실의 연구팀은 회사가 모두를 중요한 개인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게 만드는 상황은 잘한 사람을 그때마다 선발해서 칭찬하는 고래의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다. 회사에 사명과 목적이 존재하고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가치의 울타리가 구성되어 있을 때만 구성원은 회사가 자신을 포함해 모든 개인을 위해 헌신한다고 생각했다. 구성원 각자가 공유된 가치를 지켜가며 이 사명과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연마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었을 때 회사는 구성원을 찾아다녀가며 일일이 칭찬하지 않아도 구성원은 회사가 자신을 개별적 존재로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구성원은 기계의 톱니바퀴 취급받지 않고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것을 최고의 칭찬으로 생각했다.

사명과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둘러진 공유된 가치의 울타리가 없는 회사에서 모든 구성원을 존중받는 개인으로 인정받게 할 방법은 없다.

조직으로부터 살아 있는 개인으로 인정을 파괴하는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 할 폭탄은 조직정치다. 조직정치도 울타리 행위다. 문제는 이런 울타리가 작동된다는 생각이 들면 가치의 더 큰 울타리가 파괴된다. 힘 있는 소수의 연줄이 만든 울타리에 포함되지 못한 대다수는 모두 조직에서 이등시민이 된다. 똑같이 노력하는데 자신이 이등시민으로 취급받는다고 생각하면 일등시민으로 포함된 사람만큼 회사를 위해 헌신하지 않는다. 조용한 사직이 시작된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조직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만든 것은 자신들만 보호하는 토굴이자 싱크홀이다. 이런 싱크홀은 외부환경 변화가 들이 닥치면 자신도 무너지고 조직도 무너트린다.

사회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가치의 울타리가 무너지는 것은 국가가 소수의 혈연, 학연, 지연, 핵관의 카르텔 세력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다. 이런 핵관들의 카르텔 정치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국민들은 똑같은 세금내고 자신들은 이등시민 취급받는다는 생각에 도달하고 결국 국가를 위해 최소한의 헌신만 하는 상태에 머문다. 더 영리한 사람들은 국가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생각해 불법 편법으로 거위의 배를 갈라 알을 착복한다. 특히 이런 핵관의 중심에 가족을 뛰어넘어 현실에 기시감을 창출하는 무속인같은 세력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세상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지혜조차 사라진다.

사람들은 이런 싱크홀 세력에 의해 나라가 붕괴되는 조짐을 느끼면 이게 나라냐고 묻는다. 나라의 울타리가 무너졌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조직이든 사회든 국가든 구성원이 자신을 최고로 인정해준다고 느낄 때는 목적과 사명을 위해 헌신하는 운동장과 이 운동장에 심리적 안정을 제공하는 가치의 울타리가 작동할 때다. 이런 운동장이 마련된 조직 사회 국가의 구성원은 모두 자신의 개인적 토굴에서 나와서 운동장에서 공인된 선수로 인정받기 위해 땀을 흘리기 시작한다.

오늘은 동료에 대한 입바른 칭찬을 넘어 존재자체로 중요한 구성원임을 인정해주는 것에서 시작해보자. 동료와의 관계가 급진적으로 개선되는 것을 체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