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8-18 20:38
[N.Learning]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의 비극 밧세바 신드롬 (Bathsheba Syndrome)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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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의 비극
밧세바 신드롬 (Bathsheba Syndrome)
밧세바는 이스라엘 둘 째 왕 다윗이 자신의 용맹스런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통하고 이를 숨기기 위해 우리아를 전쟁터로 보내 죽게 만든 스켄들의 주인공이다. 이 죄로 인해 다윗은 자신의 아들과도 전쟁을 치뤄야 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통치자는 한 왕국에서 누구보다 막강한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철권통치하에서 조금이라도 이득을 취하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들은 통치자에게 이야기할 때 그가 듣기 좋아하는 스토리로 반드시 각색하고 프래이밍해서 전달하는 소통의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또한 통치자가 하는 말에 대해서 토를 달면 안 되고 최고의 찬사로 긍정적 피드백만을 연출해야 한다. 항상 최고의 찬사로 긍정적 피드백만을 받게 되면 통치자는 자신이 하는 말은 항상 신의 말씀과 같다는 오만(hubris)에 이르게 된다. 일단 이런 오만에 갇히는 순간 통치자는 귀머거리로 전락한다. 신은 오만한 인간을 귀머거리로 만들어 반드시 응징한다.
귀머거리 장애는 말은 할 수 있지만 듣지를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음성이 제대로 표현되고 있는지를 확인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생긴다. 귀머거리 장애는 말을 못하는 것에서 생긴 장애가 아니라 자신이 말하는 것을 제대로 듣었는지를 확인해줄 수 있는 피드백이 불가능해서 생긴 장애이다. 귀머거리 장애를 가진 분들은 자신의 말을 듣지를 못하기 때문에 상식적인 귀를 가진 사람들은 이분들의 발음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다. 귀머거리 장애는 남의 말을 듣지 못하는 장애가 아니라 나의 말을 듣을 수 없는 장애에서 시작된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하는 말들에 대해 부정적 피드백이 끊어지면 어느 시점에서는 이 사람은 귀머거리의 장애를 갖게 만든다. 자신이 하는 말은 항상 올바르다고 믿고 있으므로 본능적으로 듣기보다는 주로 말을 하는데 더 시간을 쏟게 된고 이런 상황이 더 심화되면 듣는 귀의 기능이 점점 퇴화되어 귀머거리가 된다.
귀머거리 임금님 우화에 나오는 임금님은 겉보기에는 당나귀 귀처럼 크지만 귀머거리여서 듣지 못한다는 뒷담화가 무성하게 난무하나 이 진실을 누구도 전달하기 싫어한다. 누가 고양이에게 방울을 달 것인가? 임금님은 귀머거리라는 불편한 진실은 왕국 밖에서 임금님의 권력과 전혀 상관이 없는 힘없는 백성들 사이에서만 뒷담화로 무성하게 돌고 돈다. 조선의 가장 위대한 대왕 세종은 귀머거리가 되어가는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평복을 하고 백성들의 고초를 듣는 잠행을 즐겼다. 세종이 조선의 모든 왕을 제치고 탁월성을 성취할 수 있었던 비결은 왕은 필연적으로 귀머거리가 되는 운명에 대한 깨달음 때문이다. 이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만의 조치와 훈련 방식을 마련해 이 운명에서 벗어났다.
밧세바 신드롬은 귀머거리 신드롬이다. 다윗이 부하들이나 신화들의 칭송에 귀가 먹어 자신이 마치 하나님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는 분이고 이 분처럼 자신도 세상을 자기 맘대로 창조해낼 수 있다는 오만에 취했다. 오만은 인간을 귀머거리 장애인을 만들어 보복한다. 귀머거리 장애는 피드백 루프가 끊어졌을 때 생기는 장애다.
권력은 항상 피드백 루프를 왜곡시켜 장본인을 귀머거리로 만든다. 심지어 한 회사의 CEO만 되도 모든 사람이 합심해서 이 CEO를 귀머거리로 만드는 일에 총력을 다한다. 5-6년이 되어도 온전한 귀를 지킨 CEO라면 이 CEO는 성인 반열에 올라야 한다.
한 때 역사의 총아로 등장했다가 역사의 패전국들으로 전락한 국가들은 다 귀머거리 장애인이다. 폭스 뉴스만 보는 트럼프도 귀머거리이고 역사의 과오에 귀를 닫고 사는 아베도 귀머거리다. 이들은 피드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쓰러질 아픈 역사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밧세바 신드롬에 대해 탈무드는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입보다 귀를 더 높은 위치에 두어라>
-탈무드-
탈무드에서 귀를 높은 곳에 두라는 의미는 자신의 존재이유에 대한 각성을 잊지 말고 이 소리가 명하는 바대로 사는 삶을 살라는 조언이다. 아무리 세상과의 피드백 루프가 제대로 연결되어 있어도 자신 삶의 이유인 목적이 들려주는 영혼의 종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만큼 큰 장애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진성리더는 어떤 이유로 사람들과의 피드백이 끊어지는 절대절명의 상황에 왔어도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임을 통해 끊어진 피드백의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한 사람들이다.
결국 다윗이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순간 자신을 하나님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모든 피드백 루프를 차단했던 것처럼 모든 것의 발단은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함에서 시작한다. 내면의 목소리 조차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남들이 하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 만큼 힘들다.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만이 피드백 루프가 끊어진 세상에서도 제대로된 피드백 루프를 복원하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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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에는 밧세바 그림이 유독많다. 첫 그림은 다윗의 연서를 전하는 그림 둘째 그림은 다윗이 옥상에 훔쳐본 목욕하는 밧세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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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딘 러드윅(Dean C. Ludwig)과 클린턴 롱네커(Clinton O. Longenecker)는 1993년 Journal of Business Ethics에서 밧세바 신드롬이라는 논문을 실었다. 이들도 밧세바 신드롬을 무소불위의 권력이 어떻게 정보에 대한 비대칭성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통해 소통의 피드백을 왜곡시키는지를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