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8-22 21:38
[N.Learning] 차별화의 종착역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3,396  

차별화 전략의 종착역:
특이점의 발견

경영전략에서 차별화를 이야기 할 때 흔히 가격의 차별화와 품질에 의한 가성비의 차별화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런 차별화는 다른 사람들이 쉽게 베낄 수 있는 전략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우리 가격보다 낮게 제시하거나 우리 기술을 따라잡아서 우리보다 더 나은 가성비를 제공해주면 차별화는 소멸된다. 경영전략에서 가르쳐주는 차별화는 이처럼 한계가 정해진 차별화이다. 더 싼 가격과 더 나은 가성비를 제시해서 더 차별화된 포인트를 제시하라고 하겠지만 기술적 수준이 포화 상태에 다다르면 결국 전략적 차별화는 죽음과 직면한다.

죽음과 직면할 때 만들어지는 차별화가 다른 차원의 진정한 차별화이다. 사람들은 죽음과 직면해서만 삶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한다. 영원히 살 것 같다는 가정하에서 사람들이 죽을 힘을 다해 축적하는 것이 부와 권세이다. 하지만 죽는 순간 부와 권세는 다 허영에 불과하다는 것이 판명되어진다. 사람들은 죽음에 가까워져 있을 때 삶의 고통을 실제로 체험한다. 이 고통 속에 들어 있는 삶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것이 차별화의 마지막 포인트이다. 예수님이 일반 사람들의 죄에 대한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고통 속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긍휼감을 체험했듯이 세상에 영원한 족적을 남기는 제품들은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내재한 고통의 근원을 이해하고 이것을 십자가를 대신해서 자신의 제폼과 서비스로 해결해주는 회사들이다. 이런 회사의 제폼이나 서비스를 통해서 느끼는 것이 바로 체험이다.

인간의 고통의 심연을 이해해서 이것을 풀어주는 체험을 제공하는 수준에서 만들어진 서비스나 제품은 특이점이 된다. 특이점이란 카피를 통해서는 이 제품과 속성의 비밀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을 말한다. 이 회사가 지닌 철학이 설계자의 원리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설계자의 원리를 베낀다는 것은 자신이 짝퉁이 되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모든 원조에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철학적 이해가 전제되어 있다. 긍휼감이 없이 원조가 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

최근 몇 차례 일본을 다니며 여러 혁신적인 제품을 만났다. 그중 필자를 가장 뒤흔든 물건은 뜻밖에도 어떤 선풍기였다. 무려 40만원 가까운 고가였기 때문이다. 판매원에게 비싼 이유를 물으니 난감해하며 바람을 직접 경험해 보라고 권했다.
대단히 부드럽고 기분 좋은 바람을 만날 수 있었다. 직감적으로 기존의 선풍기와는 바람의 질(質)이 전혀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 이 회사를 깊이 들여다봤다. 발뮤다(BALMUDA)는 `일본 가전 시장의 작은 거인`이라 불리고, 창업자 데라오 겐은 `일본의 스티브 잡스`라는 별명을 가졌다.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이 회사가 선풍기, 토스터 등 성숙할 대로 성숙해서 더 이상 혁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되는 뻔한 제품들에 도전했고, 연타석 안타라는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들의 혁신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소개하고자 한다.

컴퓨터 주변 기기를 만들던 이 회사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도산을 앞두게 된다. 그때 데라오 창업자는 이런 생각을 한다. "기왕 망할 거면, 만들고 싶었던 것 한 번 만들어보고 망하자." 도산을 앞둔 그가 꼭 한 번 만들고 싶었던 제품은 무엇일까. 바로 `선풍기`였다. 그는 왜 하필이면 갈 때까지 간 제품, 혁신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뻔한 제품, 선풍기를 만들고 싶어했을까. 남들이 보지 못한 아픔을 봤기 때문 아닐까. 그렇다면 선풍기 사용자인 우리 모두가 보지 못했던 아픔은 무엇일까.

선풍기의 핵심 가치는 시원함이다. 기존 선풍기는 당장은 시원하지만 오래 쐴수록 기분이 불안해지고 불쾌해지는 단점이 있다. 선풍기 바람이 만들어내는 소용돌이 때문이다. 그가 선풍기를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아픔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연산 바람처럼 `오래 쐐도 기분 좋은 선풍기를 만들 수는 없을까`에 천착했고, 마침내 소용돌이 문제를 해결한 제품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고가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 대성공을 거뒀다.

선풍기로 돈을 번 데라오는 고민 끝에 두 번째 제품 개발에 도전한다. 어떤 제품이었을까. 이번 또한 갈 때까지 간 제품, 바로 토스터였다. 그는 토스터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아픔을 봤다. 빵을 구워 바로 먹으면 괜찮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금세 딱딱해진다는 것. 또 사람들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폭신한 토스트를 원하는데, 그런 토스트 굽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아픔을 본 이상, 해결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빵맛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습도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토스터 상부에 급수구를 만들고 먼저 기화된 물을 빵에 도포한 후 고열로 구웠다. 비로소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토스트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발뮤다의 도전은 계속해서 공기청정기, 가습기, 전기밥솥, 히터 등으로 이어진다. 중국산 저가 제품들이 활개를 치자 소니, 파나소닉 등 대형 가전 회사가 철수하거나 내버려 둔 시장에서 디자인과 기능을 혁신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것이다. 그 결과 중국산보다 가격이 5~10배나 비싼데도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어 지난해 연 매출 약 900억원을 올리는 작지만 강한 회사가 됐다.

요즘 기업들과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고민이 많다.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발뮤다의 사례를 보면 해답이 보인다.

발뮤다는 도산 위기 앞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아픔을 보고 대상을 정한 후, 그 아픔을 해결했다. 혁신의 엔진은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아주 작고 미세한 아픔을 보는 능력이었다. 그런 점에서 모든 혁신은 살아 있는 인문학이다. 위기에 빠진 내 사업과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우리 모두 고객들의 마음속에 있는 아픔을 향해 총진군할 때다.

[강신장 모네상스 대표·한양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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