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4-27 14:36
[N.Learning] 변화에 대한 두려움 극복하기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2,891  

   자신의 정신모형의 범위 내에서 세상을 보고 이해하고 행동하는 조직이나 구성원들은 심리적 안정지대를 경험하게 된다. 문제는 조직이나 개인을 둘러싼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세상을 이해하고 이를 근거로 항해하는 배의 지도에 해당되는 정신모형은 전혀 바뀌어 지지 않을 경우이다. 이와 같은 상태로 항해를 지속할 경우 결국 좌표를 잘못 잡아서 풍랑을 만나게 되고 결국 배는 침몰하게 마련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이나 조직은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불확실성의 망망대해로 몸을 던지던지 침몰하는 배와 같이 운명을 같이 하던지 결딴을 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나 조직의 선택은 안타깝게도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같이 하는 방향이다. 배가 침몰하는 순간까지만 이라도 심리적 안정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선택을 자신은 지독하게 재수가 좋은 사람이나 조직이어서 불행이 닥칠 때는 다른 사람들을 다 거친 후 마지막에 자기를 덮치게 될 것이라는 식의 맹목적 낙관을 통해서 정당화한다.  또한 파도와 풍랑이 곧 잠잠해지고 다른 배들이 나타나서 자신들을 구해 줄 것이라고. 이처럼 정신모형은 자신에게 심리적 안정지대를 제공할 뿐 아니라 맹목적 낙관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심리적 안정지대를 벗어나서 불확실성의 망망대해로 몸을 던지는 행동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다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에 던져지는 태아들이 겪는 불안과 공포와도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머니의 따뜻한 모태에서 느끼던 심리적 안정을 버리고 자신의 이해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세상 밖으로 던져지기 때문이다. 

    짐 케리 주연의 Truman Show라는 고전적 영화에서 한 평범한 보험회사 샐러리맨이었던 트루먼 버뱅크의 이야기는 심리적 안정지대를 벗어나는 일이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무서운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인가를 잘 묘사해 주고 있다. 트루만은 시해븐이라는 그림 같은 지상낙원에서 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아내도 있고 석양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절친한 친구도 있다. 안정된 직장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30년간 매일매일 방영되어 왔던 리얼리티 쇼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트루먼은 섬을 탈출하기로 결정한다. 목적지는 자신의 첫 애인이 살고 있는 피지라는 섬이다. 문제는 트루만이 물에 대한 엄청난 공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아버지를 잃은 아픈 과거가 있어서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 왔던 탐험가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트루만은 물에 대한 공포 때문에 섬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 결국 물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탈출에 대한 꿈이 더 커져버린 트루만은 요트를 타고 섬을 빠져나간다. 트루만 쇼의 연출가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의 탈출사실을 알고 공포를 통해서 제압하려고 한다. 인공파도와 거친 폭풍우 등을 이용하여 트루만을 익사직전까지 몰아넣지만 트루만은 이에 굴하지 않고 인공세트의 끝에 도달해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비상구 앞에 선다. 이때 제작자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에게 경고한다. “밖의 세상은 시해븐처럼 안락하지도 않고, 범죄와 불행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는 경고에도 트루만은 비상구를 열어 더 이상 조작되지 않고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세상으로 과감하게 걸어 나간다. 트루만이 자신만의 안락한 정신모형을 버리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향해 요트를 몰기 시작했을 때 느끼는 공포가 맨탈모형이 보장해 부는 심리적 안정지대를 포기할 때 감내해야 하는 공포인 것이다.

