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 처음으로 상연되어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던 영화 "판사(The Judge)"를 보았다. 대부에서 변호사로 나왔던 로버트 듀발과 아이런맨으로 유명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극중 인디애나 시골의 판사 조셉 파머와 그의 아들 행크 파머로 나온다.

아들 행크는 지금은 시카고의 잘나가는 변호사이지만 인디애나 시골동네의 망나니 역사를 새로 쓴 인물이다. 어렸을 때부터 동네의 모든 큰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명망이 있는 집안이나 성직자의 집안에는 이런 말썽꾼이 항상 존재한다. 행크에게 결정적 사건이 발생한다. 야구 유망주인 자신의 형을 태우고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 형을 불구자로 만들었다. 동네의 명망이 있는 판사인 조셉은 아들을 사회 봉사 명령 등으로 훈방할 수 있었지만 소년원에 수감시키는 더 큰 벌을 선고한다. 아버지를 믿었던 행크는 배신감을 느끼고 소년원에서 풀려나자 가족을 떠난다. 깨달음이 있어 법공부를 시작한다.

타고난 머리는 있어서 노스웨스턴 법학전문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시카고 유명 로펌에 잘 나가는 변호사로 자리잡았다. 변호사로는 잘 나가는지 모르지만 가족과는 얼굴도 안 보는 사이이다. 자신 속에 미제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꼬임(complex)이 키워낸 성인아이를 가지고 살고 있어서 지금 결혼한 부인과도 이혼하기 직전이다. 직업적으로 성공했는지는 모르지만 얼굴보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행크는 내면적 꼬임(컴플랙스)과 성인아이를 역으로 분출해 상대를 집요하게 공격해서 죄를 뒤집어 씌우는데 명수가 되었다. 노스웨스턴 졸업식에도 어머니와 형과 자폐증 동생만 왔다. 졸업식에 와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젊은 시절에 저지른 죄를 용서해줄 줄 알았던 아버지가 졸업식에도 오지 않자 실망하고 얼굴을 보지 않는 사람의 숫자를 늘려가며 사는 삶을 지속한다.

굳이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진성리더십 아카데미 도반들과 같이 읽고 있는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 때문이었더. 이 영화의 포스터가 아래에도 보이듯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임에도 아버지는 아들의 뒷모습을 통해 아들을 본다. 얼굴을 보지 않는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에서 얼굴을 대면함을 통해 환대의 단초를 찾는데 포스터는 가족이라도 얼굴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절대로 환대할 수 없는 관계임을 암시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처음으로 가족을 만나기 위해 돌아온 행크는 아버지 얼굴을 보지 않는다. 아들을 보는 것이 불편한 아버지는 동네 식품점에 들르고 이때 오래전에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자신이 벌을 크게 감형해주었던 동네 부랑아와 만난다. 자신을 감옥에 보냈다는 것에 앙심을 품고 모독적인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이 부랑아를 따라가 차로 살해한다. 이 모든 일이 사랑하는 부인이 사망한 날에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시카고로 돌아가던 아들 행크가 아버지의 사건을 듣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천륜은 버릴 수 없어서 비자발적으로 아버지 변호인이 된다. 아버지를 증인대에 세우고 심문하는 과정에서 행크는 아버지 조셉의 얼굴을 처음으로 대면한다. 심문을 위해 왜 자신은 소년원에 안 보낼 수도 있었는데 소년원에 보내 인생을 망치고 아버지가 살해한 동네 부랑아는 더 큰 죄를 선고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다. 사실만을 말할 것을 선서한 아버지는 자신의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자신이 살해한 동네 부랑아의 얼굴에서 지금은 얼굴도 볼 수 없는 자신의 아들의 얼굴을 보았다고 고백한다. 동네 부랑아를 최대한 용서하면 자신의 아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못된 짓을 한 죄를 용서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벌을 낮춰서 선고했다고 고백한다. 부랑아를 통해 아들의 얼굴을 보았지만 결국 판사인 본인이 베풀었던 이 부랑아에 대한 환대가 잘못되었음을 후회하고 이 부랑아를 다시 살해한 것이다.

아들이 변호했음에도 아버지는 벌을 받고 인디애나 교도소에 수감되고 형을 살다가 지금까지의 명성과 사회적 기여를 인정받아 형이 감면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마지막 장면은 아버지가 사망하는 날 아들과 아버지가 같이 낚시 배에서 낚시를 하는 장면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 고백한다. 40여년간의 법관을 해가면서 만난 가장 뛰어난 변호사가 아들이었음을.

레비나가 주창하는 <타자의 얼굴>은 우리가 상상하는 일반인의 얼굴은 아니다. 살인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신의 얼굴이거나 아니면 고통 받는 과부, 고아의 얼굴이다. 윤리적 주체성을 회복한 사람들이란 이들의 얼굴 속에서 환대를 경험하고 이들을 환대의 식탁에 초대한다. 얼굴은 타자를 환대의 식탁에 초대하기 위한 언어이다.

무슨 이유인지 우리 주위에도 가족과 친한 친구 사이이었음에도 서로 얼굴을 보지 않는 사이로 변한 사람들이 많다. 이들에게 얼굴을 보자고 요청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이다. 하지만 이들의 얼굴을 대면하지 않는 환대와 용서는 허구가 된다. 누가 먼저 세상을 떠나기라도 한다면 대면하는 환대와 용서의 식탁에 초대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영원히 사라진다.

우리는 지금까지 소원해진 가족이나 친구에게 "밥이나 한 끼 같이 같이 먹자"라는 아주 편안하고 일상적인 말로 상대를 환대의 식탁에 초대하는 현능함을 가지고 살았다.

PS: 미셀 오바마와 조지 부시의 환대, 부시 전 대통령은 자신이 미셀 오바와 친하다는 사실이 전혀 놀라운 사실로 받아 들여지지 않는 (환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퇴임 후에도 노력하고 있다고 고백해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