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나 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사랑은 아날로그 사랑이었다. 아날로그 세대는 사랑은 삶 전체의 융합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화도 같이 보고, 공부도 같이 하고, 여행도 같이 가고, 같이 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것을 같이 한다. 사랑을 매개로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내서 같이 하는 사랑은 종합선물 세트였다. 아날로그 사랑이 잘 진행될 경우 말 그대로 우주와 우주의 만남으로 칭송되기도 한다.

밀레니얼 세대나 Z 세대에게 사랑은 종합선물 세트가 조각 조각으로 해체되어 나타난 디지털 사랑이다. 이들에게 사랑은 삶의 많은 편린 중에 하나일 뿐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규정한 사랑의 개념에 따라 사랑과 다른 삶을 철저히 분리시킨다. 사랑은 서로의 몸에 대한 탐닉이라고 규정했으면 그렇게 하고 플라토닉한 사랑이라고 규정했으면 그렇게 한다. 무엇이든 본질에만 집중하고 이 본질에서 나머지를 해체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화에 대한 취향이 같으면 영화를 같이 보겠지만 취향이 다를 경우 사랑은 사랑이고 영화는 영화다. 서로를 희생해가며 같이 영화를 볼 이유가 없어 보인다. 사랑은 삶의 다양하게 분절된 0, 1, 중 하나이다. 디지털 세대에게 사랑은 우주와 우주의 만남이 아니라 그냥 사랑일 뿐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사랑은 필연적으로 결혼으로 이어졌다. 우주와 우주가 만나 모든 것을 같이 하니 비용 면에서나 사랑을 효율적으로 즐기는 측면에서나 결혼해서 같이 사는 것이 논리적 귀결이다.

사랑은 그냥 사랑일 뿐인 디지털식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결혼은 엄청난 희생이다. 자신들의 다양하게 디지털화 된 삶의 0, 1 조각들을 상대에 맞춰 협상하고 조율해가면서 살아야 하고 또한 아이를 낳고 공동으로 육아해야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식 사랑을 하는 세대에게 결혼은 자기희생을 요구하는 선택지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것은 전쟁포고이다. 설사 어떤 선택에 의해 결혼에 골인 했어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육아는 안 할 개연성이 높다. 결국 국가는 적정규모의 인구의 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혼하는 디지털 사랑 세대에게 이들이 스스로 희생이라고 규정한 것들을 감내할 수 있는 막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결혼 이외의 다른 제 삼의 가족이나 혼인 제도들을 용인해야 할 전망이다.

다윈(Charles Darwin), 도킨스(Richard Dawkins), 밀러(Jeff Milller)로 이어지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자신의 생물학적 유전자를 퍼트리기 위해서 존재한다" 진화론자들의 주장은 아날로그 세대에게는 맞는 말이었든지 모르나 디지털 세대에게는 더 이상 유효성이 없는 신화로 전락할 전망이다. 아니면 인간과 다른 동물들에게나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동물도 모든 동물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인간에 의해 가축화 되지 못했거나 애완동물화 하지 못하고 말 그대로 자연에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원리에 따라 살아가는 짐승 동물들에게나 적용될 것이다. 디지털 세대는 생물학적 종족을 퍼트리기 위해 존재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의 기억인 밈(Meme)을 퍼트리기 위해 존재하는지 모른다.

인간의 삶 전체를 리비도라는 성적 욕구로 환원시켜 설명해가며 진화론과 내밀하게 손을 잡고 명맥을 유지해왔던 프로이트도 디지털 사랑이 새로운 규범이 되면 결국 사망선고를 당할 것이다. 성적욕구가 여전히 중요한 욕구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다양하게 디지털화된 더 중요하고 강한 많은 욕구가 등장할 것이고 이것들의 기세에 밀려 성적욕구는 설명력을 상실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적 가족의 개념도 해제되고 다시 재구성될 것이다. 디지털 사랑을 하는 세대에게 더 소중한 가족은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유전자를 퍼트리는 생물학적 가족이 아닌 자신의 Meme에 대한 사랑을 방해하지 않는 애완동물이나 자신의 Meme을 추종하고 퍼트리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