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초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부조리는 연결되어 있음에도 고립감이 섬처럼 점점 증대되는 "혼자사회"가 더 강화된다는 점이다. 대면접촉을 통해 구성하던 사회에 대한 감각(사회감)이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신체적 상호작용에서 배제되자 현실적 고립감을 극복하기 위해 온라인 세상을 더 탐색해가며 자신과 비슷하거나 동질적 범주를 가진 사람들의 생각을 집중적으로 업데이트 한다. 동질적인 범주를 공유한 사람들의 생각을 통해 자신 정신모형이 가진 확증성향을 키워간다. 이런 동질성과 확증성향에 의해 정신모형의 업데이트가 지속될수록 역설적으로 고립감은 더 커진다.

이런 확증성향과 동질성향을 앞장서서 키우는 기제는 포탈이다. 포탈은 AI 알고리즘을 통해 나와 같은 범주의 사람들의 제품 체험이나 기사를 지속적으로 들려줌을 통해 나를 지속적으로 해체한다. 이런 포탈 뉴스에 노출될수록 진정한 나는 없어지고 추상적 동질성으로 묶어진 Depersonalized Me만 존재한다. Depersonalized Me는 나의 아바타이지 나는 아니다. 아바타로 해체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혼자사회이다.

코넬대학의 Lawler교수, USC의 Thye교수와 나는 초연결디지털 사회의 진화와 함께 개인의 고유한 개별성도 해체되고 사회도 해체되는 해체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것을 <Social Commitments in a Depersonalized World>에서 경고해왔다. 책은 2010년에 초판이 출간되었으니 이미 10년전 일이다.

우리가 이 책에서 던진 질문은 "디지털 기술의 진화로 개인과 사회 등 모든 것이 디지털 이라는 이름으로 분절되고 해체되는 과정이 진행되면 공동체는 과연 살아남을까?"이다. 공동체가 사라진다면 개인들은 어떻게 미래를 만들어낼까? 공동체는 우리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울타리인데 우리가 당연하게 향유해왔던 울타리를 잃어버린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혼자 사회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헌신(Social Commitments)는 어떻게 동원할까?

우리가 제시했던 원리는 세 가지이다. 하나는 사회적 경계를 다시 확장해 재 정의할 것과 둘째는 이 일에 기업이 나서는 것과, 마지막은 새롭게 정의된 울타리에 이미 해체된 개인들을 초대해 이어주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울타리 없는 세상을 살 수는 없다. 모든 울타리가 제거된다면 우리는 그냥 동물처럼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이라는 전쟁 속에서 살아야 한다. 루소는 인간이 동물과 달리 지금과 같은 문명을 만들어내 자연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인간이 우연히 만들어낸 울타리에서 찾았다. 원시시대 사람들은 밤이 되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 앉았다. 울타리의 발명이다. 상대의 뒤로 누가 접근하는지 망을 봐주는 울타리가 생기자 사람들은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고 모닥불 속에 피어나는 더 나은 내일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인간에게 울타리의 해체는 자연 세계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이 변화하면 여기에 맞는 울타리를 지속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이 경계의 원리에 따라 전통적 사회를 구성하는 울타리는 지속적으로 해체를 경험해왔다. 이미 인구 저출산으로 전통적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해체되었고 고용안정을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의 울타리도 해제되었다. 기업이 제공하던 일자리도 해체되어 플랫폼을 중심으로 GiG 단위로 전환되었다. 울타리가 새롭게 정의되고 새롭게 제시되지 못하면 이 울타리는 항상 생존의 울타리로 되돌아간다. 새롭게 정의하지 못한 국가, 사회, 조직, 개인들이 생존에 모든 것을 거는 이유는 바로 자신들이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울타리가 시대적 쓰나미에 밀려 해체되었기 문제 때문이다.

우리가 이 책에서 잠정적으로 내린 첫째 결론은 사회적 헌신을 위해 새롭게 제공되어야 할 울타리는 생존을 넘어 목적과 사명의 울타리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명과 목적의 울타리 내에서 사람들은 조직과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고 조직의 목적과 개인의 목적을 가장 정렬된 형태로 실현시킬 수 있는 운동장을 얻는다. 생존의 문제를 무시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를 넘어 목적을 세우고 번성의 문제를 해결할 때 생존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제안이다.

둘째는 이렇게 해체된 사람들을 새롭게 제시된 울타리 안에 사회적 헌신을 위해 이들을 모으는 힘이 무엇인가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긍정적 만남을 통해 체험하는 정서에서 답을 찾았다. 사람들이 만남을 통해 느끼는 긍정적 정서가 기본적으로 필요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긍정적 정서를 넘어서서 윤리적 정서라고 주장했다. 윤리적 정서를 새로운 울타리 안에서 체험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제시하는 대표적 윤리적 정서는 감사(gratitude), 고양(elevation). 긍휼감(compassion), 자부심(pride)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새로운 울타리를 만들어내는 최고의 첨병은 사회가 가진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역량을 보유한 기업이 앞장서서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다행히 우리의 주장을 듣고 반응한 것은 아니겠지만 2019년 BRT 선언, FT의 자본주의 레셋운동, 요즈음의 ESG 운동은 모두 기업의 목적을 새롭게 세우고 이 목적에 따라 울타리를 조정하는 운동이다. 기업이 앞장서서 새로운 울타리를 제시해주고 정부가 이들을 뒤에서 지원해주는 플랫폼이 되어 줄 때 우리가 기대하는 사회적 헌신은 실마리가 보인다. 사회적 헌신이 복원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디지털 초연결 세상에서 다시 세워야 할 경계와 이들이 이 안에서 사회의 공진화와 미래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가 <Social Commitments in a Depersonalized World>에서 제기한 핵심질문이다. 우리는 기업들이 앞장서서 목적의 경계로 울타리를 재정의하고 이 속에서 구성원들이 자신을 찾는 성장을 통해 윤리적 정서를 체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제안했다. 구성원들이 이 윤리적 정서를 체험하게 될 때 이 정서는 다시 공동체에 귀인되고 이 귀인이 지속적이고 내재적으로 사회적 헌신을 만들어내는 힘으로 작용한다. 생존의 울타리를 목적의 경계로 확장하고 여기서 만들어진 운동장에서의 만남을 통해 자부심 긍휼감 고양 감사을 집단적으로 체험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시대의 리더로 등장한다.

Social Commitments in a Depersonalized World는 2012 미국사회학회에서 <James Coleman 학술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