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2-01 20:44
[N.Learning] 청바지 꼰데
 글쓴이 : Administra…
조회 : 19  

수평적 조직의 조건
청바지 꼰데

어느 회사의 대표분과 최근 개발한 이 회사의 리더십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 리더십이 수평조직 문화를 진작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가 도마에 올려졌다.

요즈음 수평적 조직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다보니 애자일, 스마트, 스피드 등의 강한 용어가 난무하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심지어는 회사에서 님자를 붙이거나 옷차림을 바꾸거나 하는 것이 수평조직의 본질인 것처럼 호도되고 있음도 지적했다. 본인이 오랫동안 글로벌 기업이나 굴지의 대기업 근무했던 경험에 근거해보면 정작 수평조직의 진짜 본질인 일하는 방식의 핵심인 보고와 회의 문화라는 것이다. 회의문화나 보고문화는 하나도 변함이 없는 상태에서 무늬만 수평조직으로 옷을 갈아입었다고 해서 수평조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지금과 같은 수평조직에 대한 유행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요즈음에는 이런 잘못된 세태를 풍자하기 위해 <청바지 꼰데>라는 말이 유행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동감하는 바가 컸다. 수평조직인지 아닌지는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승부가 갈리게 되어 있다. 회사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과 가장 면밀하게 연결된 것이 회의와 보고이다. 회의는 문제해결 방식을 찾는 과정이고 보고는 이것의 집행과 관련된 문제해결의 두 축이다. 회사에서 회의와 보고를 보면 초심자가 보더라도 문제해결과 관련없이 낭비성으로 이뤄지는 것이 절반을 넘는다. 평상시 일하는 방식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이 아닌 가짜 일에 힘을 써가며 무거운 배낭을 메고 일을 하고 있으니 일이 효과적으로 처리될리가 없다.

회의나 보고에서 문제의 해답을 제대로 찾아내고 이것을 적시에 실행하는 수평조직인지의 문제를 진단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피드백 루프가 끊어져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회의시에도 학연, 지연, 혈연, 권력, 직급, 남여 등과 상관없이 문제해결에 필요한 정보가 필요한 곳에서 더 필요한 곳으로 거래비용없이 물흐르듯이 주고 받아진다면 피드백 루프가 제대로 작동되는 것이다.

하버머스가 언급하는 이상적 담론상황이 회의에서 구현되고 있다면 피드백 루프가 끊어지지 않은 수평조직의 회의문화가 달성된 것으로 보인다.

하버마스는 이상적 회의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가 회의의 외적 조건에 해당하는 권한 연줄 직책 등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조건은 진리성이다. 사실적인 것이 아닐 경우 즉시 수정되어야 하고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은 즉시 교정되는 것을 말한다. 상사가 진리성을 위반해 백조를 흑조라고 이야기하면 부하가 즉시 피드백을 통해 백조라고 고쳐나갈 수 있는 분위가가 진리성의 조건이다. 둘째는 의도의 진정성이다. 상사가 자신의 숨겨진 개인의도를 감추고 겉으로 멋지게 포장해서 거짓으로 이야기 할 경우 부하가 나서서 이 숨겨진 의도와 지금 이야기 하는 것이 같지 않을 수 있음을 문제로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은 정당성이다.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조직이 실현시키려는 목적과 정렬되어 있을 때 최고의 정당성을 획득한다. 상사가 자신과 자신 부서의 이익을 챙기고 조직의 사명과 목적을 침해하는 행동을 하면 회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이런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손실에 대해서 피드백 해서 이를 고쳐나갈 수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조직의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 고양이 목에 누구라도 나서서 방울을 달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하버머스도 동감하는 이상적 회의 상황이다. 회의 참여자의 간주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회의에서 발언시간과 순서도 직책에 의해서 배분되거나 정해지는 것을 경계해야한다.

