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에게 서시가 있듯이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는 <군말>이라고 이름 붙여진 서시가 있다. 이 <군말>에는 한용운이 생각하는 님에 대한 정의가 나온다. 한용운은 님을 국가나 애인이나 이런 것으로 너무 편파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경고한다.

한용운에게 님은 자신이 스스로 길러냈지만 이 길러낸 대가로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모든 존재이다. 나의 삶에 어느 날 귀인으로 찾아온 존재론적 사랑이 님이다. 국가도 애인도 나도 내가 낳아 키운 자식도 존재론적 사랑의 대상으로 나와 상대를 키워서 자유롭게 한다면 다 그리운 님이다. 이것들이 소유론적 사랑으로 서로를 구속한다면 가짜 님이다. 한용운에게 소유는 존재의 감옥이다. 한용운은 이 존재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람들이 자신의 님을 찾아서 스스로를 해방시키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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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찌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연예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 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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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내가 찾아서 내 몸으로 영혼으로 길러낸 것이다. 내가 영혼을 바쳐 기른 자식이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큰 그리움의 대상이다.

우리에게도 님은 있을까? 나를 버리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님만을 애처롭게 노래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가짜 님을 애타게 찾아 헤메는 동안 진짜 님은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내 눈길을 기다려가며 혼자 흐느껴가며 울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