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삶에 괄호를 치지 않으면 내가 삶의 쳇 바퀴에 갇힌 포로가 되거나 아니면 역으로 내 편견의 감옥 속에 사물을 가두는 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삶에 괄호를 친다는 것은 Bracketing이라는 말로 현상학을 만든 후서얼이 창안한 개념이다.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것을 보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은 다 괄호치기의 방법을 통해 시각을 단련시킨 사람들이다. 괄호치기를 이해하고 훈련한다면 평범한 사람들도 삶과 세상과의 디커플링을 극복하고 통찰력이 있는 비전을 회복할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한 선지자가 될 수 있다.

현상학의 괄호치기를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사진학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자. 괄호치기는 사진학에서도 쓰는 용어이다. 아래 김영희 선생이 본 도봉산의 아침과 저녁은 도봉산을 대상으로 괄호치기를 한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산을 똑 같은 산으로 보지만 아침에 본 산과 저녁에 본 산은 같은 산이 아니다. 내가 같은 사물을 볼 때 태도를 바꿔서 보면 그 때마다 사물은 다른 풍광을 드러낸다. 이런 괄호치기의 반복을 통해 사물자체의 본질에 더 근접해서 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현상학이다.

괄호치기를 하려면 내가 아침에 본 도봉산에 대한 평가나 판단이 중지되어야 한다. 대상에 대한 판단이 중지되지 않는다면 내가 보는 모든 대상은 내 과거 경험의 색안경으로 채색된 대상이다. 내가 만든 편견의 감옥에 세상을 가둔 것이다. 괄호치기를 하지 않는 삶은 편견에 가득찬 삶이다. 세상을 내 편견의 감옥 속에 가둔 것이다. 아니면 세상의 쳇바퀴에 내가 갇힌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같은 세상이라고 주장하며 새로움을 못 느끼는 삶이다.

승용차를 몰고 다니다 버스를 타고 같은 길을 달릴 때 느끼는 다른 체험도 다 괄호치기의 결과이다. 같은 길이지만 버스를 타고 높은 곳에서 여유롭게 보는 경치는 자신이 몰랐던 풍광을 새롭게 가져다 준다. 버스를 통해 물리적 괄호치기가 없었다면 내가 아는 풍광은 내 좁은 편견에 갇힌 것이다. 풍광의 손과 발이 다 잘려나간 풍광이다. 같은 대상을 위에서도 보고 옆에서도 보고 아래 서도 볼 수 있도록 다양한 괄호치기를 종합하면 대상의 실체를 보다 정확하게 통찰할 수 있다. 괄호치기에 실패하면 사물을 앞면만 보고 사물을 판단한다. 사물의 뒤통수와 나머지를 잘라먹는 우를 범한다.

삶에서 괄호치기를 체험해보려면 태도를 바꿔보면 된다. 내가 대상에 가진 태도를 중지하고 다른 태도를 취해보는 것이다. 리더인 내가 팀원들에게 지금까지 성악설의 태도를 가지고 대하고 있었다면 오늘은 태도를 성선설로 바꾸고 행동해보자. 팀원들이 같은 팀원들이 아닐 것이다. 이들의 실체가 내 태도의 감옥에서 벗어나 훨씬 명확하게 드러난다. 우파나 좌파 정치가들은 자신의 오랫동안 진영논리에 빠져 괄호치기를 포기한 사람들이다.

괄호치기가 뛰어나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 윤동주가 뛰어난 시인인 것은 누구보다 유연하게 괄호치기를 통해 대상을 초월적으로 관조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시인이기 때문이다. 길에 관한 윤동주의 두 편의 시는 쳇 바퀴가 돌듯이 삶이 무료해질 때 어떻게 괄호치기를 해서 새로움을 만드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윤동주는 <새로운 길>에서 괄호치기를 통해 찾아낸 오래된 새 길임만이 진정한 온전한 길임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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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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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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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가 매일 걸었던 길은 같은 길이지만 바람이 바뀌고 아가씨가 등장하고 꽃이 피고 지는 매일 다른 서사를 가진 온전한 새길이다. 괄호치기를 통해 발견한 길은 같은 길이 아니다. 항상 오래된 새길이다.

하지만 윤동주도 가끔 괄호치기를 못해 길을 잃어 버려서 새로운 길이 나타나지 않을 때의 곤혹스러움을 <길>이라는 시에서 표현하고 있다. 괄호치기가 중지되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자기 삶에서 단절되어 과거에 갇힌다. 사람들이 괄호치기를 못해 길을 잃으면 분절적인 길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과거의 영광만을 노래하던지, 의미없는 현재 일에 자신을 중독시키든지, 아니면 미래의 희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윤동주의 길에서 저녁은 과거를 아침은 미래를 의미한다. 오래된 새 길은 성공적 괄호치기를 통해 지금 걷고 있는 현재의 길에 과거와 미래가 온전하게 연결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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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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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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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길을 잃고 나는 담벼락 저쪽에서 불안을 못이겨 서성이고 있다. 나의 삶에서 과거 현재 미래는 연결되어 있을 때만 온전한 길이기 때문에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내 길이 어디에서 끊어졌는지 질문을 던진다. 길을 잃었을 때 윤동주가 던진 질문이 바로 정체성 질문이다.

괄호치기를 위한 끝판 왕은 상황이 바뀔 때마다 지금까지의 태도를 판단중지하고 목적과 정체성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나는 어디에서 왔고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결국 어디를 향해서 가는지에 대한 질문이 정체성 질문이다. 이 정체성 질문에 답을 얻었을 때 던질 수 있는 심화 질문이 자기정의 질문 self defining question이다. 자기정의 질문은 이런 과거 현재 미래의 맥락이 주어졌을 때 나는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가끔 길을 잃었을 때마다 길을 찾기 위해 자기 정의 질문을 던졌다. 온 나라가 길을 잃었을 때도 온 국민이 촛불을 밝히고 길을 찾아 나서며 자기 정체성에 관한 자기 정의 질문을 던졌다. 이게 나라냐? 이게 대통령이냐? 이게 국회냐? 이게 판사냐? 이게 목회자냐? 이게 검찰이냐? 이런 대상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협업해서 지금까지 가진 태도에 대한 괄호치기에 성공한 것이다. 얼마 전 인류가 처음으로 블랙홀을 관찰할 수 있었던 것도 과학자들 각자가 자신의 망원경으로 볼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집단적으로 괄호치기에 성공한 것이다.

정체성에 대한 자기정의 질문으로 자신의 길을 제대로 발견하면 길은 다시 오래된 옛길에서 오래된 새길의 모습을 드러낸다.

아침에 본 도봉산과 저녁에 본 도봉산은 같은 산이 아니다. 저녁에 본 도봉산은 노을 운치가 더해져 새 도봉산을 드러내고 있다. 바쁘게 쳇바퀴 도는 삶을 살다 보면 도봉산은 내 고정된 시각에 갇힌 죽은 도봉산이 된다.

삶의 괄호치기에 성공해서 여러분이 걷게 될 길이 같은 길이 아니라 새롭게 드러나는 오래된 새 길이기를 기원합니다.