     변화란 안락하고 편안했던 자신 맨탈모형이 지정해 준 세상을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을 의미하고 이는 흥분보다는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요즈음의 광고 카피 제목처럼 많은 불편과 고생을 예고해준다.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야 할 때 웬만하면 변화를 하지 말아야 할 많은 변명과 이유를 만들어 낸다. 그 변명과 이유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 이 나이에 새로운 것을 시작하다 실패나 하지 않을까? 혹시 실패라도 하면 얼마나 창피할까? 새롭게 변한 상황에서 기득권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미지의 세상에서 잘 해나갈 수 있을까? 지금도 괜찮은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생고생을 사서 해야 하나? 고통스럽지나 않을까? 변명이야 이처럼 다양할 수 있지만 이 모든 변명들의 뿌리는 한 곳에서 자라고 있다. 지금까지 쌓아서 의존해왔던 맨탈모형이다. 이처럼 맨탈모형은 조직이나 사람들이 변화를 하려 할 때 물귀신처럼 불안과 공포를 만들어 내서 변화를 못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좋은 말로 하는 전략, 위협전략, 강제전략

    종업원이나 부하들이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맨탈모형을 포기하지 못할 때 변화를 이끌어야 하는 사람들이 주로 쓰는 전략이 위협전략이나 강제전략이다. 다음은 퀸이 소개하는 사례이다. 

   애들 둘을 가진 가족이 모처럼 동물원으로 나들이를 나왔다. 동물원 입구에는 동네에서는 볼 수 없는 멋진 그네가 있었다. 작은 아이는 그네를 보자 먼저 차지하기 위해 형을 제치고 달려가서 마침 한 빈자리를 차지했다. 동생이 멋진 그네를 보고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자 형도 타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한다. 형이 동생에게 간청했지만 동생은 모처럼의 멋진 그네를 놓칠 수 없었다. 둘 사이 긴장과 갈등으로 시끄러워지자 주변의 사람들이 애들 부모에게 눈총을 보내기 시작한다. 부모로써의 역할을 해서 조용히 좀 시키라고. 부인은 남편에게 눈짓을 보낸다. 남편이 나서서 달래지만 작은 아이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마침 숲을 돌아서 저쪽 보이지 않는 곳에는 그네보다도 멋진 회전목마가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한 애의 아버지는 저쪽에 더 좋은 더 재미있는 회전목마가 있으니 이것은 형에게 주고 저쪽으로 가자고 설득을 해보지만 회전목마를 본적도 없고 실제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아이를 설득시키기에는 더욱 역부족이다. 아버지는 좋게 말로 하는 전략이 먹혀들어가지 않는 것을 보고 전략을 바꾼다. 위협전략이다. 이렇게 나오면 집에 가서 게임을 못하게 할 거다. TV 만화 영화 시청도 오늘로 끝이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위협전략을 다 동원해 보지만 오래전부터 아버지가 자신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전략이고 실제로 그렇게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아이는 그네를 놓지 않는다. 형과 아우의 싸움이 더 시끄러워지자  아버지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한다. 작은 아이의 손을 끌고 회전목마가 있는 쪽으로 혼을 내키며 발버둥치는 아이를 끌고 간다. 끌려오는 동안 울고불고 갖은 난리를 다 치지만 숲을 돌아서 회전목마가 작은 아이의 눈에 들어오자 작은 아이는 휘둥그레져서 회전목마 쪽으로 달려간다. 작은 아이는 5분전에 그네에 그렇게 집착하고 울며 난리를 쳤다는 사실조차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듯이 보인다.

  조직에서 상사들이나 사장님이 종업원들을 변화시키는 방식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일단 변화해야 할 이유를 논리적으로 좋게 설파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변화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는 종업원들의 머리를 움직일 수 있는지는 모르나 종업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변화에 동참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안 변화담당자들은 전략을 수정한다. 변화에 동참하면 어떤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으며 만약 거부한다면 어떤 불이익을 당할 것인지를 통해서 변화를 일구려 시도한다. 심지어는 BSC에나 MBO에 변화를 얼마나 했는지를 반영하여 관리하기까지 한다. 이와 같은 상벌의 강조는 종업원의 변화에 대한 마음을 사기에는 오히려 부정적 효과를 더 가져오게 되고 이와 같은 인센티브는 일시적이어서 변화가 어느 정도 달성되면 없어져 버린다는 것을 배운 종업원들은 폭풍우를 피하는 전략을 택한다. 깊숙하게 변화에 관여하지 않고 한 쪽 발만 담근 채로 언제든지 빠져나올 자세를 취한다. 변화에 대한 몰입은 기대할 수 없다. 결국 변화의 노력이 지지부진해지는 것을 목격한 사장님은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다. 종업원들을 질질 끌고 변화해야할 목적지까지 데려간다. 이 과정에서 영문도 모르는 종업원들은 공포에 질려서 끌려오고 영원히 변화는 정말 고통스러운 것 무서운 것, 두 번 다시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개인적 믿음을 더 견고히 한다. 이와 같은 일을 한두 번 경험하게 되면 암묵적으로 조직에서 변화는 물귀신보다 무서운 존재라고 묵시적으로 규정하게 되고 이때부터 변화에 관한 말만 들어도 피곤해지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현상을 경험하게 한다. 다양한 변화의 노력을 시도했던 조직에서 조직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변화의 피로가 바로 이것이다.

