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 Natural Learning > 동행의 숫자

삶의 끝에는 몇 명의 동행이 함께하고 있을까?

정체성이 동행의 숫자를 결정한다

앞으로는 세상이 점점 공존, 공생, 공영의 공진화를 향해서 전개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동행의 문제는 그냥 생존의 문제이다. 심지어 요즈음 영향력이 있는 학술지에는 혼자 이름으로 출판하기는 힘들다. 심지어는 노벨상도 대부분 공동 수상이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도 혼자의 머리를 가지고는 세상의 복잡성을 이해하기도 힘든 세상으로 변했다. 공진화 시대에 성공의 문제는 제대로 된 동행의 숫자에 의해 결정된다.

"빨리 가려면 혼자 뛰어가고 멀리 가려면 동행을 구해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공진화 시대를 맞이해서 이 아프리카 속담도 "빨리 가려고 해도 동행을 구하고 멀리 가려면 더욱 많은 동행을 구해라"로 바뀔 것이다.

특히 한 평생 사는 것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먼 길을 가는 것이라면 이 먼 길을 길을 잃지 않고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동행이 필수적이다. 결국 제대로 된 인생을 평가하는 잣대도 따지고 보면 죽음에 이르렀을 때 가족을 제외하고 몇 명의 동행 혹은 친구를 가지고 있는 지의 문제다. 이 길을 가는 과정에서 동행으로 알았던 사람이 적이 되기도 하고 오히려 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이 마지막 동행이 되기도 한다. 수도 없이 많은 친구를 사귀지만 인생을 종결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남은 숫자는 거의 없다.

동행할 수 있는 친구를 구하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울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뜬금없이 정체성이 동행의 숫자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정체성이란 자신 과거는 어디에서 시작했고 지금은 어디에 서 있고 지금 서있는 자리에서 어떤 미래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지의 문제다. 자신의 정체성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이 여정을 하고 있는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여정의 행로에 대해 알고 있는 정체성이 있는 사람들만이 자신의 목적지를 제대로 이해한다. 이들만이 누가 동행이 될 수 있는 지를 제대로 안다. 친구로 알다가 소원해진 사람들의 원인은 목적지가 같다고 생각하다가 나중에 서로 다른 목적지를 가졌다는 것을 뒤 늦게 아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친구에게도 발생하고 본인에게도 발생하는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모두가 자신의 목적지를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이 믿음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분명한 정체성이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아는 것이 그리 어려울까?

포춘기업 CEO에 오른 사람과 마지막 결선에서 떨어진 사람들을 비교한 Greenpeak study가 찾아낸 마지막 기준도 자기이해(Self Awareness)였다는 점을 보면 자기를 이해하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자기이해가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왜 그럴까?

따지고 보면 소크라테스가 주창한 <네 자신을 아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었다면 이천오백년이 흐른 지금에 이르러서도 자기이해 self awareness를 위해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은 자기이해가 상식이 되었을 것이다.

자기이해가 그리 쉬운 일이었다면 남들 성공을 무조건 카피하고 배우는 사람들의 숫자도 반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무조건 최고라고 하는 사람들의 성공을 카피하고 배우는 것은 자기이해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하는 전형적 행동이다. 상황과 맥락이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무조건 카피하는 것만큼 무모한 일은 없다. 남들의 성공을 카피하는 것이 자기를 키우기 위한 시작점이 아니라 답으로 생각하고 무조건 신봉하는 행동은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지우는 행동이다. 스스로를 치매 환자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이들에게는 사실 지속 가능한 성공이 목적이 아니라 불안감 해소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왜 자기이해가 어려운 것일까?

자신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는 것은 주변사람들을 거울로 이용해서 이들이 피드백을 잘 해줄 수 있도록 이들의 마음의 거울을 자주 딲아주면 될 일이다. 문제는 현재가 아니라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궁극적으로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 이해는 남들이 제공해주는 피드백으로 해결해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자기이해에 대한 승부는 여기서 결정된다. 바쁘게 사느라고 자신이 해결했어야 할 자기고통에 대한 기억이 지워져 있다면 과거에 대한 이해는 물건너간 것이다. 미래의 목적지인 진북의 거울이 제대로 없다면 자신의 미래를 제대로 통찰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세상에 적응해서 바쁘게만 살았던 삶이 자기이해를 못하게 만든 함정이다.

Geenpeak 연구에 CEO로 마지막 계단을 오른 사람들의 답변은 상식적이지만 심오하다. 이들은 자신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하루에 몇 분 정도라고 시간을 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이해하는데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진정한 자기이해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 사람인지의 정체성을 아는 것이다. 이처럼 정체성은 과거 현재 미래의 점들이 이어질 때만 완성된다.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완전한 자기이해가 어려운 것은 피드백만 잘 수용해 현재의 자신만 제대로 이해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 때문이다.

자기이해가 그리 쉬웠다면 우리 모두는 소크라테스에 버금가는 철학자가 되어 있어야 하고 글로벌 기업의 존경받는 CEO가 되어 있어야 맞다. 탁월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을 구별해주는 기준도 따지고 보면 훈련된 자기이해의 근력으로 자신의 정체성의 나침반이 항상 떨림을 유지하고 있는지의 문제이다.

아무리 바빠도 자기이해의 근육을 통해 정체성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누가 같은 목적지를 향해서 가고 있는 동행인지를 제대로 알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 서로 친구로 남아줄 것이다. 본인이 정체성을 제대로 알고 있을 때만 같은 목적지를 향하고 있는 동행의 스토리에 내 스토리가 어떻게 씨줄과 날줄로 직조되어 새로운 지평을 만들어낼 것인지가 가늠이 될 것이다. 이런 제대로 된 삶의 직조를 통해 서로가 동행할 이유를 얻은 것이다.

#도반 #동행 #정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