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에서 먹다라는 말만큼 다양하게 쓰이는 용어는 없다. 먹다가 가장 보편적으로 쓰일 때는 음식을 "먹는"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음식물을 섭취하는 먹다를 넘어서 귀를 "먹다," 욕을 "먹다," 마음을 "먹다"로까지 <먹다>의 용례는 무궁무진하게 확장된다. 심지어는 성적으로 상대를 정복한다는 의미로까지 쓰여지기도 했다.

음식을 섭취하는 것을 넘어서 심지어는 마음까지 먹어야 하는 것일까?

아마도 먹다는 인간에게 필요한 일인칭 체험을 제공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일단 생존을 위해서 기본적으로 음식을 먹어야 한다. 내가 먹는 일인칭 행위는 그대로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해서 생존에 대한 체험을 직접적이고 적나라하게 제공한다. 먹는 행위가 체험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통한 것이 아닌 자신의 몸을 통해서 일인칭으로 이뤄져야 한다. 자신의 체험을 상대가 이해하지 못할 때 상대에게 똥인지 된장인지를 직접 먹어보라고 권면하기도 한다.

제대로 먹는 행위를 통해서 사람들은 생존을 넘어서 성장체험을 한다. 좋은 음식을 오래동안 제대로 씹어가며 영양을 섭취하면 몸이 자라는 성장체험을 하는 것처럼 마음의 제대로 된 양식을 먹을 수 있다면 정신의 성장 체험을 한다. 음식의 성장체험은 몸을 통해 일어나지만 마음의 성장체험은 정신모형이라는 기제를 통해 일어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세상을 읽고 해석하는 내면의 지도인 정신모형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정신모형이 붕괴되는 경험을 맨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지식을 단순 암기해서 습득하는 것과 먹는 체험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지식을 암기해서 습득하는 행위는 자신의 내면의 지도인 정신모형을 바꾸지 못한다. 정신모형의 지도를 바꿀 수 있는 붓은 오로지 자신의 몸과 정신으로 한 일인칭 체험 뿐이다. 요즈음 기업교육에서도 대부분의 인지적 지식을 습득하는 교육은 구글로 넘어가고 체험학습에 집중하고 있다. 공부한다는 것의 본질은 자신의 정신모형을 바꿀 수 있는 자신의 마음을 통한 체험뿐이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음식을 직접 먹고 몸이 소화를 담당하지만 좋은 마음의 양식을 먹는다고 다 소화가 되어 정신모형을 키우는 것은 아니다. 소화가 되는 성장체험을 위해서는 마음도 단단하게 먹는 행위가 요구된다. 마음의 양식을 먹고 이 먹은 마음을 단단하게 다시 먹어서 소화시키는 행위에 성공을 할 때 마음에 제공된 양식은 체험이라는 양분으로 전환되고 체험으로 전환되는 한에서 정신모형이 성장한다. 마음을 먹는 행위는 결국 정신적 양식을 의식적으로 씹고 소화시켜 체험으로 전환시키는 활동이다.

음식물을 직접 먹는 행위는 몸의 성장에 대한 성장체험을 가능하게 하지만 마음의 양식을 먹고 소화시켜 정신모형을 성장시키고 확장시키는 성장체험은 번성을 가져다 준다. 남이 대신해서 먹는 행위 내 배고품을 해결해주지 못하듯이 남이 만들어 놓은 지식을 마음으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그냥 삼키는 행위가 성장체험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