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28 06:47
[N.Learning] 세습사회 해체는 가치와 정치의 문제다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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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사회 해체는 가치와 정치의 문제다
2019-10-14 2408
지금 기성세대들에게 세상이 똑바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세상이 엉망으로 된 탓도 있지만, 기성세대들의 과거 지식으로 만든 안경이 잘못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세상을 보아왔던 옛날 안경을 버리고, 세상을 더 잘 볼 수 있는 새 안경을 준비해야 할 시기다. 옛날식의 단순한 불평등 프레임이나 옛날식의 세대 프레임, 옛날식의 진보와 보수 프레임에 억지로 눈앞의 현실을 끼워 넣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적폐 청산보다 어려울 세습적 특권의 해체
한국 사회에서 지금 어느 부모에게서 태어났는가에 따라 자녀들 인생의 절반쯤이 결정되고, 그것은 특히 성장 과정에서 밟아가는 모든 교육단계에서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했다. 그 결과 엘리트 교육과정을 철저히 밟아간 부유한 부모의 자녀들은 최고 학교의 학력과 자격에 더하여 부모가 제공해주는 사회적, 문화적 자본의 뒷받침 아래 최고의 직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반면 하위 80%서브 프라임 사회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출발선부터 불리하게 시작하고 개인의 능력과 별개로 불리한 교육환경은 물론 부모에게 물려받은 사회적, 문화적 자본도 큰 힘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그 결과 사회에 진입하면서도 소득과 지위가 크게 차이 나는 직업을 얻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결국 이렇게 고착된 세습적 특권을 해체하자면, 아마도 적폐 청산보다 100배쯤 어려울 전쟁 수준의 개혁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출발선을 비슷하게라도 조정하는 자산의 재분배, 능력과 지위에 관계없이 최저임금과 최고임금의 절대 격차를 크게 압착하는 소득 조정, 그리고 엘리트 특권을 체계적으로 양산하는 교육의 대개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이 도정에서 먼저 고민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나마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줄 수 있다고 굳게 믿는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신화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항상 문제 해결의 첫 번째 난관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려움은 새로운 생각을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는데 있다. 우리 대부분이 길러진 방식 그대로 길러진 사람들에게는 낡은 생각이 정신의 구석구석에까지 가지를 뻗치고 있기 때문이다.”(케인스 『일반이론』 서문에서)
능력주의의 내재적 논리에서 자라나는 불평등
흔히들 출신 성분과 무관하게 노력과 성과에 따라 보상받는다고 알려진 능력주의는, 타고난 핏줄만으로 모든 특권을 물려받는 귀족주의와 선명하게 대비된다. 따라서 귀족주의는 세습이라는 단어와 정말 잘 어울리지만, 능력주의는 세습이라는 단어와 무관하게 여겼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세습은 귀족주의에서는 물론이고 능력주의에서도 작동 가능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앞에서 확인했다. 따라서 여기서는 세습의 두 가지 방식을 대비함으로써 능력주의 가치의 한계와 함정을 좀 더 파고들고 싶다.
이 대목에서 다니엘 마코비츠(Daniel Markovits)가 최근에 펴낸 책 『능력주의 함정(The Meritocracy Trap)』은 논쟁적 시사점을 던져 준다. 얘기를 불평등으로부터 시작해보자. 최근의 극심한 불평등은 단지 소득격차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속속 확인되고 있다. 조국 장관 인사 검증과정에서 불거진 것은 소득 불평등을 넘어 자녀교육 과정을 뒷받침하는 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자본의 압도적 격차를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그것은 거대 재벌 자녀와 평범한 가정의 자녀의 차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능력주의) 엘리트 집안의 자녀와 평범한 가정 자녀의 차이에 관한 이야기였고, 그냥 차이가 아니라 세대로 이어지는 삶의 총체적 분리의 문제였다. 그래서 현대판 ‘신분제의 부활’이 거명될 정도였다.
불평등이 단순히 동일 세대 구성원들 사이의 소득 격차 확대를 넘어서 세대를 이어가며 확대재생산되고 있다면, “출신 성분과 무관하게 자신의 노력과 성취에 따라 보상받는” 능력주의 기제에 뭔가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닌가? 이 대목에서 마코비츠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는 불평등이라는 우리 시대의 핵심적 비극이 능력주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거나 능력주의로부터의 궤도 이탈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능력주의가 제대로 실현되었기 때문이란다. 즉, “능력주의는 불평등 확대에 대한 해법이 아니라, 불평등이 자라난 뿌리다.(Meritocracy is not the solution to rising inequality but rather its root).”
