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비행기를 타야 뉴욕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이처럼 객관적 사실이나 지식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이다. 나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뉴욕까지 가는 방법에 대한 대한 객관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나의 비행기 공포증이다. 이런 공포증에 제압 당해 나는 한 번도 뉴욕에 가본 적이 없다. 굳이 이런 죽음의 공포를 감수하고 뉴욕에 꼭 가야만 할 이유도 없다. 내가 공포를 극복하고 비행기를 탔다면 믿음이 아니라 신념이 작동한 것이다.

믿음은 삼인칭 객관자의 관점이다. 누구나 비행기를 타야 뉴욕에 갈 수 있다는 상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다. 하지만 비행기 공포증을 가진 일인칭인 내가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가는 것은 신념이 작동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실제 믿음의 아버지라고 추앙하는 이유는 믿음을 넘어 신념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아들 이사악을 번제의 재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 실제로 바친 행동은 믿음을 넘어선 신념의 행동이다. 대부분의 크리스찬들은 하나님이 아들을 바치라고 한 이유에 대한 믿음은 가지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일인칭이 되어 똑같은 명령을 받는다면 아들을 번제의 재물로 바치지는 못한다. 하나님에 대한 삼인칭 믿음은 있지만 이것을 자신의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 요구되는 일인칭 신념은 없다.

예수께서 치유의 기적을 행하며 항상 강조했던 말이 "너의 믿음"이다.

열두 해 동안 하혈이 멈추지 않았던 여인을 고쳐주시며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태 9,22)라고 선언한다. 여리고에서 눈 먼 이에게 빛을 되찾아주었을 때도(마가 10,52), 갈릴리 인근에서 나병 환자를 낫게 한 뒤에도 (루가 17,19)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선포한다.

예수에 대한 삼인칭 믿음이 여인과 맹인과 나병환자를 고친 것이 아니라 여인과 나병환자가 "너 자신"에 대한 믿음 즉 신념이 너희를 고쳤다고 선포한다.

믿음은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 대해 객관적이고 당연하고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지식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사실들을 어떤 이유에서 자신만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사회생활은 불가능해진다. 이런 삼인칭으로 객관적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믿음과 달리 신념은 이 믿음의 내용을 일인칭으로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는 믿음은 넘치지만 신념은 고갈되는 현상에서 생긴다.

세상에 대해 삼인칭 믿음을 가진 사람은 넘치지만 이것을 일인칭화 해서 자신에게 적용하는 신념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불확실성 때문이다. 내가 비행기를 못 타는 이유는 비행기 공포증 때문이고 아브라함과 달리 내가 내 아들을 번제의 재물로 못 바치는 이유는 아들이 실제로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과 공포 때문이다.

믿음도 신념 만큼 불안과 공포를 이기게 만든다. 하지만 믿음은 상식이나 객관적 지식으로 즉 다른 사람들도 다 믿는 것으로 공포를 물리치게 만드는 반면 신념은 목적에 대한 나의 일인칭 믿음을 복원해서 나에게 닥칠 나의 현실적 공포를 이기게 해준다. 내가 비행기를 타는 것은 여전히 공포스럽지만 내가 목숨을 바쳐서 뉴욕에 가야만 할 간절한 이유가 있을 때 이 공포는 극복된다. 아브라함처럼 내 아들을 희생해서라도 달성해야 할 더 신앙적 이유에 대한 큰 깨달음이 있다면 당연히 아들을 바칠 것이다.

내 목숨이나 내 아들을 희생하는 공포를 이기고 달성해야 할 더 큰 삶에 대한 이유를 목적(purpose)이라고 한다. 자신 삶의 목적을 발견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일인칭으로 나서는 사람들만 신념으로 행동하여 자신과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 된다.

내가 살았던 베이비 붐 세대는 자기계발서와는 거리가 먼 세대다. 문사철이 대세였던 시대에 대한민국 베이비 붐 세대가 유일하게 읽었던 자기 계발서가 있었다. 클로드 브리스톨(Claude M. Bristol)의 The Magic of Believing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1948년에 초반이 발매된 후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수 억명의 베이비 붐 독자를 열광시켰던 브리스톨도 책 제목만을 보면 믿음(Belief)와 신념(Faith)를 구별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원저의 책 제목은 <믿음의 마력(The Magic of Believing)>이라고 했어도 책 내용은 이 삼인칭 믿음을 일인칭 신념으로 바꾸는 기술들에게 대해서 적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그냥 신념이 아닌 믿음만 강조하는 책이었다면 당연히 독자들에게 그렇게 많이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던 70년대 이 책의 번역된 제목은 <믿음의 마력>이 아니라 <신념의 마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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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들도 겉도는 믿음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회사와 신념을 조직에 적용해서 번역한 신조(Credo)를 가진 회사로 구별된다. 어떤 회사가 신조의 회사인지는 홈페이지를 보면 된다. 홈페이지에는 고객, 종업원, 사회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지만 실제 안에서 경영하는 방식은 이런 믿음과는 다른 방식으로 하고 있다면 무늬만 신조인 회사이다. 홈페이지에 광고한 회사의 IR만 "믿고" 이런 회사에 투자한다면 한 마디로 낚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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