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9-26 07:25
[N.Learning] 진리(眞理)와 진실(眞實) 어떻게 다른가?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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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眞理)와 진실(眞實)
어떻게 다른가?
진리(眞理: Truth)는 어떤 주장이나 명제의 옭고 그름에 관한 객관적 잣대가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옳은 것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옳은 것이고 틀린 것은 모든 사람에게 그릇된 것임을 입증할 수 있을 때 그 주장이나 명제는 진리이다. 보편적 자연과학적 진리에 의해서 판단되는 영역이 여기에 속한다. 진리에 대해서 회의하는 사람이 있을 때 자신이 수집한 사실에 근거해서 이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논증하면 이 진리는 기각된다. 반대로 사실에 근거해서 진리가 반복적으로 논증(replication)되면 진리는 진리의 지위를 유지한다.
문제는 이런 자연과학적 논리에 익숙해져 진리와 진실을 혼동할 때이다. 이런 사람들은 사실만을 이야기하면 다 진실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안타갑지만 위험한 주장이다.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짜뉴스가 전염된다.
내 눈으로 직접보고 확인하고 손으로 느끼고 맛본 사실도 따지고 보면 객관적 사실이라기보다는 내 정신모형이라는 머리 속의 지도에 의해서 선택되고 채색되고 각색된 사실이다. 내가 주장한 사실이 다른 사람들이 입장에서보면 전혀 다른 사실로 해석될 수 있다. 우리가 주장하는 사실은 모두 우리의 정신모형이라는 색안경에 의해서 오염된 사실일 뿐이다. 내가 직접 읽고 보고 느끼고 냄새를 맡았기 때문에 다 진실이라는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눈에 나는 편견에 가득찬 사람일뿐이다. 나는 가짜뉴스를 전파하는 숙주로 전락한다.
보편적으로 옳은 것을 발혀내는 진리(眞理)와는 달리 인문사회과학은 진실(眞實: Veracity)을 추구한다. 진실(眞實)은 시간과 공간을 떠나 사실인 것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장이나 약속이 시대와 공간의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의미가 있다면 이 의미를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지에 관련한다. 의미는 목적에서 나오고 목적은 미래에 거하기 때문에 진실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실현의 약속이다. 약속은 실현되는 시간이 요구된다. 위대한 진실은 현재를 통해 과거의 약속이 정산되는 형태지만 대부분 진실은 미래에 실현시킬 약속이다. 미래에 어떤 더 나은 사회나 더 나은 상태를 만들 것이라는 약속을 했는데 실제로 이 약속을 지켰다면 자신의 주장을 진실로 실현시킨 사람이다.
자연과학과 달리 사회과학에서의 진실의 문제는 객관적 사실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authenticity)에서 시작된다.
진정성은 사실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진정성의 기준은 보편적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는 자신의 내면과 자신이 밖으로 표출한 것 사이에 어느 정도 괴리가 있는지의 문제이다. 자신이 내면적으로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자신이 밖으로 드러내 실천하고 있는 삶자체도 이 스토리에 근거하고 있다면 이 사람은 진정성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된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기업은 비전, 미션, 가치를 기반으로 한 자신의 내면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이런 스토리에 기반해 일관되게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면 이 회사는 진정성이 있는 회사이다. 회사의 비전, 미션, 가치가 자신들의 사업을 하는 방식에는 전혀 적용이 안되고 고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플래스틱 비전, 미션이라면 이런 회사는 진정성이 없는 회사이다.
중요한 것은 이 진정성이 그대로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진정성에서 주장된 내용을 미래에 현실로 구현시켜 이것을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게 만들 때 이 진정성 있는 주장은 진실이 된다. 아무리 진정성 있는 삶에 대해서 약속했다하더라도 이것을 자신의 삶의 장면에서 구현하지 못했다면 약속을 한 사람에 불과할 뿐이지 진실(眞實)을 구현한 사람은 아니다. 인문 사회과학에서 진실이란 진정성에서 천명된 자신의 존재이유로 설정한 목적을 자신 조직 사회가 실제 구현해서 사실로 재현시켰는지에 의해서 결정된다.
