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7-11 15:10
[N.Learning] 지금은 애도해야 할 시간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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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애도해야 할 시간
도덕적 훌리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을 놓고 이념논쟁이 도를 넘고 있다.
한 인간이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은 자신의 과오를 자신의 생명과 바꿔 용서를 구한 것이다. 앞으로는 자신에게 덮친 불행을 다른 사람들이 다시 겪지 않도록 이 과오에 대한 제대로 된 인정을 통해 자신을 새 사람으로의 부활시켜달라는 유지일 것이다.
아무리 현란한 이원론 개념의 조합을 수없이 많이 동원한다고 해도 인간을 이원론적 개념 범주에 의해서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스스로가 앞장서 편견의 옹호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차용한 현란한 이원론적 개념으로 자신이 나서서 그 사람의 손과 발이 절단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설사 신이라해도 온전하게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 사람의 시신을 파내 다시 손과 발을 잘라 영혼을 두번 죽이는 일이다.
운동장의 관객이 되어 선수를 비난하는 것과 자신이 선수가 되어서 뛸 때 남들의 비난을 감수하는 것은 많이 다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선수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삼인칭 관객이자 훌리건으로 수 없이 많은 이원론적 개념을 동원해서 비난하고 재단하는데 몰입한다. 하지만 자신이 훌리건이 아니라 일인칭 선수가 되었을 때도 같은 비난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고사하고 이 삼인칭 훌리건들이 오히려 도덕의 수준을 높여가며 도덕 교과서에 인용되는 비난들로 자신에게 돌을 던진다면 과연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처지가 되면 누구라도 자살을 생각할 것이다.
지금은 죽음에 대해 충분히 애도할 시간이다.
이 애도의 시간이 끝나면 이 분의 죽음과 공과에 대해 차분하게 논의할 시간이 올 것이다. 이분과 같은 불행한 죽음의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하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부활에 대해서 논하는 시점이 있을 것이다. 이분 때문에 상처를 입은 분들에 대한 위로와 용서를 구하는 것도 이분이 제대로 영면하였을 때 가능한 일이다.
제대로 된 비판과 용서와 화해는 제대로 된 애도가 끝난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정치가들이나 이 정치가들의 추종자들이 이분의 죽음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사적으로 이용한다는 비난을 듣지 않기를 바란다. 죽은 사람을 무덤에서 꺼내 다시 죽이는 천륜을 져버리는 일을 스스로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애도의 시점을 놓쳐가며 비난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이들 중 자신의 죄를 죽음과 맞바꿔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지금은 그냥 애도할 시간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