수직적 보고에서도 피드백 루프가 자주 끊어지는 것을 목격한다. 회사가 가진 자원들이 회사가 정해놓은 목적을 위해서 최적으로 배분되는 과정을 실현시키는 보고가 수평적 문화에서 이뤄지는 보고이다. 현업의 문제를 잘 알고 있는 부하가 조직의 목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어떤 기안을 만들었을 때 조직의 목적을 실현시키기 보다 자신의 권한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결제를 해주지 않거나 늦추는 행동을 한다면 보고에서 피드백 루프가 끊어진 것이다. 이런 기안이 들어오면 상사가 책임을 지고 다른 곳에서 자원을 끌어와서라도 실현시킨다면 끊어진 피드백 고리는 다시 연결된다. 누가보기에도 비전을 실현시키는 획기적 과제를 들고올 경우 이 문제는 네가 제일 잘 할 것 같으니 내가 책임지고 밀어줄께. 한 번 마음껏 해봐 라고 이야기하는 상사들로 포진된 회사가 수평적 회사이다. 비전의 실현과는 상관없이 누구에게 권한이 있음을 검증하는 보고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가장 좋은 문제해결에 대한 답안을 가지고 있어도 실행되는 것은 요원한 조직이 될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글로벌 조직에서는 조직설계를 직책 중심에서 역할 중심으로 바꾸고 있다. 또한 역할과 역할들의 중재자를 직책이 아니라 조직이 설정한 사명과 목적을 역할에 내면화해서 통제하는 시스템으로 바꾸고 있다.

수평조직문화의 핵심은 문제해결과 실행을 위한 회의나 보고가 누가보기에도 조직이 설정한 목적을 실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설정하고 실행되는 지의 문제이다. 이런 목적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회의와 보고가 최적화 되어 있다면 옷을 정장을 입고 오던지 평상복을 입든지 님을로 부르던지 직책에 따라 부르지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직책자가 이런 핵심에 집중해서 회의와 보고를 실천한다면 이분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으로 직책을 불러주는 것이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 직책이나 복장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 실행하는 방식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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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Paul Sangsoon Park 회의와 보고 맞습니다 ㅎㅎ 주제와 관계없는 직원들까지 집합시키는 회의, 본질과 동떨어진 내용을 요구하는 보고 등등 주로 상급자의 권위주의 욕심을 채우거나 중간매니저들의 호가호위를 위한 수단으로 오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윤태옥 저기요~ 질문 있습니다.

    대표의 존대는 대표분 말고 대표님 정도로 하시는 건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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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처럼 살지 않을 수 있을까?
윤회의 고리

불교에서는 윤회를 복잡한 방식으로 해석해내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도 쉽게 윤회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부모님이 살았던 기억은 내 기억 속에 남아서 나의 삶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 원인에 충실한 삶을 산다면 내가 만들어내는 삶의 결과는 부모님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지극하게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내 삶의 결과도 부모가 불려준 삶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피그말리온 효과도 부모의 삶이 내 삶에 그대로 복제되는데 기여한다. 부모님의 삶이 비극적인 삶이었다면 이 삶이 내 생에서 반복되면 불교에서는 이런 현상을 업보라고 할 것이다. 내 자식들도 이런 방식으로 삶을 구성해간다면 결국 몇번 업보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더 이상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가족전체가 소멸하는 운명에 처할 것이다. 이런 불길함을 감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속인들이 운명의 고리를 끊는 일에 개입할 수 있다고 제안을 해 올 것이다.

비극이 반복을 통해 복제될 개연성이 더 높지만 상황이 좋다고 윤회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속담에 아무리 부자라해도 삼대를 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 증조부의 삶이 절대적으로 구중궁궐 삶을 대표하는 높은 수준에서 시작했다하더라도 차이를 만들지 못한 삶은 몇 번의 반복을 거쳐서 소멸되는 수순을 밟는다.

