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2-18 06:58
[N.Learning] 공수처 논란을 지켜보며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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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논란을 지켜보며
공수처에 대한 이슈로 추장관과 윤석열 총장간 기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이들의 논쟁을 지켜보면서 이들이 잘못된 목적함수를 설정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공수처를 설치하는 목적이 윤석열을 1호 대상으로 구속 시키기 위함일까? 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대항했던 검사들을 굴복시키기 위함일까? 현 정권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함일까?
다 아닐 것이다.
공수처의 목적은 부패의 온상인 검사를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부정부패에 휘말리는 일이 없도록 국가를 좀 더 투명하고 깨끗한 운동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글로벌 경제력은 10위권인 반면 국제투명성기구(TI, 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 Corruption Perceptions Index)에서 우리나라의 부패정도는 경고를 넘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2019년 발표에서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59점, 180개국 중 39위 하위권이다. 부패에 의해 발생하는 국가의 거래비용문제를 시급하게 해소하지 못한다면 존경받는 세계시민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것은 고사하고 10위권 경제력을 유지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
목적에 대한 안목을 놓치니 수단에 불과했던 공수처 설치와 공수처 부결이 정치적 목적으로 전락했고 지금은 대통령까지 합세해서 형식논리로 상대를 제압해가며 진영논리의 싸움판을 키우는 형국이다.
이들이 제기하는 진영 논리의 전제를 분석해보면 여나 야나 고위공직자들은 공수처의 수사대상에 걸린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런 전제는 우리나라 정치가나 공직자의 현 수준을 드러낸다.
공수처의 수사대상에 걸릴 정도의 사적 이익을 편취하는 비윤리적 검사나 공직자라면 이미 고위공직자 대상에서 걸러졌어야 했다. 공수처는 드러난 범죄행위에 대한 법적 제재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고위 공직자라면 이런 널널한 법적 범주보다 더 좁고 엄격한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공직을 수행했어야 한다. 공수처 수사대상 레이더에 걸렸다는 것은 과거의 마인드 셋을 버리지 못한 일부 검사들이나 평소 공직윤리와는 상관없이 공직을 수행한 사람인 경우만 가능한 일이다. 공직자의 사명과 공직자의 공직 윤리로만 무장하고 제 직분의 일을 하고 있다면 공수처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공수처의 목적은 대상자의 처벌이 아니라 이런 대상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공수처의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자체 감사법이라든지 특검이 검사나 고위 공직자에게 제대로 자정작용을 할 수 있는 장치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은 어린아이가 보아도 엄현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가장 문제가 되는 검찰에게 자정작용을 맡긴다는 것은 더욱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이다. 수십년간 권력이 떠 먹여주는 먹이를 받아만 먹고 자란 검찰에게 오늘부터는 너를 성숙한 어른이라고 불러줄테니 네가 알아서 식사를 하라고 명령하는 형국이다. 이런 현실을 염두에 두었을 때 공수처는 제도적 완성도가 떨어져도 일단 설치해서 공수처의 목적을 실현시키는 과정을 통해 더 현실적인 제도로 진화시키는 것이 맞다고 본다.
공수처가 옥상옥이 되어서 견제를 할 수 없는 괴물이라는 논리도 있는데 지금처럼 초연결사회가 되어 소통이 민주화되어 모든 국민이 신문기자이고 PD가 되어 감시하고 있는 세상에 옥상옥이라는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민주주의가 지금 어떻게 진화해가고 있는 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자기를 방호하는 진영논리일 뿐이다. 설사 정치적 욕심을 버리지 못해 옥상옥으로 사용한다면 상대 당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빌미일 뿐이다.
한 국가의 대통령도 촛불이라는 민주주의에 의해서 끌어내린 디지털 직접 민주주의 경험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옥상옥 주장은 마치 무서운 국가전체주의 부활을 주창하는 것같아서 기괴하게 들린다.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초연결시대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더 이상 국가운영을 고위공직자들이나 대통령이나 정치선수들에게 맡겨놓고 시시콜콜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단순한 삼인칭 관객은 아니다.
디지털 민주주의 시대 국민을 경기장의 관객이자 꼭뚜각시로 혼돈하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