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1-02 19:52
[N.Learning] 시간의 이원론 어떻게 극복할까? 금욕의 미래와 뒷다리의 과거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71  

시간의 이원론 어떻게 극복할까?
금욕의 미래와 뒷다리의 과거

시간의 이원론적 삶은 우리 삶의 생동성을 부인하는 가장 큰 장애이다. 역사는 항상 시간의 이원론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 민초들의 삶을 왜곡해왔다.

시간의 이원론에서 과거는 뒷다리를 잡는 삶의 전형이다. 과거의 추억에 빠져 사는 사람들은 과거 자신들이 한 체험의 감옥에 자신을 가두는 일을 지속한다. 세상이 변했음에도 자신이 과거에 만든 내비를 업데이트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세상이 변화해도 결국 자신이 만들어놓은 내비게이션의 감옥에 자신을 갇둔다. 과거에 의해 뒷다리가 잡히면 점진적 변화를 제외한 모든 변화를 철저히 부인한다.

미래에 경도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은 반대이다. 변화라는 명목으로 전형적인 금욕주의 삶에 천착한다. 과거나 현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희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는 희망의 땅이지만 이 희망으로 현재와 과거를 고문하기 시작한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완벽하게 실현된 세상이나 사회주의의 유토피아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마치 실체가 있는 미래인 것처럼 주장한다. 이 상상적 허구로 현재와 과거를 억압하고 응징한다.

과거와 미래의 이원론이 극복된 삶은 과거와 미래를 현재로 가져와서 현재 속에서 실험하는 삶이다. 과거로부터 배운 지혜를 미래에 실현할 지혜와 씨줄과 날줄로 엮어서 새로운 변화의 맥락을 실험하는 삶이다. 이런 제대로 된 변화의 맥락을 실현시키기 위해 과거는 뒤에서 밀어주고 미래는 앞에서 끌어준다. 아인쉬타인이 Deep Time에서 주창한 자연적인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삶이 맥락적 시간의 삶이다.

시간의 이원론이 극복된 삶에서는 시간의 맥락화가 그 골격이다. 과거에 선배들이 목적을 실현시킨 유산과 미래에 목적을 실현시킴을 통해 남겨야 할 유산을 현재로 가져와 씨줄과 날줄로 새로운 씨앗을 만들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업의 토양이에 이 씨았을 심어서 과일나무를 길러내 이 과일을 나눠줌을 통해 미래를 향한 더 나은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삶이 시간의 맥락화이다. 미래는 시간을 따라감에 의해서가 아니라 현재로 가져와 현재에 미래를 실현시킴을 통해서만 체험될 수 있는 시간이다.

맥락적 시간에서 우리가 실현시킬 수 미래는 우리가 죽은 후에만 실현할 수 있는 것이어서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세에서 죽는 순간까지 목적을 실현시킨 것이 우리가 남기는 유산이라면 이 유산이 메모리가 되어 후세에 의해서 다시 채용되어지면 내가 남긴 유산은 이들의 몸을 통해서 미래에도 다시 부활한다. 역사는 내가 남긴 유산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채용되어 다시 태어날 뿐이지 내가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체험된 미래는 현재를 통해 미래를 실현시켰을 때만 가능하다.

결국 시간의 이원론이 극복된 맥락적 시간을 살려냄을 통해 우리는 찬란한 역사를 만들어간다. 과거의 선배들이 남긴 목적을 실현한 유산과 미래에 내가 목적을 실현시켜서 남겨야 할 유산을 현재로 가져와서 씨앗을 만들어내고 자신이 하는 일과 조직을 통해서 실현시킬 수 있을 때 나는 역사적 인물로 다시 태어난다.

이런 나를 통해 역사를 만들어내는 맥락적 시간 속에서만 과거는 내가 실현시키려는 목적을 뒤에서 밀어주고 미래는 앞에서 끌어주고 현재는 이를 위한 동력원을 만들어낸다. 왜곡된 모든 역사는 과거지향적으로 뒷다리를 잡는 역사이거나 미래를 우상화 시킴을 통해 금욕만을 강요하거나 현재의 삶 속에서 실현시킬 목적을 상실해서 실제로 탐욕에 물든 삶이다. 현재, 미래, 과거가 철저히 분절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