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식을 돈으로 살 수가 있을까?
임원 리더십 세미나를 진행하다보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이다. 전략적 인사관리라는 기법을 운용하는 사람들은 돈으로 주인의식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전략적 인사관리란 회사의 전략에서 정한대로 일을 해주면 그것에 맞추어서 보상을 해준다는 것이다. 과제을 정하는 것은 회사이고 이 명령대로 수행해주는 것은 종업원들이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해보는 것은 금물이다. 회사는 일을 시키는 주인이고 종업원은 고용된 고용인이 된다. 주인은 고용인들에게 시키는대로 일을 하라고 주문을 해놓고 대신 주인의식도 가지라고 신신당부한다. 회사는 종업원을 어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리인 역할을 잘 못할 것이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주인의 주문은 피그말리온 효과가 되어 대부분의 순진한 종업원에게는 은연중 세뇌가 된다. 시키는대로 어린이 노릇해가면서 주인의식도 가져보려 노력한다. 하지만 어린이와 주인의식 간의 이중성 때문에 종업원 어린이는 고민한다.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주인이 볼 때만 주인의식을 연기하는 연기자가 된다.
김사장님과 윤사장님이 있다. 이 두분은 동종업계에 종사하고 있다. 회사를 키워서 글로벌 회사로 만들고 싶은 야심을 공유하고 있었다.
김사장님은 글로벌 회사로 키운다는 자신의 꿈을 실천하기 위한 단계로 몆 일간 밤을 세워 큰 비전을 만들었다. 이 비전을 신년 시무식에서 발표하여 공식화했다. 종업원들이 비전을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시험을 치러 인사고과에 반영했다. 자신의 비전을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팀장으로 발탁해 전략적 프로젝트를 할당하고 성공할 경우 막대한 인센티브와 임원 승진을 약속했다. 모든 회사의 역량을 한 방향으로 정렬시키고 집중했다. 한 사람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사장보다 더 연봉이 높은 핵심인재를 영입하고 비전을 달성하는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무한경쟁을 할 수 있도록 HR을 다 바꾸었다. 최신의 경영기법으로 모든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업그레이드시켰다. 일사 분란함과 스피드, 불필요한 일을 과감히 포기하는 스마트 워크를 핵심 가치로 설정했다.
윤사장님은 생각이 달랐다. 자신이 방향은 잘 알고 있지만 현업의 문제는 현장전문가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이런 철학으로 대표이사로서 자신의 임무는 큰 그림과 전략적 골격을 정하는 대목의 역할을 수행하고 종업원들은 소목의 역할을 수행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몇일 밤을 세워 회사의 비전이 만들어지자 신년사에서 이 큰 그림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종업원들에게 임무를 주었다. 내가 만든 것은 큰 그림 초안이고 여러분이 지금부터 방도 예쁘게 꾸미고 화단도 꾸며서 여러분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집을 완성하도록 주문했다. 종업원들은 몇 차례 워크숍을 통해 집을 완성했고 사장님께 프리젠테이션해서 사장님의 재가를 얻어냈다. 회사는 이런 비전 프로젝트는 모든 부서와 구성원의 협업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100% 개인보상이던 보상평가 체계를 개인 70% 집단 30%의 비율로 바꾸었다.
두 회사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제 설립한지 20주년이 되는 두 회사는 아직까지 살아서 영업을 하고 있다. 김사장님이 이끄는 회사는 초기 6, 7년간 업계의 스텔라 플레이였다. 하지만 한 번 피크를 친후 불황이 닥치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대부분의 원년 멤버가 다 이직했고 핵심인재들도 다 회사를 떠났다. 윤사장님의 회사는 초반기 지지부진한 영업실적으로 시장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가 경기가 불황으로 돌아서자 서서히 새로운 별로 등장했다.
이 두 회사의 운명을 가른 것은 주인의식이다.
김사장님은 회사의 비전에 대한 Text를 혼자서 완성하고 종업원들이 이 텍스트에 나와 있는 스토리를 바꾸지 못하도록 시험까지 봤다. 이 텍스트에 나와 있는 스토리를 일사분란하고 빠르게 실현하기 위해 전략적 인사관리의 기법을 동원했다. 비전을 달성하는 곳에 돈과 승진이 흐르도록 관리했다. 종업원들은 사장이 만든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고용된 비싼 머슴이었다. 경기가 바뀌자 새롭게 비전이 다시 써져야 함에도 사장이 비전은 아무리 어려워도 오랫동안 지켜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어서 수정하지 못하고 회사는 무너져 내렸다.
윤사장님 회사 직원들은 비전을 자신들이 만들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장님이 텍스트를 만들었지만 자신들이 공동으로 개입하여 텍스트를 컨텍스트 context로 맥락화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회사 비전 스토리에 작가로 참여한 또 다른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경기가 바뀌자 이들이 공동으로 쓴 맥락적 스토리를 종업원들이 주체적으로 다시 진화시켰다. 회사의 스토리에 작가와 주인공으로 참여하게한 노력이 경기가 어려울 때 대단한 힘을 발휘했다. 스토리의 작가란 생각, 이 스토리의 주인공이란 생각이 주인의식을 결정한 것이다.
화성을 세운 정조도 화성을 완성한 후 여기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의 이름을 남기도록 했다. 스티브잡스는 아이폰 개발에 참여한 디자이너의 이름을 핸드폰 안에 프린트하도록 했다.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의 역사를 만들 때 삼성전자의 임원들을 프랑크푸르트에 불러서 신경영의 스토리를 같이 쓰도록 삼성전자의 빈 노트를 넘겨주었고 이런 역사 같이 쓰기가 현재의 삼성전자를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이 모든 노력이 리더가 가진 텍스트를 컨텍스트로 바꾸려는 노력이다. 구성원을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참여시켜 변화의 맥락을 만드는 작업이다. 뛰어난 텍스트만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고 컨텍스트라는 맥락을 만들었을 때 세상이 변화한다는 것을 아는 탁월한 리더들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주인공으로 참여해 자신이 책임져야하는 프로젝트에만 주인의식을 느낀다. 돈으로 주인의식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많은 금전적 보상은 만들어진 역사적 성과에 소유권을 주장하지 말라는 묵시적 경고일 뿐이다. 이렇게 묵시적으로 경고해놓고 돈을 많이 줬으니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주장하는 이율배반만큼 역설적 이율배반도 없다. 돈을 아무리 많는 핵심인재라 하더라도 심리적으로는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소유의식은 역사적 족적을 만드는 일에 주인공으로 text를 기여했을 때만 생긴다. 주인의식을 원하다면 텍스트에 기여해 컨텍스트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인문학 열풍이 실패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누군가가 주인공이 되는 텍스트를 만드는 일에 공을 들이지만 이 텍스트를 어떻게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컨텍스트로 맥락화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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