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보수의 괴멸과 새보수의 탄생
대선 후 정치 전망
진보는 미래를 지향하고, 보수는 과거의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사회의 정치 동학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정치와 독립적으로 사회가 진화하면 진보는 보수가 되고 보수가 된 진보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 때문에 새 진보가 탄생한다.
공진화(co-evolution) 관점에서 보면 진보와 보수의 이원론은 상대적 개념일 뿐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현실은 진보를 세로축으로 보수를 가로축으로 두 축이 다 높은 지점에 좌표를 만들고 이 지점에서 진보와 보수가 교차해서 만들어낸 태피스트리다. 이 동학의 흐름을 놓치면 진보든 보수든 이름 앞에 수구라는 수식어가 붙고 시간이 되면 정치 지형에서 퇴출당한다.
공진화를 지향하는 세상의 모든 변화는 한 축의 변화가 다른 축의 변화를 불러온다. 사회는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자극하면서 함께 공진화하는 과정이다. 이런 원리는 생태계뿐 아니라 사회 구조, 정치 문화, 종교, 이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진보가 주장했던 노동권, 복지, 여성 인권 같은 이슈들은 어느 순간 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되었고, 더 이상 급진적이거나 새로운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지키자는 쪽이 보수가 되고, 보수를 탈피해 새로운 공진화의 방식과 가치를 요구하는 쪽이 다시 진보가 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진보’와 ‘보수’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시대와 조건에 따라, 서로의 위치를 넘나들며 재정의되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중요한 건 양쪽이 서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공진화를 추동할 때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을 보면 이런 공진화의 관점이 매우 명확하게 드러난다. 민주당은 여전히 스스로를 ‘진보 정당’으로 규정하지만, 실상은 오랜 시간 정치적 기득권을 유지해온 세력이다. 경제, 외교, 노동 문제에 있어서도 과감한 변화보다는 점진적 개혁이나 기존 제도의 수호에 더 초점을 맞춘다. 이는 이미 민주당이 더 이상 진보의 선봉이라기보다, 한국을 대표하는 ‘보수의 표준’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진보는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여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최근 변화보다는 안정을, 급진보다는 점진을 택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진짜 진보는 오히려 제도 바깥이나 새로운 정당, 혹은 시민사회에서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국힘당은 오래전에 보수의 가치를 상실한 수구 왕당파로 전락했다. 보수의 탈을 쓰고 왕이 되기를 꿈꾸던 윤석열과 청년들에게 양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속여 팔아 윤석열을 당선시킨 이준석의 공모에 넘어가 보수의 바통을 떨어트렸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이번 선거를 마지막으로 국힘당은 해체의 수순을 밟을 것이다. 보수의 깃발이 민주당으로 옮겨질 것이다.
민주당이 보수의 표준으로 정착하면 인권, 평화, 생태, DEI 관점을 주창하는 새 진보가 새로운 진보의 표준으로 등장해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을 다시 한번 공진화 시킬 것이다. 우리가 알던 왕당파 수구보수는 자연스럽게 괴멸될 것이다. 보수의 가치를 시대에 맞춰 공진화 시키지 못하고 바통을 떨어트린 잘못에 대한 역사의 형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