결국 부모의 삶이 좋은 조건에서 시작했던지 아주 비극적인 조건에서 시작했던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 조건들이 내 삶 속에서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서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결국 소멸될 운명이 처하게 된다. 세상은 지속적으로 변화할 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모든 것은 어느 순간 반복을 멈추고 소멸한다. 양자물리학에서도 모든 존재하는 것은 에너지 덩어리이다. 결국 원자들이 괘도를 순환하는 반복을 통해 에너지를 양산해내지 못하면 애트로피만 증가시키고 소멸된다. 백년기업의 원리나 흥하는 집안의 원리는 반복을 통해 차이를 선도하는 변화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런 원리를 가장 명증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이 불란서의 들뢰즈이다. 들뢰즈는 윤회의 인과적 고리를 끊는 사람들은 반복을 통해 차이를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한다.

들뢰즈는 자신의 저서 <차이와 반복>에서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의 외양은 일상이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반복되는 것들을 통시적으로 늘려놓고 생각하면 어떤 반복은 반복을 통해서 차이를 생산하고 어떤 반복은 차이를 생산하지 못하고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다는 점을 지적한다. 반복은 차이를 생산하는 반복과 차이를 생산하지 못하는 반복으로 나눠진다. 차이를 생산하지 못하는 반복은 죽음에 이르는 길인 셈이다. 윤회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반복의 원리에 집중할 것을 주문한다.

리더라고 지칭되는 사람들은 부모님의 삶이 이들의 삶에서 단순 반복되는 것을 넘어서 이 반복을 통해 차이를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스타벅스의 창업자 슐츠의 아버지는 가난하고 불운한 사람이었다. 다리가 부러졌는데도 보험이 없어서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했다. 결국에는 폐암으로 사망한다. 슐츠은 이런 아버지의 삶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외면하면서 살았다. 이때 슐츠는 각성사건을 체험한다. 어느 날 슐츠는 얼굴이 익은 단골손님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그 단골손님은 자기는 직장으로부터 해고당해 여기 말고는 갈 곳이 없어서 매일 매장을 찾는 것이라며 하소연하듯 고백한다. 멋쩍게 웃고 돌아서는 그의 얼굴에 이슬이 맺쳐 있는 것을 보았다. 슐츠는 그 중년 남성을 보고 자신의 어린 시절 사회적으로 부적응자로 증오했던 자신의 아버지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된다. 슐츠는 아버지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까를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회사를 키워서 아버지 같은 사람들에게 보험도 제공하고 최소한의 일자리도 제공해 무거운 어깨를 덜어주겠다고 다짐하고 스타벅스를 키웠다. 슐츠에게 삶은 매일매일 일상의 반복이지만 이런 생각을 반복에 끼워넣는 순간 아버지의 삶과는 다른 결과를 창출하는 삶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차이를 통해 윤회의 고리를 끊은 것이다.

슐츠가 아직도 부모를 원망하고 부모의 삶을 자신의 삶의 숙명적인 반복으로 받아들었다면 지금의 스타벅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간디가 부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부유한 인도인 변호사의 삶에 만족해가며 부모의 삶을 반복했다면 지금의 인도는 없었을 것이다. 링컨이 가난하고 못생긴 부모의 삶을 자신의 삶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냥 반복했다면 지금의 미국은 없었을 것이다. 밤비노의 저주가 레드삭스 선수들의 삶을 장악하고 있다면 레드삭스는 월드시리즈에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주영 회장이 부모의 삶을 반복해가며 고향에 머물러가며 소 한 마리를 훔쳐나올 행동을 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현대는 없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은 어제의 반복이고 내일은 오늘의 반복이다. 이 반복에 개입하지 못한다면 미래는 과거의 재생산이다. 스티브 잡스도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어제와 같은 삶을 반복할 것인가?>를 자신에게 물어보고 삼일간 연속해서 아니라는 답이 반복되면 이 반복에 새로운 것을 끼워넣어야 할 시점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리더는 지금도 반복되는 삶 속에 자신이 미래에 남겨줄 삶의 유산을 가져와 차이를 생산하는 반복으로 전환시킨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설사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단순반복을 벗어나기 위해 오늘 자신의 삶에 사과나무를 심는 행동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런 차이를 만드는 반복이 성공적으로 실현되는 순간 부모의 운명이 내 삶에 윤회로 재현되는 고리가 끊어진다. 새로운 더 높은 차원의 윤회의 플랫품을 자손들에게 남겨줄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