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의 색안경을 벗어 던지니
진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은 데카르트와 함께 근대철학을 완성한 영국의 철학자이다. 데카르트가 연역법을 창시했다면 베이컨은 경험에 근거한 귀납법을 만들어냈다. 베이컨은 우리가 자주 인용하고 있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언명으로 자연과학의 기초를 닦았지만 사실 Max Weber와 더불어 지식사회학이나 지식경영의 영역을 창시한 사회과학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베이컨은 신기관(Novum Organum, 1620)이라는 책에서 귀납적 논리를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활동을 방해하는 것을 우상이라고 규정했다. 우상은 일종의 색안경과 같은 것으로 이것을 끼고 현실을 인식하면 현실이 채색되어 인식되기 때문에 순경험적 데이터에 근거한 진실된 추론을 도출하지 못해 오류에 빠진다.
#우상의_색안경을_끼고_세상을_대면하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우리가 자주 끼는 네개의 색안경을 언급하고 있다.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다.
종족의 우상은 인간이라는 생안경을 끼고 자연을 보니 자연에서 오는 데이터가 그대로 채집되지 않는 현상이다. 종족의 우상 때문에 인간은 세상을 인간세상, 동물세상, 자연세상으로 나눠놓고 인간세상이 아닌 세상의 대상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폄하한다. 종족의 우상은 자연이나 동물에 대한 편견의 씨앗이기도 하지만 자기가 속한 종족만을 인간으로 취급하고 여기에 속하지 못한 아웃그룹은 도구로 생각하는 경향을 만들어낸다. 남성들이 여성을 폄하하거나, 백인이 흑인을 폄하하거나 학벌이 높은 사람이 학벌이 낮은 사람을 폄하하는 경향은 다 종족의 우상이 발현된 것이다. 아니면 자신만 사람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도구로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가장 편파적인 사람이 탄생한다.
종족의 우상이 심화되면 다양성에 기반한 창조적 진화는 괴멸되고 내집단으로 규정한 집단이 가지고 있는 힘을 기반으로 모든 것이 좌지우지된다. 세상은 힘있는 사람들이 만든 편견의 창으로 무장한 정치세력의 투쟁장으로 변질된다. 요즈음 대한민국에 성행하고 있는 "무슨 빠"나 "무슨 부대"로 불리는 집단은 결국 종족의 우상의 색안경을 쓴 집단들이다.
#종족의우상
동굴의 우상은 자신이 살아온 아주 협소한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과거의 공간인 동굴에서 보고 경험한 세상의 색안경을 끼고 현재의 세상을 이해할 때 세상에 대한 경험적 데이터를 얻어내지 못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기성세대가 밀레니얼이나 Z세대에게 성공경험을 나눠준다고 과거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면 당연히 동굴의 우상을 실천하는 것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면 Z세대에게 꼰데가 되어 자신의 과거경험을 강요하게 된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은 희랍시대에서도 통용되던 동굴의 우상이다. 과거에 자신이 경험한 것을 토대로 현재나 미래를 재단하면 다 동굴의 우상에 걸린 사람이 된다. 지금 우상처럼 떠 받들어지고 있는 밀레이얼 세대도 시간이 지나면 Z세대나 이후의 세대에게 꼰데일 뿐이다.
이런 동굴의 우상은 단위가 꼭 개인과 개인 사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한 조직의 한 나라에도 이런 과거를 보존하기 위한 동굴은 수도 없이 많다. 회사를 보면 부서나 개인들이 파논 동굴천지이다. 직장인들은 자신의 경험치를 가지고 피터지게 싸우다 피곤해지면 자신의 동굴속으로 스스로 들어가 피신하기 위해 동굴을 파놓았다. 각 부서가 부서의 경험치를 가지고 회사전체를 경영하려고 치고 박고 싸우고 있다면 다 동굴 속에 갇혀 사는 형국이다. 교수, 학과, 대학이 스스로 굴을 파고 숨어있는 대학교는 동굴천국이다. 국회의원들은 자신 지역구를 위한다는 이름으로 국회를 동굴국회로 만드는 일을 자신에게 부과한 사명으로 알고 있다.
