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2-06 18:22
[N.Learning] 큰 두려움 작은 두려움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83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 어떻게 얻나?
작은 두려움, 큰 두려움

두려움은 두 종류가 존재한다. 하나는 작은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큰 두려움이다.

작은 두려움은 우리가 매일 매일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사사로운 두려움이다. 작은 두려움은 지금까지 살았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살기를 요구하는 세상의 변화에 대한 압펵 때문에 생긴다. 변화의 압력에 직면해서 지금까지 살았던 방식의 벗어나는 것을 상상해본다면 불현듯 찾아오는 두려움의 실체를 체험할 것이다. 작은 두려움은 변화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일을 시도하다가 실패하면 예상치 못한 험악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지금까지는 변화의 요구를 외면해가면서 자신을 자신만의 삶의 방식인 자신의 정신모형의 감옥에 가두고 자신이 이 감옥의 간수노릇을 해가며 그래도 감옥이 안전하다고 확신해가면서 살았는데 세상은 계속 감옥에서 벗어나야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변화는 상수가 되었다. 결국 내 안전지대에서 나가야 하는데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 겪어야 할 고난과 실패에 대한 상상을 감당하려니 두려움이 앞선다. 변화가 상수가 되었다는 주장에 따라서 감옥을 나왔을 때 겪게 되는 불확실성과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실패의 위험이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이런 공포에 대한 체험은 동네 야산에서 밤에 길을 잃은 경험과 비슷하다. 아무 위험도 없는 동네 야산에서 길을 잃었다고 상상해보자. 밤이 되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날이 샐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캄캄한 밤을 혼자서 밤을 지새우게 된 것이다. 이 상황을 경험해보신 사람들은 알겠지만 바람이 내는 바스락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바스락 소리가 나면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와서 나를 헤치는 모습이 상상되고 이 상상은 실체가 있는 것처럼 다가 온다. 밤새 이와 같은 상상적 두려움에 떨어가며 생명을 간신히 부지하다가 해가 떠 길을 찾아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 동네산이 준 두려움 때문에 앞으로는 이 산은 처다보지도 않을 것이다.

더 심각한 상황은 반 치매에 걸린 상황을 상상할 때 경험할 수 있다. 나는 반 치매 환자이다. 어떤 때는 지극히 정상적이나 어떤 때는 치매상태에 빠진다. 내 두려움은 길을 가다가 치매가 갑자기 찾아와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헤매이는 경험에 대해 상상할 때이다.

작은 두려움은 이처럼 산 속에서 길을 잃거나 반 치매 상태가 되는 두려움이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해서 결국 내 정신모형의 감옥에서 벗어나왔는데 세상은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할 때 경험을 한다. 머리가 갑자기 하예지고 생각이 작동이 안 된다. 세상 모든 것이 나를 해하기 위해서 모두 달려들 것 같다. 이런 불확실성에 속수무책으로 내동댕이 쳐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작은 두려움이다. 변화가 내 편안한 감옥을 벗어나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세상에 무턱대고 밖으로 나왔을 때 밤에 야산에 던져진 경험을 하거나 치매 상태가 되어 갑자기 머리가 하예지는 경험을 하는 두려움이 첫째의 두려움이다.

두 번째의 두려움은 더 큰 두려움이다. 세상이 불확실하고 무서워서 오랫동안 자신이 만든 감옥에서 나오지 못했을 때 결국 직면하게 될 자신의 운명에 대한 두려움이다. 변화해야 하는 세상의 요구를 오랫동안 묵살하고 살았기 때문에 결국 어느 순간에는 큰 결심을 하고 나와도 이미 시간이 늦어서 도저히 적응을 못하고 강제적으로 세상에 의해서 폐기처분 당하는 상태를 상상해야 하는 두려움이다. 변화를 거부하다 결국은 죽은 자신을 만나게 되는 두려움이 더 큰 두려움이다. 변화를 거부하다 삶아 죽는 개구리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두려움이 큰 두려움이다. 지금과 같이 변화가 상수로 변한 세상에서는 2-3년만 은둔자 생활을 하고 세상에 다시 나와도 적응하지 못하고 퇴출당한다. 몸은 살아 있겠지만 나의 존재에 대해서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심리적으로 죽음을 당한 것이다. 심리적 죽음은 생명을 단축시켜 물리적 죽음을 불러온다. 결국 변화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들이 직면해야 할 두려움의 실체는 죽은 자신을 바라봐야 하는 두려움이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수록 지금 당장 이 큰 죽음의 실체를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이 하이데거의 존재에 대한 질문이 핵심이다. 내가 몇 일내로 죽을 운명에 있을 경우 과연 나는 지금 당장 무슨 일에 집중해야 하는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간직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하이데거의 존재론이 제기하는 질문이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꾸밈과 비본질적인 것인 것 연기하는 삶이 의미가 없다. 정말 나의 존재에 중요한 본질적인 것만 살아 남는다. 이 본질적인 것을 다시 붙들고 내 삶을 복원해야 내 삶은 다시 충만함을 복원할 수 있다.

변화를 거부함에 의해서 맞게 될 자신의 죽음을 들춰내고 직면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근원적 변화를 통해 자신을 살려낼 수 있는 용기를 획득한다. 작은 두려움에 포로가 되어 있을 때 용기는 찾아오지 않는다. 용기는 자신의 죽음을 제대로 직면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용기는 자신의 본질적 존재를 이해한 사람들이 누리는 운명의 친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