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1-02 19:55
[N.Learning] 경자년이 가져다 줄 기적 진리, 생명, 자유
 글쓴이 : 윤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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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이 가져다 줄 기적
진리, 생명, 자유

나를 비롯해 우리 모두가 경자년에 한번 강하게 시도해봐야 할 가장 의미 있는 사업을 하나 제안해본다면 나스스로의 주인됨을 제안해보고 싶다. 자신이 삶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의미할까?

아마도 니체가 주인된 삶에 대해 쉬운 비유를 가장 잘 제시한 사람이다. 니체는 삶이 주인됨 상태가 낙타의 삶, 사자의 삶, 어린이의 천진난만한 삶으로 진화한다고 보았다, 낙타는 주인이 시키는대로 무거운 짐을 벗어던질 수 없는 삶이다. 남들이 시키는대로 종으로 사는 상태이다. 사람들은 모범생의 삶을 칭송하지만 니체의 주장에 의하면 모범생의 삶은 낙타의 삶의 가장 전형적 형태다. 사자는 남들을 자신의 종으로 부리는 상태의 삶이다. 하지만 높은 직책과 권력과 돈 등 외재적으로 사자를 암시하는 것을 획득했다고 해서 주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이런 외재성에 몰입할수록 자신이 누구인지 주체성은 더 쉽게 상실된다. 어린이의 천진난만한 삶은 삶의 목적을 발견하고 이 목적에 충실해가며 이 목적자체가 삶이 되어 행복감을 느끼고 이 목적을 놀이처럼 사는 삶이다. 니체에게 주인의 삶이란 목적을 발견하고 이 목적을 실현하는 주체가 자신이 되는 삶이다.

동양에서 주인된 삶의 철학을 가장 잘 제시하는 철학자는 장자다. 이 장자의 주임됨의 철학을 가장 잘 실천한 분이 당나라의 임재선사이다. 임재선사는 주인의 삶을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되어 살면 거기서 하는 모든 일이 진실로 서게 된다." 임재선사는 주인된 삶을 살기위해서 남의 써준 삼인칭의 삶에서 벗어나 일인칭 주인공의 삶을 복원할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니체가 이야기하는 낙타나 사자는 다 외재적으로 남들이 써준 삶의 대본을 자신의 대본으로 연기하는 사람들이다. 임재선사는 주체성을 구현하는 삶을 살 때 삶 자체가 진실로 드러난다는 가르치고 있다. 진정성 있는 삶이란 스스로가 작가가 되어 대본을 써내는 일인칭의 삶을 구현하는 것이다. 일인칭 대본대로 사는 삶이 구현되지 못한다면 자연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진리는 깨달을 수 있어도 인간으로서 실존하는 삶의 진실은 깨닫지 못한다. 진실이란 자신이 주체가 되어 발견한 목적을 현실에서 실현시킨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주체적 삶의 복원은 기독교에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예수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선언한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나오는 이 언명은 예수께서 복음의 의미를 아무리 설파해도 아직까지 제대로 깨달지 못하는 제자들이나 이방인들, 길을 잘못 제시하고 있는 제사장을 겨냥해서 한 말이다. 이 당시 맥락은 예수가 깨달은 길의 의미를 도대체가 이해할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세상의 삼인칭 잦대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해석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제자들이나 엉뚱한 길을 길이라고 제시하는 제사장 이방인들에 대한 경고였다.

문제는 2000여년이 흐른 지금에 이르러서도 예수가 제시하는 하나님을 향한 목적의 길의 의미를 이미 깨달고 있는 신실한 기독교인들도 이 당시 맥락을 현대의 입장에서 탈맥락화 시키지 못하고 그 당시 문구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그 당시 제자들이 내가 가려는 길이 진리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예수는 아마도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라고 설명하기보다는 "너희들은 내가 사라져도 너희가 제대로 발견한 하나님을 향한 목적의 길을 나없는 상황에서도 주체적으로 찾아서 실현시킴을 통해 진리의 삶을 살 것"을 명했을 것이다. 이후의 다섯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도 사후에 기독교인으로 남겨야 할 족적뿐 아니라 이 생에서도 매일 매일 "진리로 거듭 태어나는 주체적 생명의 삶"을 주문했다. "진리를 발견해서 실현한 그 길을 통해 이 생에서 다시 영혼이 구원된 새 생명의 길로 알고 살아라"라로 명령했을 것이다. 대신 이 생에서 주체성을 구현해 실현한 진리를 죽는 순간에 종합적으로 판단해주는 것은 오직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 사후 2천년이 지난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언명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한 마디도 진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에도 예수가 세상을 떠난 후 기독교인으로의 주체적인 삶을 회복하는 것보다는 자신을 이방인이나 깨달음을 얻지 못한 제자로 환치시켜놓고 죄의식과 종으로서의 삶과 사후의 영혼구원의 삶만을 강조한다. 교회가 아직도 성숙하고 신실한 평신도 기독교인들을 믿지 못하는 어린이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주체성에 대한 숨겨진 의도를 진화시키지 못한 댓가는 기독교의 쇠락이다. 크리스쳔들의 주체성을 회복해 이 현세에서 복음이 실현되는 진실을 구현하는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사후구원에만 올인한다면 기독교는 죽은 종교에 불과할 것이다.

주인됨이란 삶의 목적을 깨달고 이 목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주인이 자신임을 의미한다. 진실란 이 목적을 실현시킨 상태를 의미한다. 이 진실이 실현되어감의 상태가 자유이다. 이 목적을 실현시키기보다 이 목적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목적을 찾은 것처럼 연기하고 꾸미는 삶이 우리를 무언가의 노예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꾸밈과 연기하는 삶이 결국은 우리를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우리에게 자유를 빼앗고 결국은 우리를 영원히 잘못된 길에 갇혀 생명없이 죽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삶의 목적을 자신에게도 약속하고 도움을 받아야 할 주변사람들에게도 똑 같은 약속할 수 있다면 진정성 있는 삶이 시작된다. 진정성이란 자신을 존재의 수준에서 차별화 시키는 목적에 대한 각성이다. 존재의 수준에서 나를 차별화시킬 수 있는 목적이 없다면 나는 언제던지 대체가능한 사람으로 삶과 경력의 경쟁력자체가 사라진다. 이 목적에 대한 대본을 자신이 작가가 되어 쓰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사는 삶을 통해 이 목적을 실현시킨다면 이 목적은 내 삶의 진실이 된다. 내 삶의 진실이 되는 삶을 찾은 사람들은 포장하거나 연기로 시체가 된 상태에서 벗어난 생명을 머금은 삶의 산다. 생명을 얻었다는 것은 목적에 대한 깨달음을 실현시킴을 통해 새로운 진실과 자유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0년 경자년에는 우리 스스로가 삶의 목적에 대한 작가가 되고 주인이되어 나를 통해 새로 태어난 생명이 진실이 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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