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기업의 사외 및 사내 이사를 희망하는 임원들 강의에 초청 받아 세미나를 진행하던 중 한 참여자로부터 ESG에 관해 질문을 받았다.
회사에 임원으로 근무하다 보면 단기적 KPI 지표가 코 앞에 놓여 있고 한 분기 동안 간신히 KPI를 맞춰 놓으면 다음 분기의 KPI가 놓여 있고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장기적 관점을 생각하는 것은 사치다. 요즈음은 ESG (Environment, Society, Governance) 열풍이 거세져 부담이다. 다른 회사에서 다 하면 결국 우리 회사도 안 할 수 없고 잘 안 되면 이것을 KPI 지표로 만들어서 강제할 것이 뻔하다. 지금 KPI도 겨우 달성하고 있는데 여기에 ESG KPI까지 부가 되면 제대로 진정성을 가지고 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KPI로 할당되었는데 임원으로 이것을 무시하는 것은 결국 회사에 마음이 없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어서 마음이 무겁다.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한국에서도 ESG 열풍이 거세다. 2005년 유엔 총장이던 코피 아난이 주창하던 개념들이 숨어 있다가 2008년 이후 금융위기가 주주의 탐욕 때문이라는 비난이 거세지자 주주 자본주의자들의 자기 변호로 등장한 것이다. 최근에는 ESG 지수가 높은 회사들의 장기적 수익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들이 산출되자 소액주주들의 스튜어드십(Stewardship)을 강조하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ESG를 거들고 나서기 시작했다.
여기에 7조에서 8조 달러 정도의 자산을 운용하는 최대 투자 회사 블랙록(BlackRock)의 래리 핑크(Larry Fink)가 이런 결과를 인용해가며 자신이 투자한 회사와, 자산 운용사 및 투자자에게 ESG에 대해 대대적으로 독려하자 회오리 바람이 광풍을 만들고 있다. 특히 핑크는 2000년 초 자신 회사의 투자자들과 피투자 기업들 CEO에게 보낸 서한에서 기후문제를 투자 리스크로 규정하고 나섰다. 적어도 이익 중 25% 이상이 석탄소비에서 발생하는 기업과 지속가능성 점수가 낮은 기업들에게는 더 이상 투자하지 않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런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는 최근 코로나 사태가 촉발되자 2015년 파리 기후 협약을 토대로 210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하로 유지하고 지구 온난화를 1.5도로 낮추도록 노력하자는 정부간 협약기구인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의 협약 선언 내용이 선두 기업이나 투자자들 사이에서 초특급 글로벌한 관심사로 부각되었다. 여기에 EU가 2014년 규모 이상 기업들에게 UNGC, OECD가이드라인, ISO 26000 등의 기준을 자율적으로 선정해 비재무정보 의무공시제도를 도입할 것을 권고하고 2018년부터 이 같은 공시를 제도적으로 의무화한 것도 큰 기폭제 역할을 했다. 실제로 EU는 2023년 런칭을 목표로 정보공개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결국 다양한 이해 관계자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닌 탐욕의 죄인이었던 투자회사가 모습을 바꿔 이 운동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ESG가 진정성을 가지고 실현될지는 극히 의문이다. 실제 블랙록이 투자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는 상장지수펀드인 ‘iShares ESG Aware MSCI USA ETF’ 구성 내역를 보면 그냥 돈 잘 버는 우량기업 중심투자이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원래의 코피 아난이 주창하던 ESG 의미는 고사하고 결국 더 많은 이익내기 위한 주주의 관점으로 잘못 회귀될 개연성이 크다. 투자자인 주주의 관점에서 ESG는 원래 환경, 사회, 회사와의 공존, 공생, 공영이라는 공진화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탐욕의 대명사로 비난 받던 자신들의 면죄부를 받고 여기다 더 큰 이익의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 때문에 이들이 열광하는 것일 수도 있다.
