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신분당선을 타고 오다가 중앙광교역에 게시된 흥미진진한 사진을 발견했다.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인 1965년 3월 19일 수원 지동에 성빈센트 병원을 세우기 위해 드뽈 자비회 소속의 수녀님들이 첫 삽을 뜨는 사진이었다. 수원 지동은 화성과 지동시장으로 유명하다.

성빈센트병원은 독일 성 빈센트 드 뽈 자비 수녀회가 경기도 수원에 설립한 병원이다. 2년의 공사를 통해 1967년 6월 3일 지금의 가톨릭대학교 부속병원으로 개원했다. 빈센트 성인의 정신에 따라 전후 의료시설이 없던 수원에 개원한 최초의 종합병원이다. 지금도 병원 운영은 드 뽈 자비회 수녀회에서 주관하고 있다.

성빈센트 병원은 우리나라에 모든 병원 중 환자에 대한 환대를 가장 잘 실천하는 병원이다. 죽음을 앞 둔 호스피스 환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병원이다. 60년 전 설립 때부터 빈센트 성인의 철학에 따라 병원은 환자를 고장난 기계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실천해왔다. 이런 철학은 육체적 아픔을 초월하는 인간으로서의 아픔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것을 치료하는 전인치료 철학으로 진화했다. 전인치료 철학은 인간으로 겪은 아픔은 종교의 문제를 초월해 인간존재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환자를 종교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사진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그 당시 지동은 그냥 허허벌판이었다. 1965년 어느 봄날 이 허허벌판에서 수녀님들이 병원건축을 위한 첫 삽을 뜨고 있다. 이 수녀님들이 2021년의 지금 성빈센트 병원의 비전을 약속한 증인들이다. 이들은 빈센트 성인의 전인치료와 환자에 대한 환대의 씨앗을 가져와 지동 땅에 씨앗으로 뿌려 지금의 성빈센트 병원으로 키워냈다.

미래는 오래 전에 누군가가 목적이 실현된 비전의 모습을 미분해 개념을 만들어내고 이 개념을 씨앗으로 뿌려 만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향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오래 전에 어떤 선구자들의 머릿속 상상 속에서 미분되어 씨앗으로 태어난 것들이다. 이들의 모든 상상이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이들의 상상이 없었다면 지금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는 오래 전 맨땅에 헤딩하는 사람으로 비난 받던 사람들의 희생과 땀이 만든 결과이다. 1963년 첫 삽을 뜨시던 수녀님들의 머리 속에 들어 있던 성빈센트 병원이 지금 빈센트 병원이 이분들에게 미분된 모습이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우리 후세에게 남겨 줄 이런 미래를 위해 맨땅에 헤딩하는 젊은이들을 키워내는 일이다. 기성세대는 이들이 맨땅에 헤딩하고도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주는 일을 해야한다. 기성세대가 선거에 이기기 위해 미래를 외면하고 젊은이들을 부추겨가며 지금 가진 파이를 공정이라는 잘못된 이름으로 나누는 정치적 싸움에 용병으로 동원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PS: 60여년 전 고국 독일을 떠나 이름도 잘 모르는 어느 동방의 작은 나라에 오셔서 환자들에게 환대의 씨앗을 뿌려 지금의 대한민국의 현재를 만들어 주신 드뽈 자비회 수녀님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