보통 사람들의 상식과 어긋나는 이 역설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우선 마코비츠는 현대 능력주의 엘리트(meritocratic elites)가 중세 귀족과 다른 것은 물론, 100여 년 전에 베블런이 절묘하게 표현했던 ‘유한 귀족(leisured aristocracy)’과도 다르다고 주장한다. 요점은 이렇다.
1950~60년대에 본격적으로 능력주의 혁명(meritocratic revolution)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모든 사람이 이른바 ‘인적 자본’을 쌓고, 또 자녀에게도 고급의 ‘인적 자본’을 물려주는 풍조가 생겼단다. 다시 말해서 새롭게 형성된 엘리트 집단은 과시적 소비로 시간을 낭비하는 유한계급이 아니라, 최고의 학력과 자격을 얻기 위해 엄청난 자원을 투자하여 전문 경영인, 은행가, 법률가, 의사, 회계사, 로비스트와 같은 ‘엘리트 직업(elite jobs)’을 획득한다. 이런 상급 직원(superordinate workers)은 과거와 달리 가장 많은 시간을 직장 생활에 투입하는데, 그것이 현대의 엘리트들이 종사하는 이른바 '극한직업(extreme jobs)'이란다. 이렇게 현대 엘리트는 과거의 유한 엘리트(leisure elites)와 확연히 대비되는 일하는 엘리트(hard-working elites)로 변했단다. 한마디로 엄청난 학력과 자격의 획득, 엄청난 노동 시간 투입으로 극한직업을 견디면서 이들은 그 대가로 문자 그대로 엄청난 ‘보상’을 요구하게 되고, 더 나아가 ‘능력(merit)’이라는 이름으로 이 사회의 물적, 인적, 사회적 자원을 독식하게 된단다. 이렇게 능력주의 불평등(meritocratic inequality)가 자라나게 된단다.
능력주의가 거부했던 세습, 스스로 불러들이다
이뿐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자녀들이 최고 엘리트가 될 수 있도록 압도적인 자원을 부모 살아생전 아이들에게 투입하도록 한단다. 먼저 고학력 엘리트들은 자신들끼리 만나서(assortative mating)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훨씬 더 많은 물질적 지원뿐 아니라 평균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아이에게 투자한단다. 이어서 보통의 서민은 물론 중산층도 상상하기 어려운 훨씬 특권적이고 비싼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각종 과외 교육에 투자하며, 결국은 최고의 일류 대학, 대학원에 보낼 수 있게 된단다. 최근 언론을 통해 새삼스럽게 구경했던 그런 코스 말이다.
엘리트 부모에게서 태어나 엘리트 초, 중, 고등학교를 나오고 엘리트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 엘리트 직업을 잡아서 초고액 연봉을 받는 코스를 따라서 이렇게 엘리트 지위는 세습된다. 20세기 중반까지의 ‘유한 귀족(leisured aristocracy)’ 자녀들의 특권이 ‘타고나는(being born)’것이었다면, 오늘날 현대 능력주의 엘리트(meritocratic elites) 자녀들의 특권은 ‘만들어지는(being made)’것이란다. 이 과정이 바로 과거 ‘귀족주의 세습’과 대비되는 ‘능력주의 세습’이 구축되는 모습이고, 여기서 바로 능력주의가 부인하고자 했던 ‘세습’을 스스로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능력주의는 귀족주의를 몰아낸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귀족주의를 혁신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논지에 따르면 이제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는 핵심 유산은 ‘물질 자본’이 아니라 ‘인적 자본’이 될 수 있다. 부모가 사망 후에 유산으로 남겨주는 ‘물질 자본’이 하는 역할보다는, 부모가 살아생전에 자녀에게 다양하게 투자하는 ‘인적 자본’이 상대적으로 커진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마코비츠는 흥미있는 어림계산을 한다. 상위 1% 능력주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25세까지 교육에 투자한 비용을 합산하여 나온 금액만큼을, 부모들이 신탁기금에 저축한 후 사후에 유산으로 물려주었다고 가정하면 그 규모가 무려 천만 달러(약 100억 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그가 계산을 하지는 않았으나 상위 10%로 확대해도 최소 10억 원 이상은 넘을 것이고 이는 우리나라에 적용해도 큰 무리가 없지 않을까 한다. 과연 엄청나다. (그는 이를 토대로 토마 피케티가 물질적 부의 세습을 강조했던 점에 대해서 일정하게 비판을 하는데,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이기는 한다.)
