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에 처음 화양연화를 보았을 때 헐리우드 식 One Night Stand 영화에 식상해 있다가 단비를 넘어 소낙비를 흠뻑 맞는 신선한 체험을 했다. 절제된 사랑의 끝 간 곳을 체험하게 하는 영화라는 생각을 했었다.

화양연화는 "생의 짧지만 찬란하게 빛났던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왕가위가 감독하고 양조위 장만옥이 주연으로 출연했다. 화양연가가 20년만에 다시 극장가에 상연되고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았다. 지금 20년 후에 같은 영화를 보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호기심으로 극장으로 향했다.

20년 전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이란 이뤄질 수 없는 서로 빗나가는 사랑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같다.

20년이 지난 후 다시 보니 이 영화가 좋은 평을 받는 이유는 짧을 수 밖에 없는 사랑의 유효기간을 확장시킨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사랑하지만 엇깔려 헤여지게 만들고 어느 시점에 서로의 기억 속에 다시 부활시켜 오랜 시간이 지나도 다시 살아나 상대를 향해 달려가게 만든 것이 이 영화의 힘이다. 진정한 사랑은 유효기간이 짧은 한계를 극복하고 오랫동안 아름답게 지속될 수도 있음을 묘사한 것이었다.

남녀 간의 불같은 사랑이란 운명적으로 지속 기간이 길 수가 없다. 이런 사랑 호르몬이 불을 지피는 최대 유효기간은 3년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유효기간을 넘겨 사랑이 오래 지속된다면 아마도 누구나 번 아웃되어 식물인간의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심각성을 이미 깨달은 어른들은 열애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평생 연애만 하고 살 수 없지 않느냐고 집요하게 질문을 던진다. 지속기간을 넘겨 사랑하다 번 아웃되는 사례를 막기 위해 사랑의 결말로 결혼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화양연화에서 처럼 짧지만 찬란했던 사랑의 기억이 다시 살아나 상대를 향해 달리게 만드는 사랑은 불륜이지만 몸은 섞지 않는 예외적인 사랑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목격하는 사랑은 이런 사랑의 아름다운 전조보다는 사랑의 결실이라고 규정된 결혼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사랑이다. 사랑이 아무리 불같아도 결혼으로 진입하면 진부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혼을 사랑의 무덤이라고 표현하는지도 모른다. 불륜이던 정상적인 사랑이던 사랑의 무덤인 결혼에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사랑이 화양연화가 겨냥한 사랑이다. 심지어 장만옥이 양조위가 이혼하고 혼자살고 있었음에도 감독은 이들이 만나지 못하게 만든다. 필연적 결혼이 이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진부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화양연화 덕택에 한국에서도 간통죄도 사라지고 기혼자들은 자신의 죽어버린 사랑을 살려낸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정부를 만드는 것을 로망으로 여기던 때가 있었다.

젊은이들은 사랑의 무덤인 결혼에서 벗어나 사랑의 하이라이트인 사랑의 전주곡를 살리기 위해서 썸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또 이들은 화양연가와 같은 사랑의 지속을 위해 남사친 여사친 등 다양한 썸의 변이를 만들어 진화시키고 있지만 사랑의 진부한 결론인 결혼은 안하는 것으로 작정했는지도 모른다. 연애는 않하고 평생 썸만타는 젊은이도 많다. 요즈음 젊은이의 사랑이 진짜 화양연화가 부활한 사랑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자신의 죽어버린 사랑을 개탄해가며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의 유효기간을 늘려내는 작업을 공모하고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