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A 씨는 스마트폰을 활용해 평소 거래하던 B증권사에서 ‘공동인증서’를 발급받았다. 이 인증서를 활용해 별도의 등록 절차 없이 C은행 모바일 사이트에 접속해 카드대금을 결제했다. 이어 PC로 D증권사 홈페이지에 접속하고 계좌 조회까지 성공했다. 인증서를 스마트폰에서 PC로 옮기는 번거로움도 없었다. ‘만능열쇠’처럼 증권, 은행이나 모바일 컴퓨터 등을 가리지 않고 쓸 수 있는 ‘공동인증서’가 있기 때문이다.
2019년부터 A 씨의 가상사례처럼 ‘공동인증서’로 여러 금융업종의 거래를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차세대 핀테크 보안기술인 블록체인(Block Chain)을 활용한 간편한 인증 기법이 도입돼 복잡하고 불편한 ‘공인인증서’를 대체하기 때문이다.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7∼12월)에 공인인증서를 대체하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공동 인증 수단이 선보인다. 1999년 도입된 공인인증서를 없애 금융거래 절차를 지금보다 간소화하고, 해킹 등 금융보안 사고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블록체인은 거래 정보를 암호화한 ‘블록(Block)’을 네트워크 참여자 모두에게 분산 저장시키는 디지털 장부를 가리킨다.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이 블록체인을 활용해 거래 장부를 만들면서 주목받았다. 블록의 암호는 예측이 어려운 고유 값을 지닌다. 해킹, 위조나 변조가 거의 불가능하다. 설령 암호 해독에 성공해도 블록이 거쳐 간 네트워크와 개별 참여자의 장부 모두를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블록체인이 도입되면 거래 명세 유출과 같은 금융 보안 사고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금융투자협회는 25곳의 국내 증권사, 5개의 블록체인 기술회사와 공동으로 서울 영등포구 금투협 빌딩에 블록체인 컨소시엄 사무국을 열었다. 이 컨소시엄의 1차 목표는 18년 된 공인인증서를 없애는 것이다. 그 대신 기관별, 접속장치별로 인증서를 이동 복사해야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고, 중장기적으로 은행용과 증권용 인증서의 칸막이를 제거한 ‘공동인증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김태룡 금투협 정보시스템실장은 “블록체인은 소비자는 시간을, 금융사는 인증서 관리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했다.
금투협은 앞으로 3년간 금융투자상품의 청산 및 결제, 주식거래 같은 실시간 금융거래 등으로 이 공동인증서를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황영기 금투협 회장은 “금융투자업계에서 원천기술과 업계 표준을 만들어 보급하고 해외에도 통용되는 수출상품으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블록체인에 대한 중복 투자를 우려한다. 국내 은행 5곳이 별도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블록체인을 활용한 자금이체, 고객확인, 외환거래 때 활용방안 등을 개발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도 금융권과 별도로 산업분야에 활용할 블록체인 개발 공모를 진행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기술 개발의 효율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공동연구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