능력주의 해체의 첫 깃발 포퓰리즘
능력주의는 평등을 보장한다. 어떤 대학들도 학업 성적에 따라 평가하고, 어떤 기업도 기술 능력에 따라 고용한다. 그 외에 어떤 연줄, 특혜, 지역, 세습 등은 없다. 능력주의에 대한 이런 믿음은 일종의 종교 수준이었다. 본고장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하지만 한번 능력주의로 키워진 한 세대의 엘리트들(미국에서는 베이비부머, 한국에서는 586?)이 사회를 지배하면서 사회적 산출의 압도적 부분을 가져갈 뿐 아니라, 자녀들을 엘리트로 ‘만들어 내는’ 사회적 경로를 제도적으로 구축하자마자, 기회의 평등은 사라지고 불평등은 심화되며, 기득권과 특권은 대물림된다. 미국도 한국도 이렇게 능력주의의 평등화 기제는 한 세대를 넘지 못하고 두 번째 세대로 넘어오면서 능력주의 위계질서(meritocratic caste order)가 사회에 고착된다.
그렇다면 자신이 부정했던 세습 구조를 다시 불러들이고 전대미문의 불평등을 초래시켰던 능력주의의 함정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전쟁, 혁명, 국가의 붕괴, 전염병, 기타 참사들과 같은 치명적인 대재앙에 의해서만 한 사회의 불평등이 확실히 끝났다”고 단언할 만큼 사실 불평등이나 세습 해체는 쉬운 과제가 아닌 것은 틀림없다.(발터 샤이델, 『불평등의 역사』) 그런데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엘리트주의는 벌써 다른 곳에서 해체의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바로 우익 포퓰리즘이 그것이다.
백인우월주의나 포퓰리즘은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능력주의 불평등에 대한 반발의 표현이다. 서구 시민의 분노는 기업가나 세습 부자들이 아니라, 고급전문 계층(은행가, 법률가, 의사, 과학자)들에게 향해 있다는 진단도 있다.(마코비치, 『능력주의 함정』) 그런 점에서 트럼프의 등장은 보통 시민들에 대한 기득권 엘리트의 능력주의적 오만이 낳은 결과란다. 매튜 스튜어트 는 지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을 상위 1%와 하위 90%의 연합으로 이뤄낸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상위 9.9%가 빠져있다. 다시 말해서 상위 10%, 또는 20% 엘리트 집단은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면서 기존 기득권 체제를 고수했지만, 하위 90%의 대다수와 최상위 부자들(1%)은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확실히 포퓰리즘은 기득권 엘리트 집단에 대한 총체적 반발을 담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집권한 (미국식 엘리트의 상징인) 오바마 대통령은 기득권 엘리트들로 재무부와 행정부를 구성하고 어중간한 개혁을 8년 동안 지지부진 한 결과 시민들의 좌절과 불만을 누적시켰다. 이어서 또 다른 기득권 엘리트의 전형인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출마에 대응하여 트럼프라는 포퓰리스트가 돌출적(?)으로 집권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정치적 귀결일 수도 있다. 한국도 최근 조국 장관 임명을 전후해서 기득권 엘리트에 대한 전쟁이 다소 기이한 방식으로 확전되고 있다. 조국 장관 자신도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기득권 엘리트이고, 검찰 조직 역시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기득권 엘리트 집단이다. 이들을 두고 대규모 군중 집회가 각기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것은 포퓰리즘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바람직한 정치적 발전인가에 대해 많은 의문이 든다.
능력주의 세습 해체의 또 다른 길은 무엇일까?
