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7-11 14:58
[N.Learning] 디지털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시급해진 일터의 민주화
 글쓴이 : 윤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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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시급해진 일터의 민주화
얼마전 한 IT 대기업이 신임 CEO 취임과 더불어 새롭게 만든 비전과 핵심가치를 외우게 하고 기업문화 팀이 직원들이 잘 외웠는지를 전화로 점검해서 물의를 일으킨적이 있다. 마치 박정희 정권시절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게 하고 시험까지 보게 했던 기억을 소환하게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전화번호도 기억할 필요가 없는 초연결 디지털시대에 IT를 상징하는 대기업이 앞장서서 이런 방식의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모든 사람이 움직이는 초강력수퍼 컴퓨터를 몸에 달고 사는 시대에 이런 산업화시대를 빠져나오지 못한 사고를 가진 기업이 기술로 디지털 경제의 초강력 고객을 선도한다고 나선다는 것도 선듯 이해가 되지 않는다. 초연결 디지털 시대는 모든 주체가 초 수퍼 컴퓨터를 달고 개별화되고 민주화된 자기 조직적 방식으로 움직인다. 이 회사가 사용한 방식은 마치 21세기에 조선시대 사람의 복장으로 명동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을 만나는 경험처럼 기괴하기까지 하다. 회사가 나서서 종업원을 독립적이고 자율적 성인이 아니라 아이 취급해가며 이들에게 갑질까지 한 것이다.
초연결 디지털 시대에 아직도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한 마디로 디지털 산업을 이끄는 기업에서 조직의 거버넌스와 문화가 시대에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일터가 제대로 민주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기업에서의 일터 민주화는 시급한 과제다.
일터를 민주화 시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첫째 MS, 넷플릭스, 제포스, 아마존 등이 선도하고 있는 일터의 민주화는 일에 대한 주권을 현업의 전문성을 가진 구성원에게 넘겨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회사가 정한 목적에 구성원이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동의했다는 전제 하에 회사는 전략을 지휘하는 총지휘부의 지위를 내려놓고 반대로 플랫폼이 되어 구성원들이 전문적 역할을 구축하여 주인공이 되도록 도와준다. 회사의 역할은 전략을 정하고 이를 캐스케이딩해가며 역할을 할당하고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종업원이 스스로 정의한 전문성을 통해 기량을 발휘해 주인공이 되도록 플랫폼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회사가 만들어준 플랫폼은 종업원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가며 일터를 민주화시키기 위한 아그라 폴리스 운동장이다. 구성원들은 회사의 플랫폼을 이용해 스스로 주인공으로 나서서 자신 역할의 전문성을 신장시키고 회사는 주인공으로 나선 구성원들의 협업을 통해 자신이 정한 목적을 실현시킨다.
일터가 민주화된 곳에서 일하는 방식을 최종적으로 규율해주는 것은 목적에 대한 책무와 이 목적을 자신들의 역할의 전문성을 통해 실현시켜야 한다는 장인정신과 마지막으로 목적을 동료와 협업을 통해 실현해야한다는 협업정신이다. 일터의 민주화란 역할 전문성을 신장시켜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 세우고 주인공이 된 종업원들이 모여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협업해 실제 목적을 성취하는 비범함을 달성하는 초연결 디지털 시대의 새 패러다임이다. 일터가 민주화된 기업에서 새로운 플랫폼을 건설하기 위해 경영진들은 총지휘부 자리를 내려놓고 노조도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는다.
산업화시대에는 기업이 답을 정해놓고 Top Down으로 모든 것을 획일화 시키는 방식이 허용되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종업원이 자신의 일에 대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회사가 관료적 권위주의에서 탈피해 조직을 최대한 수평화하고 평평하게 연결된 조직으로 설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직에 질서와 방향을 설정해주는 거버넌스의 핵심을 구성원이 동의한 기업의 목적이라고 규정한다. 목적은 생태계에서 존재우위를 구현하기 위한 구성원과 회사의 가장 높은 수준에서 합의한 경영의 의도를 구성한다.
일터가 민주화되지 못한 조직의 특징은 회사는 자신을 어른으로 규정하고 이 어른은 종업원을 어린이 취급한다. 시대가 바뀌어도 종업원을 계속 어린이 취급하는 이유는 어른이 시대가 요구하는 기업의 목적을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재한 목적이 회사와 구성원에게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심리적 울타리를 만들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사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구성원은 시키는 일을 시킨대로 해야하는 어린아이였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어린아이가 갑자기 어른이 되지는 못한다고 믿는다. 회사의 입장에서 어린아이는 상시적으로 감시해야 할 대상이다. 현업의 담당자가 환경에서 오는 문제를 조직의 사명을 염두에 두고 독자적이고 전문적으로 어른처럼 처리해도 회사는 이들 어른들을 마이크로 매니지해 다시 어린이 지위로 돌려놓는다.
