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8-18 20:44
[N.Learning] 리더의 주체성을 위한 조언 <네 자신을 알라>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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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주체성을 위한 조언
<네 자신을 알라>
<네 자신을 알라>라는 말의 뜻은 그 맥락에 따라 상당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 델피 신전에 새겨진 8번째 속담으로 <네 자신을 알라>는 다른 속담들과 같이 세겨진 맥락으로 보면 아마도 <네 분수를 알고 제대로 처신해라>라는 의미로 들린다. 요즈음 속된 말로 일컬어지는 현타 혹은 겸손을 강조하는 이야기로 들을 수 있지만 그 당시 한 마디로 꼰데가 하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그 당시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했던 <네 자신을 알라>는 이 속담과 의미가 다르다. 자신의 주체성을 겸손이라는 미덕으로 억누르는 삶에 대한 주문이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에게 남이 설정한 규범적 이야기에 휘둘려 자신을 객체화 시키지 말고 네 자신의 주체성을 회복하라는 충고한다.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에게 전수하고 싶었던 것은 어른들이 항상 강조하듯이 <네 분수를 알고 처신하라>라는 기존의 규범에 순응해서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네 자신이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라>라는 주체성을 회복하라는 언명이다.
소크라테스의 제대로 된 주체성에 대한 질문은 데카르트의 고키토를 거쳐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실존철학자들과 윤리적 주체를 설파한 푸코에 의해 계승되고 지금 진성리더십에서 강조하는 세 가지 원리 자기이해, 자기규제, 자기긍휼로 정착되었다.
진성리더들은 주체성의 시작을 자신에 대한 긍휼에서 시작한다. 자신이 아픔을 가진 존재임에 대한 이해가 자신을 주체적인 존재로 세우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긍휼은 특히 자신의 아픔 즉 자신의 성장통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자신의 아픔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용기를 가진다. 자신을 독립적 존재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주체로 내세울 방법은 없다. 그리스의 속담에서 주장했듯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항상 자신을 자신의 분수에 갇혀 자신을 다른 주인공의 조연배우나 노예로 세우는 일에 익숙해진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주체화 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객체화하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진성리더들은 자기긍휼로 자신을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자 주체로 내세우려는 용기를 얻는다. 진성리더들은 주인공이 됨을 자신의 삶에 대한 스토리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작가가 됨을 통해서 구현한다.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중심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주인공으로서의 스토리를 자신이 작가가 되어서 만들어 간다. 자신이 작가가 되고 주인공이 되는 스토리가 만들어지면 이것이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 작용하고 이 거울을 통해 자기성찰과 자기이해에 도달한다.
진성리더의 주체성은 자기규율로 완성된다. 자신의 존재이유를 각성하는 것과 이것을 실제로 실현시키는 것은 다른 일이다. 진성리더의 자기규제는 자신의 스토리를 자신의 삶으로 내재화 시켜 삶속에서 실현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스토리는 자신과의 언약인데 이 언약을 실현시켜 이 언약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을 임무로 생각한다. 자신이 약속한 진실을 실현시켜 진실을 직면함으로서 느끼는 완벽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은 자기규제라는 근육 때문이다.
진성리더는 자기긍휼, 자기이해, 자기규율을 자신의 주체성을 완전하게 회복하면 이것을 다른 사람과 같이 나누는 작업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주체성을 회복한 온전한 인간으로 되어감을 돕는다. 진성리더는 더 큰 공동의 목적을 세워 자아실현이라는 영토를 뛰어넘어 타아실현을 돕는 일을 한다. 진성리더는 이런 주체성의 회복을 통해 세상에 더 큰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더 큰 변화를 통해 진실을 증명한다.
진성리더는 자신에 대한 주체성과 변화를 통해 진실을 증거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진성리더의 원조로 우리에게 전수해준 리더십의 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