그러면 어떻게 우익 포퓰리즘의 길을 피하면서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신종 엘리트 세습사회를 해체할 수 있을까? 내 수준에서 쉽게 이야기해볼 수 있는 주제는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먼저 그나마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줄 것 같았던, 그리고 실제로 적어도 586세대까지는 잘 먹혔던 능력주의가 원래의 전망과 정반대로 불평등을 세습시키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인지하고 이에 대처하려는 공감대를 만들어나가는 것을 생각해보고 싶다. 사실은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신종 기득권 특권 구조를 미쳐 알아차리기 어려운 이유가 있는데, 이를 매튜 스튜어트(Matthew Stewart)는 그의 소책자 『부당 세습(The 9.9 Percent is the New American Aristocracy)』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우리의 특권이 점점 커지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데에는, 그런 특권이 최근에 생겨났다는 점도 한 몫 한다. (완전히 형성된 적도 없는) 능력자 계층(meritocratic class)이 신흥 귀족 계층으로 진화하는 데에는 채 한 세대도 걸리지 않았다. 계급은 우리 생각보다 더 빨리 고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은 평범한 계급으로 태어났다는 가정에 갇혀 이를 빠르게 받아들지 못한다.”
아마 나를 포함해서 586세대를 선의로 해석하자면, 위의 이유 때문에 과도한 능력주의가 점점 한국 사회 내부에 불평등과 엘리트주의적 세습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다. 사실 눈앞의 대상이 기울어져 보이면, 그 대상이 기울어 졌나 의심하다가도, 한 번 쯤은 내가 쓰고 있는 안경이 잘못된 탓에 기울여져 보이는 것이 아닐까 반성해보는 것이 맞다. 내가 보기에 지금 상황이 딱 그렇다. 지금 기성세대들에게 세상이 똑바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세상이 엉망으로 된 탓도 있지만, 기성세대들의 과거 지식으로 만든 안경이 잘못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세상을 보아왔던 옛날 안경을 버리고, 세상을 더 잘 볼 수 있는 새 안경을 준비해야 할 시기다. 옛날식의 단순한 불평등 프레임이나 옛날식의 세대 프레임, 옛날식의 진보와 보수 프레임에 억지로 눈앞의 현실을 끼워 넣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라도 인지했다면 그다음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개인적으로 능력주의를 확실히 대체하는 제 3의 사회적 평등화 솔루션을 당장 말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확실하다고 판단하는 것 하나는, 능력주의가 특히 ‘무차별 경쟁과 승자독식을 촉진하는 신자유주의와 만났을 때’ 그 부작용이 확대된다는 점이다. 시장 경쟁이 만들어내는 무제한 경쟁과 승자독식을 억제할 힘이 있는 국가와 공공의 역할을 신자유주의는 완전히 무시했고, 사회 복지의 평등화 기제 역시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신자유주의가 작동한 지 40여년이 되는 상황에서 불평등은 너무 커졌고 이를 재생산하는 자산, 교육, 고용 구조는 너무 고착되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 반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불평등 구조가 꿈쩍도 않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 결국 신자유주의 거부 그 이상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정책적 대안은 앞서 생각을 말했는데, 행동의 시작을 말하자면 어쩌면 출발은 아주 간명할지도 모른다. 프라임 사회와 서브 프라임 사회라는 두 개의 건널 수 없는 세계를 해체하고 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출발은 상위 20% 프라임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문을 여는 것부터이지 않을까 싶다. 앞서 인용한 매튜 스튜어트 역시 자신도 상위 10%안에 있다면서 상위 10%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이렇게 요약한다.
“변화가 일어나려면 우리도 각자 뭔가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현재의 게임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이라면 아마 더 많이 내놓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성공에 도취된 상태에서 벗어나 이웃 너머의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아이들도 기회를 갖도록,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거기에 달린 것처럼, 열심히 싸워야 한다. 정말로 아이들의 미래는 거기에 달려 있을 것이므로.”(『부당세습』, p121)
일단 여기까지가 ‘세습사회’로 변질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해 개인적인 진단과 고민, 그리고 나의 사고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되돌아본 내용이다. 자료를 검토하면서 특히 『20 vs 80의 사회』의 저자 리처드 리브스와 『부당세습』의 저자 매튜 스튜어트의 이야기가 다가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상위 20%, 10% 안에 있는 사람임을 먼저 고백하고 자신들이 속한 집단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하면서 문제를 풀어가려 했다. 한국 사회에서 최근 기득권 특권에 대해서 엄청난 비판이 쏟아지는 와중에, 그런 비판을 하는 분들 중 기득권 특권 그룹에 속하면서도, 본인과는 무관한 것처럼 얘기를 풀어내는 모습을 적지 않게 본다. 나를 포함해서 먼저 자신들의 얘기부터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김병권 / 미래자치분권연구소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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