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28 06:37
[N.Learning] 자유와 평등은 사라지고 싸움꾼만 남았다
 글쓴이 : Administra…
조회 : 9  
자유와 평등은 사라지고
싸움꾼만 남았다
자유는 보수의 이념이었고 평등은 진보의 이념이었지만 지금 보수가 논의하는 자유에는 자유가 없고 진보가 논의하는 평등에는 평등이 사라졌다.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자유가 만들어지는 근원을 잊었고 평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평등이 만들어지는 근원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생긴현상이다.
원래 자유는 진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진실에 직면한 삶을 살 때 우리는 최고의 자유를 만끽한다. 개인이 자신의 진실이라고 주장할만한 것도 없을 경우 이들에게 자유는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삶이나 개인적 방종으로 전락한다. 우리가 지금 시대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자유는 방종과 간섭받지 않음이다. 이런 가짜 자유와는 별개로 우리가 존재로서 약속한 것들을 실제로 삶에서 실현시켜 이것이 구현되어 나의 진실을 직면할 수 있을 때 자유는 날개를 단다. 약속한 진실이 나를 통해 실현되었음을 증거할 때 나는 비로서 자유로움을 체험한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자유는 자신이 약속한 진실을 실현시켜 실제 이 진실을 직면했을 때만 느껴진다. 보수는 자신들이 실현시켜야 할 존재의 본질에 대한 시각을 잃었다. 보수가 주장하는 자유에 자유가 사라진 것이다.
진보가 주장하는 평등도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평등하게 나누는 제로섬의 개념으로는 절대로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고의 평등은 더 높은 곳에 운동장을 만들고 이 운동장에서 자신의 기량을 발휘해서 더 나은 차이가 만들어지고 이 차이에 대한 체험을 같이 나눔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지금처럼 있는 것 가지고 공평하고 똑 같이 나누는 평등은 제살깍아먹기 평등이다. 기회의 평등도 마찬가지다. 타고날 때부터 능력이나 재능이나 머리를 못가지고 태어난 사람에게 기회의 평등은 능력이나 재능이나 머리를 타고난 사람들에게 들러리를 세우는 일이다. 이들이 주장한 평등은 역설적으로 가진사람과 못가진 사람들간 넘을 수 없는 계곡을 만들고 이 계곡의 강을 피로채운다.
자유와 평등이 형식만 남은 자유와 평등으로 전락한 또 다른 이유는 박애의 상실이다. 자유 평등 박애는 민주주의의 삼형제였다. 이 삼형제의 중재역할을 담당하던 박애가 어느 순간 사망선고를 받고 사라지자 자유와 평등의 두 형제도 더 이상은 형제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남남이 되었다.
박애의 이념은 원래 종교가 담당하던 역할이다. 종교가 싸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과학, 기술 즉 알파고와 싸우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전사했다. 종교의 본질은 과학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널리 퍼트리는 일이다. 사랑의 전파를 의미하는 박애는 기독교에서는 긍휼이고 불교에서는 자비이고 유교에서는 측은지심의 원리였다. 단순히 사랑으로 끝내는 원리가 아니라 자신의 아픔과 남들의 아픔까지도 사랑하고 사랑을 자신의 몸으로 실천해 아픔을 치유하는 행동이 박애이다.
이 박애의 원리가 살아 있을 때 사람들은 사랑의 근원적 원동력을 이해하고 자신과 남을 사랑의 주체로 세운다. 주체로 세우지 않는 삼인칭 삶은 남들이 써준 대본을 연기하는 연기자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랑의 결여는 모든 사람들을 연기자로 만들었다. 연기자들은 카피와 붙임의 달인들이다. 카피와 붙임에 능숙한 삶을 살아갈수록 한번도 주인공이 되본적이 없는 자신의 내면은 고독사를 당한다. 종교가 제대로 박애의 기능을 살려내지 못하자 결국 남들의 삶을 베껴살다가 외롭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나는 이 세 가지 민주주의의 원리 중 가장 먼저 회복되어야 할 원리가 사랑을 복원하고 이를 전파시키는 박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원리를 제도적으로 가장 잘 실현해왔던 것이 종교였지만 제도적 종교가 제대로 역할을 못한다면 개인들이라도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아 자신의 성전을 부활시키는 행위를 시작해야 한다. 타인에 대한 사랑이 회복되면 세상에 범주적으로 존재하는 많은 균열들 간 서로 접촉되고 관계맺음이 시작될 것이다. 이 관계 맺음을 통해 범주적 차이가 해소되면 어떤 배경을 가진 개인도 자신의 존재이유를 구현하기 위해 주인공으로 나서는 삶에 도전할 것이다.
자신의 고통까지도 사랑할 수 있음은 자신의 삶의 존재를 부활시켜 이것을 실현시며 진실을 만드는 진정한 자유행위에 몰입하게 할 것이다. 또한 남의 고통까지 사랑할 수 있음은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분열된 계곡을 연결할 수 있는 다리를 놓는 작업에 시동을 걸 것이다. 언젠가는 완성된 다리를 통해 교통과 서로에 대한 공동의 더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진정한 의미의 평등이 사랑과 긍휼을 통해 복원된 세상이 온 것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진출했을 때 광화문의 응원의 함성을 생생히 기억한다. 공동의 목적을 위해 같은 운동장에 모인 사람들의 느꼈던 유대의 체험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남녀노소 가난한 사람 부자 모두가 한 마음으로 모여 열기에 달떠 있었다. 나를 비롯해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진정으로 자유에 대한 체험을 느꼈을 것이다. 여기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평등에 대한 체험도 느꼈을 것이다. 축구를 사랑했고 나라를 사랑했고 모인 사람들을 사랑했고 같이 모였다는 사실을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한 감정이었다. 우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유대의 복원은 긍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Gunjea Yu, Nam Sup Ahn, 외 5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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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 오늘도 몇번에 나누어서 읽었습니다. 짬짬이...^^
    북한땜에 불안한게 아니라, 정부나 국회를 보니 더 불안해지는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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