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12-01 20:23
[N.Learning] 후세에게 물려줄 유산이 있을까?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1,951  

후세에게 물려줄 미래가 있을까?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다

랑케가 이끄는 실증주의 역사관이 결국 더 좋은 미래를 만드는데 기여하지 못하자 E. H. Carr가 나와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고 역사는 현재와 과거가 지속적으로 대화라고 다시 규정했다.

#랑케의실증주의
#카의역사란

실증주의 역사관에서는 역사는 사실에 집중할 뿐 이것을 의도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실증주의는 사실에 집중해 과거의 사실들을 추적해보면 현재와 미래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추정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카는 아무리 객관적으로 수집된 역사적 사실이라도 이것이 수집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료인지의 중요성을 판단할 때도 이미 사가의 판단이 개입되어 있다고 보았다. 결국 카는 역사적 사실에는 모두 해석이 개입한다고 보았다. 이런 입장에서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가 지속적으로 대화할 수 있을 때 진보한다고 규정했다. 대화가 끊어진 역사는 퇴보할 수 있음을 예고한 것이다. 반면 실증주의에서는 역사가 진보하는지 안 하는지는 역사를 지내보고 과거를 추적해 현재와 연결시켜봐야 알 수 있는 일이지 규범적으로 그렇게 주장할 수 있은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실증주의 사관을 주장한 랑케는 1795년에 태어나 1886년에 사망했다. 랑케는 카보다 100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다. 카는 1892년에 태어나 1982년에 사망했다. 랑케가 살던 시대는 사회적 변화가 거의 없던 시기였다. 사료에 대한 객관적 주장이 힘을 얻을 수 있었던 시기다. 카는 산업혁명과 민주화가 보편적인 힘으로 작동하던 시대의 사람이다. 충분히 역사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가지고 과거의 역사를 현재에 맞게 해석하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은 초연결 디지털 혁명의 쓰나미가 코 앞에까지 밀려왔다. 랑케의 실증사관과는 거리가 멀어도 엄청 멀고 심지어는 카가 살던 시대의 역사로부터도 멀어져 있다. 카가 실증주의 역사관의 문제를 규명하기 위해 <역사란 무엇일까?>를 질문했듯이 지금은 역사에 대한 정체성 질문을 다시 질문해야 할 시점이다. 아무리 뛰어난 역사가라 하더라도 자기 시대의 시대적 존재구속성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초연결디지털시대의_역사관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초연결 디지털 시대인 지음은 심지어 카조차도 변수로 다루기를 두려워했던 미래도 하나의 독자적인 변수로 고려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규정하는 역사는 <현재를 통해 미래와 과거가 지속적으로 대화하는 과정>이다. 과거의 역사는 우리에게 유산(legacy)를 남겼다. 미래는 모든 사람들을 존재의 수준에서 차별화하는 목적을 제시한다. 결국 역사는 미래의 목적 스토리와 과거의 유산이 서로 대화를 통해 씨줄과 날줄로 엮어져서 새로운 의도가 만들어지고 이 의도가 현재에 심어져서 새로운 과일나무로 길러지는 과정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진행되는 흐름을 보면 과거, 현재, 미래가 단절되어 있다. 자한당으로 대표되는 과거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내기 위해 투쟁하고 민주당은 과거의 적패를 청산한다는 명목으로 과거와 투쟁한다. 이들의 정치적 지형에 현재 고통을 받고 있는 흙수저 젊은이들이나 서민 자영업자들 이야기나 미래를 책임질 밀레니얼이나 Z세대가 들어가 있지 않다. 이들이 주도하는 정치가 나라를 위태롭기 짝이 없는 파국으로 몰아가는 이유다. 이들 양당의 정치적 논쟁은 모두 과거를 살려내던지 과거를 청산하던지에 집중되어 이들에게는 대한민국의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다.

다음 총선에서는 우선 당을 초월해서 국회의원 출마의 변에 현재와 미래가 들어가 있지 못한 정치가들을 찾아내 이들을 제대로 물갈이를 못시킨다면 대한한국의 미래는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전에 만들어서 실험되었어야 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향유하고 있는 이 정도 수준의 현재가 만들어지기 까지는 20-30년 전에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리더들이 미래를 가져와서 그 당시의 현재를 통해서 성공적으로 실험한 결과다. 이런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는 미래를 향한 차가 이미 저멀리 떠나간 형국이다. 또한 다음 국회의원들은 항상 과거의 판례를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법조인들은 가급적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어느 정당에 속하던 법조인들은 직업적 속성을 버리지 못하고 나라의 정책을 과거로 회귀시킨 주범이었다. 정치를 통해서 드러난 이들의 역사관은 실증주의 역사가들보다 더 과거지향적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가 지금 당장 근원적으로 바뀌지 못하면 후세에게 물려줄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대한민국은 과거의 싸움에 빠진 자한당과 민주당이 아닌 제삼의 정치세력이 등장해서 이들이 떨어트린 역사의 바톤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자한당과 민주당은 이미 역사의 바톤을 어딘가에 떨어트려 잃어버렸다. 지금 행태로 보면 자한장 민주당 누구도 이 바톤을 찾아낼 개연성은 없다. 이들의 과거싸움에 아바타로 동원되는 것을 성찰적으로 저항하고 대한민국의 운전대를 물려주어야 제대로 된 리더들을 찾야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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