   Huy는 조직에서 변화와 혁신을 자판기에서 다양한 커피를 빼는 것처럼 취급할 하는 경우 구성원들에게 변화에 대한 저항과 기존의 맨탈모형을 기반으로 한 타성과 관성만을 기르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많은 회사들이 변화나 혁신을 컨설팅 회사에 의뢰할 때 마치 동전을 집어넣고 원하는 커피의 버튼을 누르면 선택한 커피가 자동으로 나오듯이 컨설팅 회사에 돈을 내면 원하는 변화도 자동적으로 완성된다고 믿고 있다. 이와 같이 해서 완수한 변화와 혁신의 프로젝트는 외형적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구성원들의 맨탈모형 속에는 변화란 피곤하고 짜증나는 것으로 무의식적으로 개념화 되고 다음의 변화에서는 어떻게든지 거센 폭풍우가 잠잠해질 때까지 조용히 머리를 숙이고 기다리거나 피해야 하는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된다. 컨설팅 회사가 떠나고 외적인 압력이 사라지게 되면 아니면 다른 변화나 혁신의 프로젝트가 새롭게 시작되면 모든 변화의 노력이 옛날로 회귀하게 된다. 조직이나 개인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맨탈모형의 수정을 수반해야 하는데 단기적 변화의 노력들은 맨탈모형의 존재자체를 무시하고 변화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변화에 대한 내성만을 쌓게 된다.

트로이의 목마

    트로이 목마는 그리스와 트로이간의 전쟁에 그리스인들이 트로이인을 물리칠 때 이용한 목마를 일컬은 것으로 주는 사람이 선물로 주지만 받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잠재된 화근이나 위험이 될 수 있는 선물을 비유한다. 고대 신화에서 트로이와 그리스간의 전쟁은 영웅 아킬레스의 부모인 펠리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 엘리스가 초대되지 않은 것에서 발단되었다. 엘리스는 불화의 여신이었습니다. 이 불화의 여신에 의해 그리스와 트로이간에 전쟁이 벌어졌다. 막강한 대군을 이끌고 트로이성을 공격하던 그리스 대군은 9년간의 공격에도 트로이성을 함락시킬 수 없었다. 궁지에 몰린 그리스군은 한 가지 계략를 생각해냈다. 자기들이 전쟁에 졌다는 것을 승복하는 표시로 큰 목마를 만들어서 트로이 성에 보내고 대신 그 목마 안에 그리스군을 잠복시키는 전략이었다. 목마를 받은 트로이군대는 그날 승리를 자축하였고 그러는 과정에 모두가 만취해 있을 때 목마 속에 숨어 있던 그리스군들의 나와서 트로이군들을 제압한 것이다. 이처럼 트로이 목마는 선물이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자신들을 살해하는 살생부가 될 수 있는 선물을 지칭한다.

    많은 조직에서는 변화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변화가 가져올 이익에 대해서 설파해가며 이 변화에 성공할 경우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고 어떤 점이 나아질 것인지로 종업원들에게 변화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섣부른 생각으로 시작한 변화는 많은 이유로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종업원들에게 고통을 주게 된다. 어떤 경우는 변화를 주창하는 사람들의 선물이 자신을 해고시키는 무기로 사용되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일을 한 번이라도 목격한 종업원들은 더 이상 변화담당자의 이야기를 믿지 못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는 역시 무서운 것이라는 자신만의 믿음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 같은 믿음을 몸소 체험한 사람들은 변화담당자가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만 해도 이전의 공포가 다시 살아나서 진저리를 치게 된다. 이와 같은 일을 같이 목격한 사람들은 변화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이 옭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서로 암묵적인 합의를 도출한다. 변화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말고 변화의 폭풍이 잔잔해질 때까지만 몸조심해가며  기다리는 전략을 고집한다. 처음 시작한 변화의 시도가 잘못 기획되어 있거나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실패로 끝난 경험이 있는 모든 조직은 이와 같은 트로이 목마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이 된다. 이 트로이 목마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선물이라기보다는 공포의 원천이다.