둘째, 일터의 민주화는 일터를 시대에 맞춰 지속적으로 공진화 시키는 문제이다. MS의 CEO 나탈리는 이 공진화를 Hit Refresh에 비유한다. 상황이 변화하면 이 변화된 상황에 맞춰 현업의 담당자가 자신의 전문성을 끊이 없이 재해석해서 진화시킨다. 책무성을 갖춘 어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민주화 된 일터에서는 회사의 사명이 기대하는 바에 따라 자신의 역할의 전문성을 스스로 설계하고 디자인하고 이를 위해 다른 구성원들과 협업이 필수다. 위에서 인용한 한국의 대기업처럼 회사가 비전과 전략을 정해서 일방적으로 따르게 하지 않는다. 회사가 써준 삼인칭 역할을 제대로 연기했는지로 종업원을 평가하고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설계한 전문성으로 회사의 목적과 사명에 제대로 기여해 책무성을 달성했는지에 따라서 직장내 지위가 부여된다. 기업에서의 일을 통해 회사의 목적을 제대로 실현하고 이를 공진화시키는 일에 주권을 행사한 댓가로 이들에게 시민권이 주어진다.
일터가 민주화된 곳에서는 회사가 Top down으로 강요하지 않아도 구성원들은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자발적으로 기업이 정한 목적을 자신의 업과 과제의 토양으로 가져와서 이것으로 씨를 뿌리고 이에 대한 혁신을 통해 이전보다 더 나은 과실이 얻어내는 일에서 전문성을 입증한다. 역할에 대한 전문성이 신장되는 성장체험이 민주화된 일터에서 이들이 신나게 일하는 이유다.
셋째, 일터의 민주화가 지지부진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오랫동안 회사의 비전이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비전이 복원되지 못한다면 일터의 민주화에 대한 시행착오는 반복될 뿐이다.
펩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끌었던 누이는 진정한 의미의 비전은 조직의 존재이유를 소구해주는 목적에 대한 믿음을 획득했을 때 이 믿음의 눈으로 못보던 것들을 보는 경험이라고 규정한다. 비전이 있다면 미래에 보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도 볼 뿐 아니라 현재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과거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 처해 있는 기회와 위기는 무엇인지를 더 통찰력을 가지고 깊이 있게 잘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이는 목적에 대한 믿음의 눈으로 본 진정한 의미의 비전이 실종된 회사에서 큰 목표에다 멋진 옷을 입혀놓고 비전이라고 강요한다고 경고했다. 심지어는 언급한 한국의 대기업처럼 이 비전을 통해 미래를 볼 수 없는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구성원들에게 암기하도록 강요한다. 이런 비전은 구성원의 지행격차와 회사에 대한 냉소주의만 키운다. 이런 비전은 홈페이지의 한 부분만을 화려하게 장식한 가짜 비전이다. 이런 비전을 외우도록 강요하는 것은 구성원을 신기루 오아시스 물을 마시게 강요하는 것이다. 일단 마시면 구성원들은 더 심한 갈증에 시달린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플라스틱 비전이다. 이런 비전에 한 번 노출된 종업원들은 비전 이야기만 나오면 몸서리친다.
이런 회사가 일터를 제대로 민주화 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진정한 목적에 기반한 비전이다. 요즈음 대부분의 글로벌 초우량기업에서는 기존의 잘못된 오해에 빠지지 않기 위해 비전이란 말을 자신들의 용어 사전에서 삭제하기도 한다. 그냥 회사가 생태계에서 존재우위를 구사할 수 있는 목적과 사명과 의사결정의 가이드라인으로 가치만을 강조한다. 지금과 같은 L자 경기에서 목표에 멋진 옷을 입혀서 비전이라고 강요할 때 어떤 쓰라린 결과를 경험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L자 경기에서 성장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허황된 비전이 아니라 참여자들의 유기적 성장을 지향한다.
성숙하게 민주화된 일터를 글로벌 초우량 기업에서는 전문가들의 놀이터라고 명명한다. 우리의 기업들도 디지털 시대의 파고를 기회로 만들려면 일터의 민주화를 위한 전문가의 놀이터 설계방식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초연결 디지털에 맞춰 공진화되는 플랫폼을 위해 경영진은 전통적인 총지휘부를 해체하고 노조는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일터가 민주화되지 못한 기업들에게 디지털 혁명은 기회라기보다는 그냥 회사를 휩쓸어 무자비하게 무너트리는 쓰나미일 뿐이다. 다가올 디지털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뒷 자리에는 총지휘부도 노조의 기득권의 깃발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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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일터의 민주화를 위한 전문가의 놀이터 설계 원리를 배우려면 <황금수도꼭지: 목적경영이 이끌어낸 기적(샘앤파커스 2019)>을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