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2-01 20:44
[N.Learning] 윤회의 고리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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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처럼 살지 않을 수 있을까?
윤회의 고리

불교에서는 윤회를 복잡한 방식으로 해석해내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도 쉽게 윤회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부모님이 살았던 기억은 내 기억 속에 남아서 나의 삶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 원인에 충실한 삶을 산다면 내가 만들어내는 삶의 결과는 부모님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지극하게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내 삶의 결과도 부모가 불려준 삶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피그말리온 효과도 부모의 삶이 내 삶에 그대로 복제되는데 기여한다. 부모님의 삶이 비극적인 삶이었다면 이 삶이 내 생에서 반복되면 불교에서는 이런 현상을 업보라고 할 것이다. 내 자식들도 이런 방식으로 삶을 구성해간다면 결국 몇번 업보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더 이상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가족전체가 소멸하는 운명에 처할 것이다. 이런 불길함을 감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속인들이 운명의 고리를 끊는 일에 개입할 수 있다고 제안을 해 올 것이다.

비극이 반복을 통해 복제될 개연성이 더 높지만 상황이 좋다고 윤회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속담에 아무리 부자라해도 삼대를 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 증조부의 삶이 절대적으로 구중궁궐 삶을 대표하는 높은 수준에서 시작했다하더라도 차이를 만들지 못한 삶은 몇 번의 반복을 거쳐서 소멸되는 수순을 밟는다.

결국 부모의 삶이 좋은 조건에서 시작했던지 아주 비극적인 조건에서 시작했던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 조건들이 내 삶 속에서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서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결국 소멸될 운명이 처하게 된다. 세상은 지속적으로 변화할 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모든 것은 어느 순간 반복을 멈추고 소멸한다. 양자물리학에서도 모든 존재하는 것은 에너지 덩어리이다. 결국 원자들이 괘도를 순환하는 반복을 통해 에너지를 양산해내지 못하면 애트로피만 증가시키고 소멸된다. 백년기업의 원리나 흥하는 집안의 원리는 반복을 통해 차이를 선도하는 변화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런 원리를 가장 명증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이 불란서의 들뢰즈이다. 들뢰즈는 윤회의 인과적 고리를 끊는 사람들은 반복을 통해 차이를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한다.

들뢰즈는 자신의 저서 <차이와 반복>에서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의 외양은 일상이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반복되는 것들을 통시적으로 늘려놓고 생각하면 어떤 반복은 반복을 통해서 차이를 생산하고 어떤 반복은 차이를 생산하지 못하고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다는 점을 지적한다. 반복은 차이를 생산하는 반복과 차이를 생산하지 못하는 반복으로 나눠진다. 차이를 생산하지 못하는 반복은 죽음에 이르는 길인 셈이다. 윤회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반복의 원리에 집중할 것을 주문한다.

리더라고 지칭되는 사람들은 부모님의 삶이 이들의 삶에서 단순 반복되는 것을 넘어서 이 반복을 통해 차이를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스타벅스의 창업자 슐츠의 아버지는 가난하고 불운한 사람이었다. 다리가 부러졌는데도 보험이 없어서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했다. 결국에는 폐암으로 사망한다. 슐츠은 이런 아버지의 삶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외면하면서 살았다. 이때 슐츠는 각성사건을 체험한다. 어느 날 슐츠는 얼굴이 익은 단골손님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그 단골손님은 자기는 직장으로부터 해고당해 여기 말고는 갈 곳이 없어서 매일 매장을 찾는 것이라며 하소연하듯 고백한다. 멋쩍게 웃고 돌아서는 그의 얼굴에 이슬이 맺쳐 있는 것을 보았다. 슐츠는 그 중년 남성을 보고 자신의 어린 시절 사회적으로 부적응자로 증오했던 자신의 아버지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된다. 슐츠는 아버지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까를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회사를 키워서 아버지 같은 사람들에게 보험도 제공하고 최소한의 일자리도 제공해 무거운 어깨를 덜어주겠다고 다짐하고 스타벅스를 키웠다. 슐츠에게 삶은 매일매일 일상의 반복이지만 이런 생각을 반복에 끼워넣는 순간 아버지의 삶과는 다른 결과를 창출하는 삶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차이를 통해 윤회의 고리를 끊은 것이다.

슐츠가 아직도 부모를 원망하고 부모의 삶을 자신의 삶의 숙명적인 반복으로 받아들었다면 지금의 스타벅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간디가 부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부유한 인도인 변호사의 삶에 만족해가며 부모의 삶을 반복했다면 지금의 인도는 없었을 것이다. 링컨이 가난하고 못생긴 부모의 삶을 자신의 삶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냥 반복했다면 지금의 미국은 없었을 것이다. 밤비노의 저주가 레드삭스 선수들의 삶을 장악하고 있다면 레드삭스는 월드시리즈에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주영 회장이 부모의 삶을 반복해가며 고향에 머물러가며 소 한 마리를 훔쳐나올 행동을 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현대는 없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은 어제의 반복이고 내일은 오늘의 반복이다. 이 반복에 개입하지 못한다면 미래는 과거의 재생산이다. 스티브 잡스도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어제와 같은 삶을 반복할 것인가?>를 자신에게 물어보고 삼일간 연속해서 아니라는 답이 반복되면 이 반복에 새로운 것을 끼워넣어야 할 시점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리더는 지금도 반복되는 삶 속에 자신이 미래에 남겨줄 삶의 유산을 가져와 차이를 생산하는 반복으로 전환시킨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설사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단순반복을 벗어나기 위해 오늘 자신의 삶에 사과나무를 심는 행동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런 차이를 만드는 반복이 성공적으로 실현되는 순간 부모의 운명이 내 삶에 윤회로 재현되는 고리가 끊어진다. 새로운 더 높은 차원의 윤회의 플랫품을 자손들에게 남겨줄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