조직에서 공개적으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한 공포

    조직이 변화를 게을리 하는 과정에서 환경과의 조율능력이 떨어지게 되면 조직은 자신을 방어하는 방어기제를 적극적으로 작동해서 기존의 맨탈모형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조직의 구성원 중 한 사람이라도 조직이 공유하고 있는 맨탈모형의 유용성이 떨어졌다는 것을 지적하기라도 하면 다른 구성원들이 나서서 잘 되고 있는데 왜 네가 나서서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고 있느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도 못 들었느냐 등등의 말로 조직이 무너지고 있는 징후를 감추거나 문제를 외재화 시키는 작업을 한다. 이런 점에서 조직구성원 모두가 공범이 되거나 아니면 집단적으로 다른 구성원들을 감시하는 간수역할을 자청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심각한 상황이 지속되면 조직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황당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가령 어떤 사무실에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코끼리 한 마리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어슬렁거리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서로 먼저 코끼리를 보지 못한 척해가면서 책상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 코끼리는 난폭해서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이 코끼리를 어떻게 몰아내야 할 것인지를 숙의해도 모자랄 판인데 사무실의 모든 사람들은 서로 코끼리를 못 본 척 하는 것이다. 조직의 정신모형을 지키려는 노력인 방호기제 (defensive routine) 들의 문제가 심각해지면 이와 같은 코끼리를 못 본 채하는 현상까지 발전한다. 조직이 변화를 게을리 하다보면 새로운 맨탈모형을 구축하지 못하고 침몰해 가는 맨탈모형을 고집하게 되고 그러는 과정에서 이 맨탈모형이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자체를 부인하고 이 부인은 점점 커져서 조직의 누구도 나서서 말하지 못하는 구더기가 생겨 썩어가는 환부 (the undiscussible)로 커가게 된다. 말할 수 없지만 누구도 들춰보기가 두려운 환부에 누군가가 커다란 돌덩어리를 덮어 놓았지만 어느 누구도 감히 이것을 들춰볼 용기가 없다. 이는 조직 경영자의 비윤리적 행동일 수도, 노조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조직에 이와 같은 인정하기 어려운 무서운 환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조직이 삶아 죽어가는 개구리가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집단사고는 조직구성원들이 자신의 맨탈모형이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못하고 무의식중에 지켜나가는 방어기제 (defensive routines)의 발현이다. 조직구성원들의 개별적 우수성은 조직의 맨탈모형에 문제가 생겼다는 점을 찾아내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 첼런저 호 사건이나, 쿠바침공, 오대양 사건 등 큼직큼직한 모든 종류의 집단사고는 본인의 맨탈모형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집단적으로 방어하는 과정에서 생긴 사건들이다. 집단사고에 빠진 조직은 환경과 조직과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어서 유용한 정보들이 유입되지 못하고 걸러질 뿐 아니라 외적인 적들을 일부러 만들어서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맨탈모형을 지켜나간다.  

    유용성이 떨어진 집단에서 구성원들의 삶은 활력이 떨어진 삶을 영위하게 된다. 조직이 성장을 멈춰진 것에 대한 불안감으로 구성원들은 나름 바쁘게 일거리를 찾아서 움직이지만 이것이 조직의 가치를 증대시키는 과정으로 피드백 되지 못하고 이에 불안을 느낀 종업원들은 더욱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결국 이런 행동은 구성원을 더욱 기진맥진하게 만들어 탈진시킨다. 이런 탈진한 조직의 분위기는 공동묘지와 유사하다. 구성원들이 이리저리 움직이지만 얼굴에는 웃음을 잃어버린 지 오래고 서로 말을 하지 않아서 유령들이 움직이는 것과 비슷하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꼭 공동묘지에 와 있다는 오싹함을 느끼게 한다. 이런 조직의 드레스코드도 하얀색 아니면 검은 색으로 일률적으로 통일되어 있어서 공동묘지에 대한 확신을 강하게 한다. 문뜩 다리 아래를 확인하기도 한다. 이분들이 진짜 유령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이다.

