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과 학생들에게 조직행동이나 리더십을 가르치면서 지속적으로 한 커리어 조언이 있다. 적어도 35세까지는 과일나무를 길러내기 위해 씨를 발아시키고, 건강한 나무로 길러내는 것이 커리어 우먼이 되기 위해 집중해야 할 일이다. 이 시기에는 남들과 비교하거나 자질구레한 성과에 일희일비해가며 매달리기보다는 자신의 꽃을 충분히 피우기 위한 자신만의 고유한 철학과 역량의 뿌리, 전문성의 줄기, 영향력의 풍성한 잎사귀를 키우는 일에 더 집중하라고 이야기했다. 설사 35세 이전에 과도하게 얻어지는 결과가 있어도 우쭐해지지 말고 더욱 겸허한 마음으로 이것을 자신의 과일나무 묘목에 거름으로 재투자해서 나무를 더 튼튼하게 키우는 일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우리 나이로 35까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해왔다면 이 운명이 자신만의 풍성한 꽃을 피울 수 있는지는 35세 이후에 스스로 결정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30세 중반이 넘어야 자신이 키운 나무가 충분히 자라 자신만의 만개한 꽃을 피울 수 있는 지를 가름할 수 있는 나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꽃피고 열매를 거두기 위해 충분히 숙성의 시간을 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굳이 남들과 비교하고 싶은 욕망을 벗어날 수 없다면 비교의 시기를 35세 이후로 잡으라고 조언했다.

필명 재키로 활동하는 유재경 박사의 <서른 다섯 출근하기 싫어졌습니다>을 꼼꼼히 읽어보면서 내가 학생들에게 했던 조언은 성(Sex, Gender)이라는 맥락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의 여성들에게는 너무 이상적 조언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 조언과는 달리 책은 한국 여성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다음처럼 설명했다.

[서른다섯쯤 되면 ‘그만둘까 버텨볼까’의 늪에 빠진다. 이직할까, 다른 직업을 알아볼까, 수도 없이 고민한다. 지금까지 영혼 갈아넣으며 열심히 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보상이 아니라 허무함과 번아웃이다. 어느 순간부터 빠릿하게 실무를 해내는 능력만으로는 부족해진다.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고, 그로 인해 무기력해진다. 나만의 고민이 아니다. 서른 중반을 지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여성나이 35세를 내가 기대했던 꽃이 피기 시작하는 시기가 아니라 꽃이 질 뿐 아니라 나무로서 폐기처분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할 시기로 설명한 것이다.

책을 통해 커리어를 생각하고 열심히 살고 있는 여성들의 현실적 고민과 리더십 맥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책은 저자가 직접 겪었던 고민을 문제로 잘 묘사하고 이것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들을 잘 엮어가며 과학적이고 현실적 조언을 제공하고 있었다. 또한 책의 지향성도 남성을 흉내내가며 여왕벌로 군림하려는 대문자 여성들에게 독선적 패미니즘의 감옥을 탈출하는 방법을 제안할 뿐 아니라 탈출해서 지배성을 중심가치로 알고 사는 대문자 남성들과 어떻게 접속해서 여성되기를 완성해야 하는지를 제안하고 있다.

여성되기란 편협한 대문자 여성의 감옥에서 탈출해서 대문자 남성을 탈출한 남성들과 연대해서 능력있고 재능 있는 소수가 리더로 살 수 있는 새로운 운동장을 만드는 일에 매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되기를 완성한 여성들은 남성들과의 십자군 전쟁을 통해 정치적 논리로 남성들을 제압해 여성성을 쟁취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벗어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소수에 대한 긍휼감과 재능 있는 소수와의 연대를 통해 조직이 원하는 결과를 보여줌에 의해서 이 결과를 지룃대로 삼아 자신들의 선한 의도를 실현시키는 급진적 거북이들이다.

유재경 박사의 이 책은 남성들과 투쟁해서 쟁취하는 여성성이 아니라 진정한 여성되기에 대한 현실적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여성되기를 통해 한 조직의 파트너이자 리더로 성장하려는 열망이 있는 여성들 뿐 아니라 이들과 협업의 파트너십을 구사해야 할 남성들도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특히 책 말미에 리더가 되기 위해 챙겨야 할 건강에 관해서 언급하는 부분을 보고 책이 정말 현실적 조언을 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변수이지만 같은 능력과 재능을 가진 사람이 결국 50이 넘어서도 리더로서 설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유일한 변수는 집중력의 원천인 건강이기 때문이다.

조직을 지배하는 남성들을 흉내 내가며 후배 여성들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여왕벌 여성들이 아니라 진정한 여성되기를 완성하는 여성리더들이 많이 등장해서 성 다양성이 진정으로 구현되는 사회를 열망해본다. 성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대한민국이 된다면 내가 학생들에게 35세까지는 나무를 키우는 시기이지 열매를 거두는 것에 연연해서는 안되는 시기가 아니라는 조언이 여성이나 남성에게 차별적이지 않은 조언으로 받아 들여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35세 언저리에서 고민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조언이 생겼다. 35세 여성이 굳이 조직에서 리더가 되지 못해도 버틸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고 <무조건 버텨라>라고 조언하고 싶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여성이 버티는 것자체만이라도 성 다양성이 구현된 사회를 위해 크게 기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버티는 것만으로 유리천창을 깨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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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일전에 출간된 <여성은 전락적 파트너인가>에서 우리 연구진은 페미니즘이란 용어가 주는 정치성 때문에 이 용어보다는 "여성되기"라는 용어의 사용을 제안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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