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지금 자민당과 NHK 가 주도하는 시부사와 에이이치(しぶさわ えいいち, 1840. 3. 16 - 1931. 11. 11) 부활 운동의 열기가 거세다. 시부사와는 메이지 시대와 다이쇼 시대 대장성 관료이자 기업가이다. 시부사와는 일본 자본주의 아버지로 불린다. 일본 자본주의 맹아가 시작되는 19세기 말부터 은행, 증권거래소, 전력회사, 대학, 다양한 분야의 주식회사 등 일본 자본주의 골간에 해당하는 500여개의 회사와 조직을 설립했다. 일본은 2024년에 바뀌게 된 만엔 화폐에 들어갈 인물로 시부사와를 지정했다.

다른 일본 재벌총수와는 달리 시부사와는 이런 다양한 조직과 회사를 설립하고 안정되게 만든 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사회에 넘겨주었다. 요즈음 자본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는 벤처사업가 정신과 사회적 기업가의 면모를 동시에 보이고 있는 셈이다. 또한 1916년에 저술한 『논어와 주판(論語と算盤)』에서 인문과 장사라는 두 수레바퀴가 동시에 돌아갈 때 건전한 자본주의 골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평생 이를 위해 노력한 측면도 부활의 대상으로 선정된 이유이다.

시부사와의 부활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기사회생 시켜보려는 시도에서 기획되고 있다. 일본은 70년대와 80년대 최고의 번성을 구가하다 90년대 초 버블이 꺼지지 시작하자 지금까지 잃어버린 30년이라는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얼마 전 한 세미나에서 본인이 최근에 출간한 저서 『황금수도꼭지: 목적경영이 이끄는 기적』의 한 꼭지인 <자본주의와 조직의식>이라는 주제를 발표하다가 한 참여자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본인 발표의 초점은 한국 기업생태계에서 건강한 자본주의를 살려내기 위해 한국의 기업들이 자신의 미래가치를 잃어버려 회사가 죽음 직전인 코마에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해야한다는 것이다. 회사가 미래에도 존재해야 하는 이유인 목적을 살려내서 현재의 비즈니스 모형에 구현하는 작업이 바로 조직의 미래가치를 창안하는 작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질문자는 일본의 기업의 예를 들어가며 대부분의 일본 기업들은 목적경영을 해온 것으로 보이는데 왜 지금처럼 지지부진한 모습을 극복하지 못하는가를 질문했다. 구체적으로 목적경영을 한 것으로 보이는 일본기업들이 세계를 주도하는 기업들의 리스트에서 사라졌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본인이 한 답변의 요지는 공진화의 실패이다. 아무리 한 때 목적경영을 잘해서 성공을 구가했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목적을 시대가 변화하면 이에 맞춰 공진화 시켜야 하는데 이것에 실패할 경우 결국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목적의 감옥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목적은 나침반과 같아서 세상이 변화하면 새 방향을 찾기 위해 떨림을 유지해야 하는데 일본기업들의 나침반은 결국 떨림이 멈춘 죽은 나침반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처럼 일본기업들이 70년대 80년대 최고의 흥성을 경험했는지 모르지만 새롭게 변화한 21세기의 요구에 맞춰 자신들의 목적을 공진화시키는데 실패했다. 나침반의 극성을 다시 찾아야 하는 목적의 공진화 문제에 봉착하자 자신들이 가진 최고의 역량인 기술에 더 집착하여 문제해결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런 잘못된 솔루션이 오히려 기술 인플레이션을 초래해 지금의 일본을 더 가라 앉게 만들었다.

기업이 공진화에 성공해서 시간의 검증을 통과하는 100년 기업이 된다는 것은 과거와 미래의 문제를 현재의 혁신을 통해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지에 달려 있다. 과거는 현재의 맥락에 맞게 끊임없이 재해석해 부활되어야 한다. 이렇게 부활해서 살아난 것을 사람들은 전통(tradition)이라고 부른다. 미래도 마찬가지다. 조직은 자신이 미래에도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목적으로 만들고 이 목적을 현재로 가져와서 구현시켜 미래가치를 설파해야 할 책무가 있다. 이 약속에 대한 책무를 이행해 목적을 실현 가능하게 만드는 작업이 유산(Legacy)이다. 결국 공진화는 오래된 새 길로 부활시킨 전통과 미래에 가치로 남겨야 할 유산 사이에 현재의 혁신을 통해 길을 만드는 작업이다. 100년 기업으로의 공진화는 전통과 유산이라는 두 수레바퀴에 의해 굴러나는 마차에 비유할 수 있다.

일본이 직면한 문제는 과연 지금 시작하고 있는 일본의 부활운동이 세계 시민들에게 미래에 일본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즉 유산에 대한 약속을 담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이다. 지금 너무 어려우니 앞으로는 어떻게든 잘 살아보겠다는 단순한 생존의 몸부림에는 미래 유산에 대한 내러티브가 담겨있지 못하다. 사람들에게 미래의 유산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한다면 미래가치는 형성되지 않는다. 결국 무슨 몸부림을 해도 한 쪽 수레바퀴가 빠진 운명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과거에 대한 부활을 통해 전통을 소환하고 이를 통해 제대로 된 오래된 새 길을 만드는 작업과 관련된 것이다. 독일과 달리 일본은 아직까지 과거의 역사에 대해서 한번도 제대로 자복해가며 잘못을 사과하지 않고 있다. 과거의 잘못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역사는 과거의 잘못을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의 역사로 되돌아간다. 이런 방어기제로는 제대로 된 과거가 부활되어 현재에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이 없는 전통은 밑 빠진 독일 뿐이다. 아무리 큰 성취를 만들어내도 방어기제가 뚫려 과거가 다시 거론되면 다시 원점으로 끌려 내려간다. 역사는 시지프스의 돌굴리기가 된다. 일본은 아직도 집단사고에 빠져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면 전통의 수레바퀴도 제대로 돌리지 못할 형국이다.

디지털 시대의 혁신은 밑에서 불길이 올라오고 위에서 이 불길에 부채질 하는 자기 조직적 방식으로 이뤄진다. 자민당이나 NHK가 아무리 위에서 부채질을 해도 일본사람들이 주체적으로 밑에서 불길을 만들어오지 않는다면 이것도 실패할 개연성이 높다.

일본의 부활운동을 이끄는 자민당과 NHK는 전통과 유산의 두 수레바퀴가 공진화하는 원리를 제대로 구현해서 일본을 살려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