#동굴의우상
시장의 우상은 자신의 경험없이 시장통에서 나도는 말을 그대로 믿고 유통할 때 끼게 되는 색안경이다. 요즈음 가장 대표적인 시장통은 유튜브이다. 여기서 검증된 사실확인 없이 확증편향으로 각색된 스토리를 퍼트리는 유튜버의 방송만을 선택적으로 보고 이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한다면 대표적인 시장의 우상 안경을 끼고 진실을 왜곡하는 사람들에 해당된다. 심지어 우리 아들도 내가 과학적 근거로 어떤 주장을 하면 자기는 친구들에게 들었다고 해가면서 내 말이 틀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시장의 우상의 대표적 사례다. 샘플링의 오류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에 따라 세상을 산다면 성공보다는 실패할 개연성이 점점 높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만들어낸 편견을 옭다고 긁어주고 위로해준다는 생각으로 점점 빠져든다. 시장의 우상의 색안경을 낄수록 점점 개의 눈에는 X만 보이는 현상이 심화되어 세상이 X천지로 변한다. 참담한 일이다.
#시장의우상
극장의 우상은 사실 가장 위험한 우상이다. 자신 삶의 일인칭 스토리를 쓰지 못해 권위 있는 학자들이나 성공한 사람들이 써 놓은 대본을 자신의 대본처럼 받아들이고 이 대본의 연기자로 살 때 세상을 보지 못하는 우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이 모범생으로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지만 모범생의 삶에 천착할수록 자신의 삶의 진실로부터는 점점 멀어진다. 평생 누구간의 아바타와 짝퉁으로의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실제로 모범생들은 직장에서 가장 먼저 비자발적으로 정리해고되거나 명예퇴직 당한다는 통계도 있다.
#극장의우상
귀납론자인 베이컨이 현대를 살고 있다면 우리에게 이런 우상의 안경을 벗어던지고 샘플링 오류가 없는 빅테이터에서 패턴을 읽고 삶을 계획하라고 주장할 것이다. 즉 빅데이터의 추세를 넘어 메타데이터를 보고 삶의 장면을 계획하라고 충고할 것이다.
좋은 충고이기는 하지만 결국 빅테이터가 추론한 세상도 결국은 과거를 기반으로 만든 것이어서 미래를 제대로 추론해내지는 못한다. 미래에 대한 제대로 된 추론은 미래에 사람들이 실현시키기를 열망하는 유산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만에게만 가능하다. 유산이란 자신의 세상에 존재했다는 증거를 후세를 위해서 남겨놓은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을 존재수준에서 차별화 시킨 존재이유에 대한 약속을 구현한 것이 유산이다. 미래유산은 결국 자신을 존재의 수준에서 차별화시키는 이유인 목적을 실현한 것이다. 제대로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유산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결국 미래의 세상은 목적의 바다를 향해 수렴하고 있다. 구글이 "사악한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 있게 회사를 설립한 것도 미래가 목적으로 수렴한다는 것을 제대로 읽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거의 경험적 편견인 우상의 안경을 벗어던지고 이런 목적으로 수렴하는 미래를 따라간다고 미래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미래는 데카르트가 연역법에서 주장했듯이 미래를 각성하고 따라가는 방식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미래는 목적의 바다인 미래에 먼저가서 각성한 목적을 현재로 가져와서 이것을 자신이 하는 일과 업에 씨앗으로 심어서 과일나무를 길러내고 여기서 얻어진 과일을 통해서만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일은 현재 맛볼 수 있는 과일이기 때문에 미래는 항상 현재를 통해서만 체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논리를 주창한 철학자가 실용철학의 대가 퍼스와 핸슨이다. 이들이 현재를 통해 미래를 만들어 내는 원리가 귀추(Abduction) 논리다. 과거의 논리가 귀납적이고 미래의 논리가 연역적이라면 현재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엮어내서 현재를 통해 미래를 만드는 논리는 귀추적이다.
#귀추논리
미래는 베이컨이 주장한대로 과거의 편견을 버리고 참 경험에 집중한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잘못된 미래를 전제로 상정하고 따라간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라는 편견의 색안경을 벗어던진 사람들이 찾아낸 것이 선배들이 남긴 유산이고 미래의 추세분석가들의 만든 색안경을 벗어던졌을 때 보는 것이 목적이다. 이미 실현된 목적과 실현될 목적을 자신의 삶으로 가져와서 교차점을 찾아가며 일인칭 대본으로 만들어낸 사람들이 현재를 통해 미래를 실현시킬 수 있는 리더들이다.
과거의 참 진리인 유산과 미래에 실현될 진리인 유산을 현재로 가져와서 이들의 교차점에서 자신만의 일인칭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만이 미래를 선도한다.
#미래유산과_과거유산의_교차점
한 마디로 대한민국 전체가 편견의 색안경을 끼고 지금과 같은 혼돈에 회오리에 빠져 사는 이유는 무슨 빠, 무슨 부대, SNS에 의한 가짜뉴스, 밀레니얼이든 X 세대든 자신들만 최고라고 생각하는 세대 우월주의, 존경받는 역할모형의 부재가 기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