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10-29 16:43
[N.Learning] 행복과 BHAGs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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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준  

행복과 BHAGs 

1.

다닐엘 길버트는 <행복에 걸려비틀거리다>라는 책에서 우리가 행복을 지상최대 목표로 삼고 행복을 얻으려 노력하지만 행복에게서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오랫동안 별러온 자동차를 사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녀와 헤어지면 나는 죽는게 아닐까 

그러나 막상 그런 일이 닥치면 그리 행복하지도, 절망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상상에는 뭔가 치명적결함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 자동차를 사면 매우 행복할 것이라 상상하지만 이 상상 속에는 잔소리하는 상사, 돈 빌려 달라는 친구, 퇴근길 주차전쟁이 빠져 있고, 애인과 갈라서면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지만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심리적 면역체계가 있어서 사람들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기 때문이다.

상상에는 세 가지 오류가 있다.  
첫 번째는 상상의 과정에서 우리는 없는 정보를 채워 넣거나 혹은 있는 정보를 빠뜨려서 그린다는 것이다. 
두 번째 오류는 미래를 미리 살 수 없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으로 미래를 투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오류는 일단 어떤 일이 발생하고 나면 그 일은 상상할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점을 미리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상상으로 만들어진 행복의 기대로 현실에 대한 도박을 거는 일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를 되묻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꿈꾸는 비전은 어떤가? 카리스마가 창안하고 있는 미래의 기대와 열망은 이미 수없는 오류를 포함한 허구란 말인가? 내가 꿈꾸는 비전은 원천적으로 오류를 포함한 망상에 불과하단 말인가? 그 기대로 오늘과 젊음을 파는 일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다니엘 길버트는 끝내 이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치밀한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을 통해 경쟁사를 행동을 예측해 내고, 그런 예측에 근거해 전략적 선택을 하고, 혹은 컨설턴트들이 제시하는 현란한 트랜드에 현혹되어 자신에 대한 미래의 불안감을 덜어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2류기업들의 비전은 결국 불행하지만 오류로 점철된 미래를 만나게 된다.  

콜린스나 포라스가 지적하듯이 성공하는 기업이 치밀한 전략적 기획가들이 아니었다는 것은 이 같은 상상적 예측을 동원한 획기적 전략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를 반증한다. 


2.
그레고리번스는 <만족>이라는 책에서 진정한 행복과 만족은 목표를 달성했을 때보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있음을 역설한다. 신경과학 분야의 연구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섭식과 섹스, 마약 복용과 같은 쾌락에 대한 반응으로도 분비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실제 이 도파민의 분비는 이러한 활동들이 완성되기 이전에 이루어지는데, 이는 도파민이 쾌락과 관련해 분비되기보다는 특정한 상황을 예상할 때 분비되는 화학물질임을 보여준다. 

삶의 만족과 행복은 목적을 달성한 뒤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그 기대로 인해 얻어진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도파민이 흐르도록 하는 결정적 요소가 바로 새로움(novelty)이라고 말한다. 새로움이란 처음으로 그림을 보는 것, 새로운 단어를 배우는 것, 없었던 모험과 도전을 하는 것 등 거의 모든 것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안정을 희구하는 듯하지만 반대로 행복을 열망하는 우리는 뇌는 항상 새로움을 동경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역설적으로 오히려 무모하리만치 미래에 대한 열망을 담아내고 있는 BHAGs(Big Hairy Audacious Goals)야 말로 오류를 안은채 상상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적 한계를 넘어서는 진정한 비전임을 깨닫는다. 그것은 논리적 수순도 과학적 검증도 요구되지 않는다. 오히려 비 현실적인 오류투성이의 미래를 맹목적으로 열망함으로써 삶의 수없는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진정한 삶의 에너지와 열정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미래 이전에 Bhags가 우리게 에게 주는 진정한 삶의 행복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상하는 미래는 오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불가피하게 상상을 통해 그 새로움을 열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Bhags의 비전은 막연한 상상, 혹은 치밀한 분석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미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확인하고, 그를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미래의 맹목적 거점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그런 Bhags야 말로 우리로 하여금 새로움을 위한 끊임없는 실험과 도전을 요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 속에서 이미 우리가 원하는 행복과 만족을 다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구원하겠다던 예수의 꿈, 
인도의 독립을 꿈꾸던 간디의 꿈, 
진정한 평등이 오리라 믿은 마틴루터의 꿈, 
빈자와 죽어가는자들 곁에 남으려던 마더데레자의 꿈, 
아파르헤이트가 종식될것이라 믿은 넬슨 만델라의 꿈, 
오지의 원주민을 도우려던 슈바이처의 꿈, 
일제 강점속에서 독립을 열망하던 김구의 꿈....

이 모든 꿈은 하나같이 허무맹랑한 BHGS였으며 결국 그들은 이미 그 완성을 넘어 자신들의 꿈을 이루었고, 그 과정에서 흥분된 감정을 공유시킴으로써 온 인류를 행복하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들이 말하는 진정한 행복은 오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의 성찰로부터 진정으로 꿈꾸고 희망하는 자신의 모습을 창안하고, 끊임없이 새로움에 대해 자신을 열어놓는데서 오는 것이라는 것임을 그렇게 몸으로 증명한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