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탄핵사태를 계기로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던 참가자들 세 분이 사망하는 비극이 현실로 벌어졌다. 왜 대한민국에서 이런 참담한 비극이 평범한 일상처럼 벌어지는 건가? 안타까운 것은 귀한 생명이 사라지는데도 매스컴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보도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죽음이 싸구려 취급 당하게 요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 중 하나는 죽음의 선동자들의 광란 때문이다.
대표적인 죽음의 선동자로 거론되고 있는 사람이 KBS 전 아나운서로 알려진 정미홍씨이다. 정미홍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탄핵이 인용되면 스스로 자살을 하겠다는 공언을 통해 죽음의 가미가제 행렬에 동참을 호소했다. 탄핵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이 약속이 지켜지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겠다고 대응하자 그제서야 꼬리를 내리고 그냥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는 의미였다는 취지의 글을 다시 올렸다. 이런 논쟁이 진행되는 과정에 이미 세 사람의 귀한 목숨이 사라졌다. 정미홍씨가 내 논 죽음에 대한 변명은 인간의 목숨을 시장 상인들이 파는 미나리 깡 취급한 것이라는 비난이 거세다.
이번 사건은 어떤 국민에게는 장례식이고 누구에게는 새로운 탄생을 맛보는 축제다. 결국 한 집안에 장례식과 새로운 생명이 탄생이 겹친 것이다. 성숙한 시민의 역할이 기대되는 국면은 이런 이율배반적 상황을 어떻게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성숙한 지혜가 발휘되는 것은 지금부터이다. 축배를 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국민들이라면 장례를 치뤘다고 믿는 사람들을 위해 진심으로 장례을 위로하는 긍휼감도 요구된다. 장례식에서 슬퍼하는 이들에게 세상이 변했음을 긍휼감을 가지고 설득시켜야 할 것이다.
이분들이 고립된 세상에서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들이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따라서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과는 동떨어진 것이라는 것을 진심을 가지고 알려야 할 시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분들이 왜 이런 신화적 스토리에 몰입하고 여기에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고 이분들의 고통을 들어주고 감내하는 국민적 긍휼감이 필요할 것같다.
이런 성숙한 시민의식만이 정미홍과 같은 선동자들에 이끌려 무고한 목숨이 희생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선동가에 의해서 고귀한 생명이 시장상인들이 파는 미나리 깡처럼 싸구려 취급당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했던 7-80년대에는 독제의 그늘에서 호의호식하던 분들이 이제서야 허수아비로 만들어놓은 잘못된 민주주의 유령을 위해 죽음을 독려한다는 것은 자신들이 죽음의 망령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이데거의 주장대로 진짜 죽음 앞에서는 진실 빼고는 다 의미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