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12-01 20:49
[N.Learning] 서로를 사랑하지 못함에 대해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3  

서로를 사랑하지 못함에 대하여:
총수로서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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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이재용 부회장에게 <총수역할을 제대로 해달라는 주문을 냈다>. 재판부가 이런 주문을 내는 것이 정당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이재용 부회장이 해야할 총수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는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기대되는 총수의 역할은 무엇일까?

51세 되던 해인 1993년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를 지금과 같은 상태로 만들기 위해 삼성전자 임원들과 함께 프랑크 프르트로 기약없는 디아스포라의 여정을 떠났다. 그냥 몇 일 선진 독일을 배우기 위해 출장가는 것으로 알고 속옷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채 떠난 임원들이 2-3개월의 독일, 영국, 일본, 미국 등 장기여행을 같이 해야 했다. 이 디아스포라의 여정을 통해 지금의 삼성전자를 있게한 신경영의 청사진을 도출했고 이 청사진을 토대로 지금의 삼성전자가 만들어졌다. 공교롭게도 이재용 회장의 나이도 올 해 51세로 보인다. 재판부 질문의 핵심은 이건희 회장은 51세 되던 해에 이런 디아스포라의 여정을 통해 현재의 삼성전자를 만드는 신경영을 도출했는데 이재용 부회장은 같은 51세가 되는 지금 재판의 피의자를 넘어 그룹 총수로서 삼성전자를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총수가 나서서 미래의 청사진을 마련하는 것은 시대착오 짓이지만 적어도 구성원과 같이 삼성전자의 미래를 디자인하는데 시간을 쏟았어야 했음에는 동의한다.

이건희 회장이 51세 되던 1993년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이건희 회장은 후꾸다고문의 보고서를 비롯해서 삼성의 각종 문제를 보고받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회장에 취임한지 6년 동안 그렇게 질경영을 호소했음에도 삼성은 전혀 변화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수행비서진에게 도대체 삼성의 문제가 무엇이지 생각해보라고 화두를 던진다. 비서진이 전략적 분석기법을 동원해 답을 마련해가면 아니라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돌려보낸다. 잠을 안 재워가며 요즈음의 하브르타 방식으로 밤세워 비서진을 코칭한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라고 돌려보내기를 반복하자 같이 있던 홍라희여사가 이러다 비서들 다 잡겠다고 성화를 보이자 이건희 회장은 마음에 담고 있던 생각을 털어 놓는다.

"삼성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왜 이건희 회장은 삼성 문제의 근원을 사랑의 부재에서 찾은 것일까?

철학적인 문제일수도 있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주 단순한 상식적 통찰이다. 연인의 관계에서도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상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상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음은 역설적으로 사랑이 끝났음의 전조이다. 이런 원리는 자기자신에게도 적용된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울리가 없다. 이건희 회장의 생각은 삼성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복원해야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일을 할 것이고 이를 통해서 삼성이 설정한 목적도 삼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대로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세상에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이 사람은 자신이 주인공인 삶을 살 수 없는 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노예는 무슨 일을 해도 그 공과가 다 주인에게로 돌아가니 스스로의 삶에 주체적 애착을 가질 수 없다. 스스로 애착을 가질만한 주체적 삶이 노예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삶이 모든 초점이 자신의 동물적 쾌락을 늘리거나 고통을 줄이는 신상필벌에 집중되어 있다. 노예는 주인삶의 종속물이자 주인의 성공과 부를 위한 수단이다. 노예로 산다는 것은 이런 자신의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말한다. 이런 노예에게 주인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노예에게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 자체도 말이 되지 않는다. 노예의 운명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책임을 요구할 수 없으니 주인이 책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원한 수단이 <관리>이다. 관리의 삼성을 극복하고 자율적 삼성을 만드는 것이 이건희 회장의 필생의 과제였다. 관리의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평생을 통해 극복해보고 싶어했던 골리앗이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 삼성은 월급장이의 천국이 되었다. 모든 젊은이들이 들어가고 싶은 직장이다. 월급장이의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이건희 회장의 주문대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을까?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자신에 대한 사랑의 부재 때문에 주체적으로 일하지 못함을 무마하기 위해 모든 것을 월급(돈)으로 무마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지금까지 빠른 추격자 전략을 사용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의 근력보다는 돈으로 쉽게 모든 문제를 해결해 온 것이다. 결국 직원들을 관리의 노예를 넘어 월급의 <노예>로 돌려 놓은 것이다. 경쟁사보다 월급이 작아진다해도 삼성에서의 자신의 일이 좋아서 삼성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때문에 월급장이 노예생활을 과감하게 벗어날 수 있는 삼성 직원들이 얼마나 될까?

자신의 일을 주체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의 근력이 없다면 책임감과 창의적 일처리가 요구되는 지금과 같은 초연결시대의 변화를 선도해나갈 수 없을 것이다.

돈과 기술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빠른 추격자의 시대는 역사적 뒤안길로 급속하게 사라지고 초연결사회가 급격하게 도래하고 있다. 시대의 변곡점에 선 삼성에게 이건희 회장이 던진 철학적 화두 <삼성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함>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더 깊어진다. 삼성은 30년전 이건희 회장이 그리 극복하고 싶어했던 악령과 아직도 싸우고 있는셈이다. 종업원도 자신의 회사를 진정 사랑하지 않는 회사가 포장하고 사기치는 방법 말고 초일류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이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직원들이 월급장이 천국을 넘어서서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고, 회사 삼성도 사랑하게 만들고, 등을 돌린 국민들이 삼성을 사랑하게 만들고, 글로벌 고객이 삼성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회사로 어떻게 복원할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삼성이 초연결시대에 요구되는 창의성과 주체성을 복원하는 길은 지금까지 해왔던 기술과 자금력을 넘어 사랑의 회복과 사랑하지 못함에 대한 치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이 지금까지의 표면적 성공을 구가하는 동안 정작 잃어버린 것은 사랑인 것 같다. 사랑이 없다면 고객이나 협력업체가 돈으로 요구된 것을 넘어서 삼성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자원을 자발적으로 동원해주지 않을 것이다. 기업이 사랑 받지 못한다는 것은 중요한 자원이 자발적으로 동원되지 못한다는 것이어서 초연결 플랫폼 사회의 기업에게는 사망선고이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부여된 총수로서의 첫째 임무는 기술력의 문제는 지금 삼성전자를 따라갈 수 있는 회사가 많이 않을 정도로 초일류이니 대신 삼성에서 잃어버린 사랑을 복원하는 것이 총수의 역할인 것으로 보인다. 초격차가 삼성의 전략이 아니라 삼성 안에서 시작된 사랑의 복원이 삼성을 존재의 수준에서 차별화 시키는 초일류전략의 기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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