작은 공포 큰 공포

    변화와 관련된 공포는 크기에 따라서 작은 공포와 큰 공포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람이나 조직구성원이나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할 때 각양각색으로 두려움을 표현한다. 이 나이에 창피나 당하지 않을까? 혹시 체면이 깎이지나 않을까? 새롭게 변화한 국면에서 지금까지 쌓아 놓은 기득권을 한 순간에 잃게 되지나 않을까? 새로운 미지의 세상에서 잘 해 나갈 수 있을까? 지금도 편안하게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데 일도 많고 힘든 세상을 자초할 필요가 있을까? 개혁이나 혁신은 자신의 가죽을 벗겨내 새로운 가죽으로 바꾸는 작업이라던데 혹시 너무 고통스럽지나 않을까?

   이처럼 각양각색의 변화에 대한 공포의 뿌리는 한 곳으로 모아져 있다. 지금 자신이 의존하고 있는 맨탈모형을 버리는 것에 대한 공포이다. 지금까지 살았던 방식대로 습관대로 살면 편안한데 변화는 이 맨탈모형을 버리고 불확실성의 망망대해로 몸을 던지라는 요구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이 맨탈모형이 가지고 있는 어둠의 힘을 간과하고 변화를 유도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 맨탈모형이 변화를 시도할 때마다 공포감을 조성해 물귀신처럼 잡아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행동은 변화의 당사자가 의식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하게 무의식상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사자에게는 더욱 공포의 대상이 된다. 

    결국 지금의 맨탈모형을 벗어나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이겨내는 계기는 이와 같은 사소한 두려움보다 더 큰 두려움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서 얻어진다. 작은 두려움은 지금의 맨탈모형을 버리고 불확실성의 망망대해에 뛰어드는 것에서 느끼는 두려움이라면 큰 두려움은 이 작은 두려움이 무서워서 변화를 하지 않고 있다가 결국은 삶아 죽은 개구리가 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죽음과 관련한 두려움이다. 변온동물인 개구리는 나름대로 변화에 적응할 자신이 있다는 자신의 맨탈모형에 갇혀서 온도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자신은 적응했다는 믿음을 갖고 변화를 게을리 하게 되는데 아마도 물의 온도가 80도나 90도에 육박하면 이 믿음이 허구라는 것을 깨달게 될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때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삶아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고통스럽게 관조하는 일 뿐이다. 큰 고통은 이처럼 기존의 맨탈모형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은 적응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가 결국은 장열하게 죽음을 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목격하는 공포이다. 이 큰 공포의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때만 사람들이나 조직이나 작은 공포 즉 지금의 맨탈모형을 포기할 때 경험하는 공포를 벗어날 수 있다.  

    레빈은 변화의 3단계를 육각형의 얼음을 별표모양의 얼음으로 바꾸는 과정으로 비유한 바 있다. 첫 단계가 육각형의 얼음을 녹이는 단계이고, 둘째 단계는 이 녹인 얼음물을 별표모양의 틀을 만들어 붓는 과정이라면 마지막 단계는 이 틀을 냉동실에 집어넣어 딱딱하게 굳히는 단계이다. 레빈의 입장에서 변화과정을 다시 살펴본다면 녹여야 할 대상은 작은 공포를 산출하는 과거의 맨탈모형이다. 틀을 만드는 단계에서 틀은 새로운 맨탈모형이다. 굳히는 작업은 새로운 맨탈모형에서 요구하는 행동과, 생각과, 태도를 보이는 것이 오히려 과거의 맨탈모형에서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게 습관화 시키는 과정이다. 조직이나 개인이나 근원적 변화에 실패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기존의 맨탈모형을 녹이지 못하고 새로운 맨탈모형을 강요하다가 둘 간의 충돌을 이겨내지 못한 경우이다. 둘간 세력다툼이 다툼이 발생할 경우 변화를 반대하는 세력이 기반을 두고 있는 과거의 맨탈모형과 변화를 주도하는 세력이 기반을 두고 있는 새로운 맨탈모형간의 힘겨루기가 시작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과거의 맨탈모형의 힘이 더 세다는 것을 간과하다가 좋은 의도로 시작한 변화임에도 성공하지 못하고 주저 않게 된다. 근원적 변화 성공의 70, 80%는 새로운 맨탈모형을 만드는 것보다는 기존의 맨탈모형을 얼마나 잘 녹여서 지워 없애는지에 달려있다. 