ESG가 누가 주도하던 ESG는 기업을 평가하는데 기존의 재무적 측면을 넘어, 환경, 사회, 지배구조라는 비재무적 측면을 고려하여 지속가능성을 높이겠다는 표면적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선한 의도가 실현되는 모습을 보인다면 ESG 열풍은 당분간 지속될 개연성이 높다. 하지만 이런 선한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를 직접 실천해야 하는 회사의 입장에서 ESG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경쟁사의 ESG 점수를 비교할 것이고 점수가 낮다면 스스로에게 압력으로 느낄 수 밖에 없다. 또한 정부도 UN이나 국가 간 기후협약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후와 탄소 문제 등에서 ESG 기준을 세워 놓고 기준에 못 미칠 때 국민연금 등을 동원해 불이익을 줄 것으로 경고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회, 다양한 글로벌 평가기관들(GRI, UN SDG, CDP, IIRC, CDSB, SASB, TCFD, MSCI), 행동주의 투자자 연합회의 규범적 압력도 만만치 않다.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생존을 위해서라도 이런 기관들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
경쟁사가 하기 때문에 하거나, UN과 정부의 규제 때문에 하거나, 투자자의 요구 때문에 하거나, 평가기관이나 국민연금 등 투자 연합체의 규범적 압력 때문에 하거나 이런 이유 때문에 한다면 결국 남의 눈이 무서워서 하는 것이지 ESG 자체가 주는 장기적 편익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다. ESG 보고서를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이 주도하는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문제다. 결국 ESG를 해야 할 자신 회사만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남들이 하기 때문에 경쟁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하게 되고 여기에 KPI 까지 붙게 되면 결국 ESG는 원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무늬만 ESG로 디커플링된다. ESG가 의도와 달리 디커플링 되면 결국 회사들은 규제와 규범적 강제를 피하기 위해 ESG Washing에 몰입할 것이다. 엄청난 회사 재원만 낭비하는 꼴이다.
첫째 회사가 기업 생태계에서 존재해야 하는 사명과 목적을 분명히 하고 ESG를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지뢰대로 이용하는 것이다. ESG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회사가 고객과 사회에 약속한 사명과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일 뿐이다. ESG에 열을 올리고 있는 회사들을 추적해보면 회사의 사명과 목적이 대부분 홈페이지에만 존재하는 회사들이다. 이런 회사에서 ESG를 한다면 반드시 ESG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무늬만 하는 척하는 ESG 포장 회사로 전락한다.
둘째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사회적 헌신(Social Commitment)를 성공적으로 동원해야 한다는 점이다. ESG가 주주들의 헌신만을 동원하고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공통된 헌신인 사회적 헌신을 동원하는데 실패한다면 결국 주주들이 좋은 운동으로 시작했어도 주주의 운동으로 실패할 개연성이 높다. 최근 ESG에 평가 추이를 보면 그래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균형을 중시하는 GRI와 UN SDG에서 주주의 이익 중심으로 평가하는 SASB와 TCFD로 평가의 축이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다.
사회적 헌신(Social Commitments)란 특정한 이해관계자의 헌신이 아니라 관련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고객, 주주, 종업원, 공동체, 협력사, 자연)의 ESG에 대한 헌신이다. Inside Out의 관점을 가진 일반 이해관계자들과 Outside In의 관점을 가진 경영진, 종업원이 가진 관점들을 통합할 수 있는 회사의 사명과 목적에 대한 관점이 필수적이다. 이런 사회적 헌신을 동원하기 위해서도 결국 회사는 회사가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인 목적으로 자신의 회사를 통해 ESG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정당화 시킬 수 있어야 한다. 최근 파타고니아, 바디샵, 러쉬, 닥터브로너스, 벤앤제리스 같은 기업이 각광 받는 이유도 투자자 중심의 투자 리스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중심으로 사회적 헌신을 동원하는 행동주의 성향 때문이다.
셋째, GRI, UN SDG, SASB, TCFD, MSCI 등 130여개에 달하는 다양한 ESG 평가기관이나 기업들의 자체 데이터를 통해 제공하고 있는 HIGG Index와 같은 환경 및 사회문제 기여 평가 자료를 공유해서 이를 토대로 제대로 된 평가모형과 요인에 대한 중대성 평가 모형들이 도출되도록 해야한다. 이런 검증된 평가모형이나 중대성 평가모형이 산출될 때까지는 기업들에게 ESG를 통한 규범적 강제나 투자의 불이익이 가는 것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ESG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가 핵심이다. 검증도 안 된 모형이나 영향 평가 모형을 투자자금을 많이 운용한다는 이유로 기업들에게 규제와 권고를 남발한다면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ESG는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디커플링될 것이고 결국 CSR이나 CSV처럼 한 때의 유행으로 있다가 사라질 것이다.
더불어 과연 ESG가 기존의 CSR, CSV, SV 등을 대체할 문제인지 아니면 보완재로 사용할 것인 지에 대한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
ps: 본인은 <Social Commitments in a Depersonalized World (Russell Sage Foundation 출간>에서 사회가 초연결 네트워크 사회로 진화할수록 힘 있는 구성원의 부분적 몰입을 합해서 사회적 몰입을 만들어가는 전략으로는 사회의 진화를 이끌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해 왔다. 공동의 목적에 대해 관련된 이해당사자 모두가 참가하는 사회적 헌신(Social Commitments)만이 초연결 디지털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골격을 형성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
조회 : 4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