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은 그간 작동하던 시스템이 제시하는 패러다임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붕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위기에 봉착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살아남는 생존의 문제이겠지만 리더들은 이 생존의 문제를 넘어서 미래를 본다. 리더라면 문제가 있어서 패러다임이 붕괴된 상황을 두고 살아남는 것을 넘어서 이런 위기가 닥쳤을 때 더 이상 붕괴하지 않는 더 강건한 시스템은 무엇일 것인가를 고민할 기회로 생각하고 이 고민의 해답을 찾아 위기 후의 New Normal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사회적 혁신의 실험을 시도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되돌아보면 한국동란, IMF,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큰 세 번의 큰 위기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부분 전쟁을 겪은 나라가 전쟁 후에 제대로 부흥하는 경우는 드물다. 독일, 일본, 한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전쟁폐허의 후유증을 아직도 치료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쟁으로 망한 나라와 전쟁 때문에 오히려 살아난 나라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전쟁이전 상태의 복구를 위해 국력을 쏟았는지 패망한 상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전의 나라는 없다고 생각하고 제로 베이스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지의 차이일 것이다. 즉 과거의 복원이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는지 미래를 새롭게 만든다는 관점에서 접근했는지의 차이가 이런 극단적 결과 차이를 만든 핵심이다.

IMF는 우리나라 전체가 망하는 경험을 한 사건이다. 누구나가 개인적으로는 IMF 때의 어려웠던 상황을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IMF를 통해 망해보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상태의 부를 누릴 수 있었을까? 아마 대답은 부정적일 것이다. 하지만 IMF의 명암도 있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지금까지 드리우고 있는 어둠의 문제는 우리 나라의 청사진에 대한 주도권을 미국에게 넘겨주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의 효율성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구제금융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노력해서 극복한 것은 사실이지만 극복할수록 대한민국은 미국의 짝뚱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IMF는 대한민국이 미래의 청사진을 만들 수 있는 주도권을 빼앗겼던 불운한 사건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목격하고 있는 무한경쟁, 불평등, 양극화로 치닫는 자본주의 운명은 IMF 때 이미 결정된 것이다.

위기가 기회로 작동하는 이유는 위기가 닥쳐서 기존의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이 기존 시스템의 장단점에 대해서 옳고 그름이 판단 중지 되고 이 판단중지에 기반해서 다시 원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통찰력을 주기 때문이다.

사물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데이터를 수집할 때까지 옳고 그름의 <판단을 중지>하는 것을 현상학에서 괄호치기(Bracketing)라고 칭한다. 자신의 옳고 그름의 기존 프래임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일단 괄호로 쳐놓고 위에서도 보고 아래서도 보고 뒤에서도 보고 밑에서도 봄에 의해서 판단 전에 실체를 파악하는 데이터 작업에 몰입하게 하는 사전작업이 판단중지다.

아무튼 위기는 위험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기회의 뒷머리는 앞머리와 달리 대머리라고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앞머리만 보고 뒤통수를 못 볼 때 기회를 잃는다. 코로나 팬데믹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가장 큰 기회는 사물을 앞에서도 보고 뒤어서도 보고 옆에서도 보아서 전체적인 모습의 실체를 파악할 때까지는 옳고 그름에 대해 판단하는 것을 중지한 상태을 제공한 것에 있다. 옛날 시스템이 작동이 안 된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하기 때문에 새로운 미래를 공동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다.

코로나 팬데믹은 기존의 작동되던 패러다임에 대한 판단중지를 명한 것이다. 살아 남느냐의 문제를 넘어 이 판단중지를 통해 떠오른 답을 새로운 노멀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실험하여 새로운 사회적 혁신을 완성하라는 명령이다.

백신이 배포되기 시작하면 올해 후반기에는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코로나의 위기를 생존의 위기로만 접근해서 이것이 가져다준 판단중지라는 사회적 혁신을 위한 실험기회를 놓친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이 사라지면 이런 사회적 혁신을 시작할 수 있는 모멘텀도 힘을 잃게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사회적 혁신을 통해 New Normal을 실험할 수 있는 유효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위기이다. 내가 보기에는 코로나 위기를 통해 사회적 혁신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 코로나 위기보다 더 심각한 위기이다. 미래를 디자인할 기회를 놓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가장 현명한 리더들은 목적에 대한 믿음의 안경인 비전의 눈으로 위기의 실체를 모든 각도에서 볼 수 있고 이것을 기반으로 다가올 미래를 제대로 디자인해낼 수 있는 안목을 가진다. 우리나라에 이런 위기 속에서 비전의 안경으로 기존의 프래임을 해체시키고 NEW NORMAL을 제시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진 리더가 시급하게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