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5-17 08:03
[N.Learning] 오래된 새길과 미리 갔던 옛길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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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새길과 미리 간 옛길:
진성리더가 가야 할 길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진성리더십 아카데미 도반들과 같이 읽으면서 진성리더의 삶은 오늘이라는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며 오래된 새길과 미리 갈 옛길을 이어가며 더 나은 차이와 더 나은 변화를 만드는 사명을 실행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들뢰즈는 과거와 미래가 현재 우리의 삶으로 불러들여오지 못한다면 과거와 미래는 헐벗은 과거이고 헐벗은 미래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헐벗은 채로 남겨진 과거나 미래는 결국 죽음의 세계일 뿐이다. 결국 과거나 미래가 살아나는 것은 현재라는 삶의 반복을 통해 현재로 가지고 들어와 부활시킬 수 있을 때 과거는 기억의 흔적으로 죽어가거나 미래는 육체가 시들어 죽어갈 수 밖에 없는 무덤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봤다.
과거의 부활과 미래의 부활은 어떤 의미일까?
과거는 기억의 흔적으로만 남을 경우 결국 잊혀져 죽어버린다. 현재로 소환되서 살아나지 못한 과거는 잘못을 반복한다. 반대로 과거의 사건과 기억이 현재로 소환되어 지금의 삶에서 해석되고 새로운 의미로 전달될 경우에 과거는 다시 부활한다.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과거가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오래된 새길을 만들어내는 것이 과거의 부활이다.
미래의 부활은 무엇인가?
그냥 하루하루를 반복적으로 쳇바퀴 돌듯이 생존을 위해 살다보면 우리가 필연적으로 만다는 것은 생명의 소멸 즉 죽음이다. 이 육체적 죽음에 직면했을 때 미래의 후세를 위해 기억으로 남겨질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았다면 그 순간 우리는 완벽한 소멸을 경험한다. 미래의 부활이란 이 운명적 죽음의 현실을 인정하고 죽음의 순간 후세에 남겨주어야 할 유산의 내용을 지금 당장 현재로 가져와 씨앗으로 발아시켜 과일나무로 키우고 이 열매를 만들어 나눠주는 일이다. 과일이 풍성한 과일나무가 지금 당장 만들어졌을 때 미래는 나를 통해 현재로 소환되어 다시 살아 난 것이다. 이미 현재의 시점에서 이 과일나무을 통해 찾아낸 미래는 나에게는 미리 갈 옛길이 된 것이다.
미래는 우리가 생각하듯이 따라가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따라갈 수 없는 시간이다. 미래를 무작정 따라간 사람들이 만나는 것은 죽음의 계곡이다. 초격차를 주장하며 내달리거나 초격차를 낸 사람들을 속도를 따라간 사람들 모두는 결국 죽음의 계곡에서 미래와 결별한다. 미래는 따라감이 아니라 미래를 앞서가서 이 미래를 현재로 가져와 과일나무를 길러내 과일을 맞보게 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체험한다.
기독교가 쇠퇴하는 이유도 결국 따지고 보면 크리스쳔들이 과거의 부활과 미래의 부활의 의미를 제대로 찾아서 서로 이어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을 잣구하나도 바꾸지 않고 암기하는 교리주의 방식이 성경의 메시지를 과거의 기억 속에 죽도록 방치했다. 크리스쳔들이 자신의 사후에 세상에 남겨질 유산을 지나치게 세속적으로 해석하고 이 유산을 현재로 가져와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에 실패했다. 죽음의 순간에 크리스쳔으로 세상에 남겨질 변화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지만 이미 늦었다. 제대로 된 크리스찬이라면 매일 같이 자신의 현재의 삶을 통해 예수를 부활시키는 과거의 부활에 매진해야 한다. 또한 자신의 몸을 통한 미래의 부활을 준비해야한다. 결국 과거를 통해서나 미래를 통한 예수의 제대로된 부활이 아니라 결국 돌아가신 예수를 두 번 죽이는 일에 동참한 것이다. 기독교의 부활은 크리스쳔들이 삶에서 오래된 새길과 미리갈 옛길을 찾아내 기독교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진성리더란 과거의 유산을 현재로 가져옴을 통해 오래된 새길을 만들어내고 이 오래된 새길에 대한 여정을 미래를 현재로 가져와서 만들어낸 미리 갈 옛길을 찾아서 연결시키는 일을 한다. 이를 통해 진성리더가 하는 일은 자신이 세상을 다녀갔기 때문에 세상이 더 아름답고 더 행복해졌고 더 건강해졌다는 더 나은 변화에 대한 기억과 실현된 유산을 후세의 기억 속에 남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