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2-20 13:53
[N.Learning] 결과와 목적을 혼동하는 회사의 비극 노예의 삶에 집착하는 이유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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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와 목적을 혼동하는 회사의 비극
노예의 삶에 집착하는 이유
사람들은 가끔 결과와 목적을 혼동하는 삶을 산다. 결과는 목적을 삶의 씨앗으로 가져와 길러내 결실을 맺는 것이다. 제대로 된 목적은 결실이 아니라 결실을 가져오는 원인인 코즈(Cause)이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 목적을 원인으로 가져와 씨로 뿌리고 과수나무로 길러내야 한다. 결과인 열매는 목적의 씨앗이 발화되어 만들어낸 과실이다. 목적은 결과와 달라서 원인으로 삶과 일에 심어져야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목적을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목적을 씨앗으로 심어서 과수나무로 가꾸는 작업에 매진하기보다 결과를 결과의 수준에서 기대하기 때문에 목적을 실현할 방법이 없다. 목적은 미래에 이런 과일을 전달하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에 목적을 결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부도수표를 남발하는 사람이 된다.
결과를 목적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결과를 통해 결과를 산출해야 하는 목적론적 순환론에 빠진다. 모든 결과가 마치 목적에 의해서 예정된 것처럼 설명하여 인간의 주체적 의지를 배제한다. 목적론적 순환론에 빠진 사람들은 주변에 먹잇감이 떨어져 배가 고파지면 제 살을 깎아 먹어가며 허기를 채운다. 마치 배 고픈 뱀이 자신의 꼬리를 먹어가며 배고픔을 달래는 상황이 실제로 우리의 삶에도 재현된다.
어떤 사람의 삶이 노예의 삶인지 주인의 삶인지도 목적과 삶의 결과에 대한 우선 순위에서 결정된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삶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규명해주는 목적이 있어서 이 목적을 추구하고 이 목적을 달성함에 의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완성해가는 삶을 산다. 이들에게 자신의 고유한 목적을 달성한 것에 따라오는 금전이나 명예 등은 결과에 불과할 뿐이다. 이들에게 목적은 나무의 씨앗이자 뿌리이고 결과는 나무의 열매이다. 튼튼한 씨앗과 뿌리에서 영양을 공급 받은 나무가 맛있는 과일을 생산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한 마디로 주인의 삶은 삶의 선순환 과정을 잘 아는 삶이다. 자신의 존재이유인 목적을 구현하는 주체적 삶과는 달리 결과를 따라가는 삶은 노예의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결과는 상투일 뿐이고 이들이 잡은 상투는 결과의 자그마한 허상에 불과하다.
주인공이 되는 목적을 상실한 상태에서 어떤 특정한 결과만을 추구하는 삶은 이 결과들의 노예로 만든다. 어떤 목적없이 승진이라는 결과만을 위해서 일한다던지 목적없이 인센티브라라는 결과를 많이 받기 위해서 일한다던지 목적없이 명예만을 위해서 일한다면 결국 자신의 삶을 노예의 삶으로 만드는 것일 것이다. 승진이나, 인센티브나, 명예 등은 한번 달성하면 다음에는 더 높은 단계가 달성되지 못하면 오히려 불만의 요인이기 때문에 이런 쳇 바퀴에 한번 빠져들면 자신이 스스로가 이런 것에 손을 놓기까지는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지금까지 목메왔던 이런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루저로 비난했던 사람들과 한 부류가 되는 것이어서 쉬운 일이 아니다.
목적을 삶의 원인으로 가져오지 못해 급급한 결과를 쫓아가며 사는 삶에 집착하게 되면 뿌리 없는 나무에서 열매를 찾거나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비현실적 행동에 몰입한다. 현실성이 없는 행동이지만 많은 사람은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행동으로 그냥 믿고 이런 쳇 바퀴 도는 노예의 삶에 몰입한다. 어느 순간 자신도 자신의 꼬리를 먹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만 이미 늦었다.
신자유주의가 장악한 대부분의 회사에서 경영하는 방식도 종업원에게 노예의 삶을 강요한다. 회사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을 기업의 목적이라고 믿는다. 물론 이런 회사도 고객을 현혹시키기 위해서 홈페이지에는 자신들도 목적을 추구하는 것으로 포장하지만 다 연기이다. 이런 회사가 하는 큰 착각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은 경영의 결과이지 경영의 목적은 아님에도 목적이라고 믿는 것이다. 실제 돈이 벌리는 원리는 목적을 실현한 가치를 고객에게 전달해야 고객은 가격을 넘어 가치를 체험하고 그에 상응하는 돈을 지출한다.
종업원들을 이런 노예의 삶으로 이끌어 들이기 위해서 회사는 종업원들에게 그레이하운드 경주를 시킨다. 인센티브와 승진이라는 고기를 앞에다 걸어 놓고 무슨 짖을 하던 열심히 달리면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유인한다. 결국 회사의 유인에 낚여 한 두 번 고기 맛을 본 종업원들은 이 노예의 삶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회사가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도 가치가 아니라 가격이기 때문에 결국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고대시대 노예와의 차이는 단지 집에서 출 퇴근이 가능한 노예라는 점이다.
진성기업 (Authentic Company) 은 기업의 목적과 결과를 명확히 구분하고 이들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을 가장 부끄러운 일로 생각한다. 진성기업은 목적이 제품과 서비스에 제대로 체험으로 구현되면 결과와 성과와 돈은 자연적으로 따라온다는 것을 아는 회사이다. 따라서 이들은 고객들에게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목적"에 승부를 건다. 이 목적을 찾고 제품과 서비스에 구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지독하게 실험하고 혁신한다.
진성기업은 목적을 회사의 원인으로 가져와 이것을 제품과 서비스에 녹여서 체험적 가치를 파는 회사들이다. 즉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가격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제품과 서비스에 담긴 목적에 대한 체험적 가치를 판다. 이런 회사에서는 비지니스의 방식이나 일하는 방식에 목적이 체화되어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의 주인공임을 깨달게 해준다. 이런 회사의 구성원은 자신들의 일과 과제와 혁신을 통해 목적에 대한 약속을 지킨다는 자부심이 넘친다.
한 두 번의 결과에 대박을 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특히 오랜 기간 불운을 벗어나지 못한다. 좋은 결과가 우연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자신에게 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목적을 삶의 원인으로 가져와 씨앗을 가꾸고 과일나무를 만드는 지난한 혁신작업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성공을 원한다면 목적을 삶의 토양에 씨앗으로 뿌리고 목적이 담긴 과일을 생산해낼 수 있는 과일나무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얻어지는 과일은 그냥 과일나무가 잘 자라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다. 목적의 씨앗을 통해 길러낸 성과나 결과만이 지속가능한 목적성과이다.
손가연, 이재영, 외 9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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