    우리 주변에는 본의 아닌 사고로 근원적 변화에 성공하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하다. 우리 속담에 불난 집이 더 흥한다는 속담이 있는데 과학적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산출했다는 보고가 있다. 불이 나서 잿더미로 변한 상황이 물질적 측면에서는 당사자에게 재앙이었겠지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이 화재로 인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계의 맨탈모형이 자연스럽게 폐기처분되고 이를 계기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맨탈모형의 문제점을 해결해줄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맨탈모형을 구축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국가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독일이나 일본, 한국 등과 같이 국가들의 공통점은 전쟁이후에 급격한 성장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결과도 결국은 전쟁이 물리적으로는 재앙을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국가를 움직이던 맨탈모형을 깨끗이 청소해줬고 자연스럽게 근원적 변화를 향한 새로운 맨탈모형을 다시 정립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도 IMF체계 하에서 국가나, 기업이나, 개인들 모두가 모두 한 번씩의 심리적 죽음을 겪은 경험이 있는데 이와 같은 비극적 경험의 이면에서 우리는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기존의 맨탈모형을 다시 한 번 정리할 기회를 가졌고 이것을 계기로 근원적 새로운 맨탈모형을 구축할 수 있었다고 본다. 따라서 IMF라는 경험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정도의 경제적 부를 누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예측해 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 스토리 중 개과천선의 스토리로 많이 회자되고 있는 대표적 이야기가 스쿠루지 영감님의 이야기이다. 스쿠리지 영감님의 개과천선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 바로 꿈속에서 미래의 자기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해지고 있는가를 목격한 사건이다. 지금은 힘도 있고 돈도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 하지만 이런 식의 수전노로 늙어갈 경우 미래에는 누구도 자신에 관심을 보지 않은 심리적으로 죽어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이것을 계기로 지금의 맨탈모형을 포기하게 된다. 

    근원적 변화를 이기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집에 불을 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변화챔피언들의 비밀은 지금의 맨탈모형을 버리는 것이 두려워 변화를 하지 않고 버틸 때 궁극적으로 조직이나 인간이나 삶아 죽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더 큰 두려움이 실질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이 공포가 먼 훗날의 일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깨달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공포의 실체를 잘 이해해서 변화와 관련된 작은 두려움을 제압하는 일에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실제로 제압하는 일에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라는 점이 이들의 공통점이다. 이들은 맹목적 낙관주의자라기 보다는 현실적 낙관주의자들이다. 맹목적 낙관주의자들은 자신은 세상에서 지독하게 재수가 좋은 사람들이어서 아무 근거 없이 불행은 다른 사람들을 다 거친 후에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찾아 올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실제로 불행이 닫치면 이 불행은 잘못된 불행이라고 치부하고 남들을 비난하거나 더욱 비관적이 되어서 변화에 더욱 적응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현실적 낙관주의자들은 부정적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여 받아들이고 이것을 기반으로 미래의 맨탈모형을 구축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닫친 불행은 예견되어 있는 것이므로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또한 이들은 불행에 대해서 사전에 대비하고 있어서 극복하는 것도 특별히 어려운 것은 아니다. 또한 이들은 맹목적 낙관론자와는 달리 새로운 맨탈모형이 닫친 어려움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가이드하고 있어서 오히려 불행이 전화위복으로 쉽게 전환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