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4-07 14:11
[N.Learning] 슬기로운 대한민국 환대의 호혜성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13  
슬기로운 대한민국
환대의 호혜성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전편을 하루 만에 몰아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많은 사람들이 <슬기로운 의사생활> 드라마에 열광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병원(hospital)의 사명이자 존재이유였던 환대(hospitality)가 병원에서 조차 사라진 것에 대한 풍자였다. 병원(hospital)은 원래 환대(hospitality)을 위해 만들어진 성소임에도 이 환대의 사명을 가장 먼저 잃어버린 곳도 병원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울림을 주었던 것은 병원이 환대를 잃어버린 장소라는 사회적 이슈를 여기에 출연한 젊은 의사들이 연기로 각성시킨 것이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든 우리는 환대는 고사하고 대부분 물건 취급을 받는다. 병원을 가도 우리는 고장난 기계일 뿐이지 아파서 고통받은 인간은 아니다. 고장난 기계도 등급을 먹여서 치료의 순서나 질이 결정된다. 환자체험이라는 고상한 말은 병원의 마케팅 전략일 뿐이다.
최근 진성리더십 아카데미 도반들과 소크라테스 북 클럽에서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을 같이 읽고 있다. 레비나스는 자기 중심의 주체성 철학을 넘어 타자를 향한 윤리적 주체성을 설파하는 철학자이다. 레비나스 윤리적 주체의 핵심은 역시 환대이다.
진성리더십에서는 단순한 환대를 넘어서 환대의 호혜성(Reciprocity of hospitality)를 주창한다. 진성리더가 세상을 진정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두 축은 목적과 긍휼이다. 진성리더십은 이 목적과 긍휼을 교차시켜 사회를 위한 효혜적 행동으로 발현시킨 것을 목적으로 한다. 효혜성은 그 동안 베풀지 못했던 가진 사람들이 먼저 베푸는 행동을 의미한다. 가진 사람들이 먼저 환대의 호혜성을 실천할 때 공정성을 넘어 공의(Righteousness)의 기반이 만들어진다고 본다. 진성리더십에서는 환대의 효혜성으로 공의가 전제가 될 때 공정도 따라온다고 규정한다. 진성리더에게 호혜적 환대는 공의와 공정을 위한 거대한 사회적 변화의 시작점이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누군가로부터 환대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생존을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생할 수 있고, 또한 번성을 구가한다. 태어나서 부모를 비롯해 누군가가 축하하고 환대하고 돌봐주지 않았다면 태어난 즉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삶을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 대한 냉대보다 환대 세력의 공모가 컸기 때문이다. 심지어 맑은 공기와 자연도 조건없이 나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줘가며 환대의 공모에 동참한 것이다. 내가 생존을 넘어 다른 사람보다 더 번성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내 노력도 있었겠지만 누군가가 나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해가며 열열하게 환대했기 때문이다. 목숨이 붙어 있는 모든 생명이 경이로울 수 있는 것은 환대를 향한 보이지 않는 공모 덕택이다. 누구나 살아오는 동안 적대 세력이 더 많았다면 지금처럼 건강하게 생명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고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개연성이 높다. 우리가 자유롭게 세상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누군가의 환대 때문이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집은 대표적 환대의 장소이다. 오랫동안 여행을 떠나 집에 돌아오면 사랑하는 가족들이 집으로의 귀환을 열열하게 환대한다. 설사 집에 누가 없다하더라도 집에 돌아오면 집은 편안함으로 나를 환대한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이 환대의 장소를 투기의 장소로 바꿔 평범한 사람들도 향유할 수 있었던 환대체험을 빼앗아간 사람들은 비인륜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표면적 공정을 넘어 공의를 부정한 사람들이다.
집에 대한 투기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사람들이 비윤리적인 사람이 되는 이유는 자신에 대한 환대는 관대한 반면 남들에게 대한 환대에서는 인색해질 때이다.
모든 종교는 환대의 호혜성을 강조한다. 예수는 병자, 고아, 과부에 대한 환대의 호혜성을 주창했고, 부처는 인간을 넘어 살아 있는 모든 미물에 대한 환대의 호혜성을 주창했다.
공자의 제자 중궁이 공자에게 인에 대해 묻는다. “선생님은 늘 인仁을 말씀 하시는데 그 ‘인’이란 게 무엇입니까?” 공자는 자신 환대의 처소인 집을 벗어나 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환대를 돌려주는 환대의 호혜성을 가르친다. 인이란 “집 밖에 나와서 만나는 모든 이를 큰 손님 대하듯 대하는"(出門如見大賓) (<논어> ‘안연편’) 것이다. 공자에게 인은 측은지심을 가지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환대를 돌려주는 환대의 효혜성이다.
굳이 종교를 거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환대의 호혜성을 복원하여 살아 있는 모든 것, 소수배경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환대할 수 있다면 누구나 다 종교 행위를 하는 것이다. 호혜적으로 환대를 실천할 수 있다면 누구나 다 예수이고, 부처이고, 공자이다. 공정을 넘어 공의의 사도가 된 것이다.
환대의 환은 따뜻함을 의미한다. 환대는 상대를 따뜻한 얼굴로 대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환대의 반대는 냉대이다. 환대의 호혜성을 복원하기 위한 시작점은 자신에 대한 환대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유없이 남들을 미워하거나 욕하거나 냉대하지 않는 것이다.
대한민국 복원을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일은 환대의 복원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간 지켜본 시장 선거유세에서 환대는 고사하고 서로 욕하고 비방하고 음해하는 것을 주도하는 세력이 대한민국 정치가들이라는 사실이 다시 드러났다. 대한민국이 냉대와 냉소의 지옥으로 전락한 것은 모든 것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정치하는 사람들조차 미래가 불안해지니 자신의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동원해 자신에게만 환대하도록 강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진 사람들이 더 극성스럽게 이기적 환대를 주장하니 공의(righteousness)가 무너지고 정의(justice)와 공정성(fairness) 이슈가 더 큰 사회적 이슈로 불거진 것이다.
좌파 우파를 막론하고 이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부도낸 사람들이다. 미래를 부도낸 사람들이 반성은 고사하고 또 다시 자신에게만 환대해줄 것을 구걸하니 일반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이들 가진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에게 먼저 베푸는 호혜적 환대행위에서 솔선수범을 못하면 사회적 정의와 공정은 구호일 뿐이다. 공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정의를 외치니 이들을 가짜로 생각하는 것이다.
슬기로운 대한민국을 복원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당장 환대의 호혜성을 실천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