자유 평등 윤리에 관한 몇 가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문 사회과학적 진리는 진화하게 마련이다. 시대에 맞춰 진화하지 못한 진실는 결국 고사되어 사라진다. 진실은 과거와 미래의 부활의 문제이다. 부활되지 못한 기억과 미래는 진실을 구성할 수 없다.
20세기의 세상은 환경변화가 미미해서 과거의 결과를 종합하면 미래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따라서 문제의 관점도 옳고 그름의 관점인 자연과학적 사실성이 주도하고 있었다. 회사의 비전도 맞고 틀린 비전을 이야기 할 정도로 경영환경이 예측가능한 시대였다. 하지만 21세기처럼 변화가 상수가 된 세상에서는 과거의 정답이 미래의 정답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이다. 누구든 설득력이 있는 미래에 대한 스토리로 현실을 구성하고 그에 대한 믿음을 사람들에게 설파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그 스토리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기반을 얻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화폐나 핸드폰 등을 만든 사람은 진리의 사람이 아니라 진실을 실현시킨 진실의 사람이다.
회사의 비전도 맞고 틀린 비전의 문제라기 보다는 구성원들이 이런 비전에 얼마나 강한 믿음을 공유하고 이것을 사업하는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는지의 진정성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이런 구성주의 세상에서는 객관적 사실의 잣대로 세상을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은 점점 축소되고 자신의 내면에서 흘러나온 스토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감동을 줄 수 있는 믿음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즉 진정성이 삶의 기준이 되고 있다. 또한 이 진정성을 실제 삶이나 비즈니스에서 실현시킨 사람이 진실의 대변자로 등장하는 시대이다.
진정성은 기업이나 개인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21세기의 시대정신이다.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누구든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진정성 있는 언명에서 시작해야 한다. 진정성은 진리가 아닌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체험하는 진실의 전제조건이다. 변화가 상수가 되어 자연과학적 진리와 인문과학적 진실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21세기 초연결 디지털 시대에는 진정성이 없는 개인이나 기업이 시대적 진실을 구현하는 초일류가 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더 힘들 것이다.
진실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자신의 일인칭 약속을 실현시켜 다른 사람들이 이 실현된 현실에서 더 큰 행복을 체험할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이다. 공진화하는 사회에 대한 약속을 지켜 이 약속을 일인칭 고유명사적 약속에서 보통명사로 만드는 사람이 진실의 사람이다.
진리는 모르는 보편적인 사실을 밝혀내서 암흑과 같은 세상에 누구에게나 빛을 주는 일이라면 진실은 미래에 대한 약속을 실현시켜 세상이 고인물이 되어 썪지 않게 만드는 소금을 남기는 일이다. 죽음의 순간 미래를 위해 소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유산을 남길 수 있는 사람들이 진실의 사람이다. 예수님을 비롯해 세상을 변화시킨 모든 사람들은 진리을 넘어 진실을 실현시킨 사람들이었다. 지금처럼 변화가 상수가 된 초연결 디지털 시대에는 진실에 대한 약속과 이 약속에 대한 실현을 중시하는 구성주의가 진실의 원리이다. 구성주의 시대에는 미래에 대한 변화의 약속과 이 약속을 실현시키는 진실의 사람들이 리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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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실한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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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의 터전을 공유하고 있는 나와 구성원들에게 미래에 나의 차별적 존재이유를 실현시키겠다는 약속을 가지고 있는가? 이 약속의 내용은 무엇인가? 지금 사람들은 내 약속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믿음이 떨어진다면 믿음을 어떻게 복원해 약속을 실현시키기 위한 자원을 동원할 것인가? 이전에 남발한 부도수표는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나는 죽음을 맞이해 이 약속을 실현시켜 유산으로 남길 수 있는가? 지금 내가하는 일은 이 약속과 얼마나 정렬되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